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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 | 콜라보가 유통이다

by Roi Whang

이제 브랜드의 힘은 매장 숫자가 아니라 누구와 어떻게 협업하느냐에서 갈립니다. 협업은 단순히 신제품을 내는 방식이 아니라 새로운 유통망이자 소비자와 연결되는 가장 빠른 길이 되었어요.


과거 패션과 라이프스타일 산업에서 유통망의 기준은 명확했습니다. 백화점 몇 개에 입점했는지, 단독 매장은 몇 개를 운영하는지, 온라인몰 점유율이 얼마나 되는지가 핵심 지표였죠. 그러나 지금은 매장 수가 줄어들어도 단 한 번의 강력한 협업으로 더 큰 파급력을 만들어내는 브랜드가 주목받습니다.


Kith__Birkenstock_Fall_2025.jpg Kith & Birkenstock Fall 2025


KITH가 아디다스와 버켄스탁을 동시에 묶어낸 협업은 좋은 사례입니다. 소비자 입장에서 이 협업은 새로운 매장이나 판매 채널이 아니라 두 브랜드의 팬덤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는 접점으로 작동합니다. 협업 아이템은 한정판처럼 소비되지만 본질은 유통망 확장의 방식입니다. 아디다스의 러닝 팬과 버켄스탁의 생활밀착 소비자가 교차하며 KITH라는 플랫폼으로 모여드는 순간, 물리적 매장보다 넓은 네트워크가 열립니다.


니고와 지샥의 협업도 같은 맥락입니다. ‘CASIO LAB’이라는 가상의 공간을 배경으로 협업 티저를 공개했는데 소비자들은 단순한 시계 제품보다 ‘니고가 참여한 지샥’이라는 스토리에 반응합니다. 브랜드는 협업을 통해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드는 새로운 채널을 구축하는 셈이죠. 제품은 하나지만 이 협업은 소비자에게 또 다른 유통 공간으로 인식됩니다.


식품 기업 농심이 넷플릭스 애니메이션과 손잡은 사례도 흥미롭습니다. 신라면과 새우깡 같은 대중 제품이 애니메이션 캐릭터와 결합되며 새로운 맥락에서 소비됩니다. 단순히 패키지를 바꾼 것 같지만 실제로는 넷플릭스 시청자라는 새로운 소비 집단에 접근하는 유통망을 확보한 겁니다. 협업은 광고를 넘어 브랜드를 새로운 고객 풀로 끌어올리는 유통 장치로 기능합니다.


무신사 도쿄 팝업스토어는 협업이 집합적으로 발휘된 사례입니다. 80여 개 K-패션 브랜드가 하나의 공간에서 소비자와 만날때 각 브랜드는 단독으로는 도달하기 어려운 일본 현지 소비자와 접점을 얻게 됩니다. 무신사가 제공하는 팝업 플랫폼이 곧 협업 유통망이 된 것이죠. 소비자는 한국 패션을 집합적 경험으로 체험하고 브랜드는 물리적 매장 확장보다 빠른 속도로 해외 진출 효과를 얻습니다.


무신사_도쿄_팝업스토어.png 무신사 도쿄 팝업스토어


여기서 중요한 점은 협업이 단순히 콜라보 제품을 내놓는 행위가 아니라 새로운 유통 경로를 설계하는 전략이라는 사실입니다. 전통 유통은 공급망, 재고, 판매 채널이라는 구조적 제약 속에 있었지만 협업은 관계와 의미를 교환하며 유통 범위를 훨씬 유연하게 확장합니다.


경제학적으로 협업은 ‘공유가치 창출(CSV)’의 전형적인 형태입니다. 두 브랜드가 서로의 고객군과 유통 채널을 공유함으로써 단독일 때보다 훨씬 넓은 소비자 접점을 만들죠. 네트워크 이론으로 해석해도 마찬가지입니다. 브랜드가 연결된 파트너 수와 그 밀도가 곧 영향력으로 환산됩니다. 협업을 많이, 그리고 전략적으로 할수록 브랜드는 더 많은 소비자 접점이라는 유통망을 가진 셈입니다.


매장 개수가 브랜드 파워를 결정하던 시대는 끝났습니다. 이제는 협업을 통해 얼마나 넓고 깊은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는지가 브랜드 평가의 기준이 됩니다. 그리고 이 네트워크는 단순한 판매 채널을 넘어 소비자가 새로운 경험과 정체성을 얻는 문화적 유통망으로 작동합니다.


콜라보는 더 이상 선택적인 마케팅 수단이 아닙니다. 협업은 유통 전략이며 브랜드 생존을 결정짓는 핵심 인프라입니다. 향후 패션 산업에서 진짜 경쟁력은 매장 수가 아니라 협업을 통해 얼마나 강력한 연결망을 구축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Date: 2025.08.22 | Editor: Roi Wh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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