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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 | 여성 영캐주얼은 왜 무너지고 있을까?

by Roi Whang

서울 주요 백화점에서 여성 영캐주얼 매출이 3년 연속 감소했습니다. 단순한 경기 불황이 아니라 세대 교체의 실패와 정체성 상실, 그리고 유통 구조의 경직성이 겹치면서 나타난 구조적 위기예요. 소비자가 떠나고 있는 건 ‘브랜드’가 아니라 ‘카테고리’ 자체라는 점이 핵심입니다.


여성 영캐주얼은 오랫동안 20~30대 여성 직장인의 ‘입문 브랜드’였습니다. 직장 생활을 시작하며 백화점에서 처음 사는 정장 재킷, 주말에도 무난하게 입을 수 있는 원피스. 이런 아이템은 사회적 정체성을 확인하는 장치였고 그래서 ‘영캐주얼 존’은 늘 안정적인 매출을 보장하는 구역으로 여겨졌죠. 하지만 지금 세대에게 그런 상징성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습니다. 직장 생활의 경계가 흐려지고 업무와 여가의 복장이 뒤섞이는 시대에 ‘입문 의례’로서의 옷은 의미를 잃었어요. 사회학적으로는 소비의 의례성이 무너진 셈입니다.


vitaly-gariev-HiHRQMCDlHQ-unsplash.jpg 사진: Unsplash의Vitaly Gariev


이 공백을 브랜드는 잘못된 방식으로 메웠습니다. 가격을 올리며 프리미엄 전략을 택했지만 소비자는 이미 온라인에서 훨씬 다양한 대안을 경험하고 있었죠. 참조가격 이론을 적용해 보면, 온라인에서 5만~10만 원대 아이템을 쉽게 접한 소비자가 20만~30만 원대 영캐주얼을 접했을 때 느끼는 건 ‘신뢰’가 아니라 ‘부담’입니다. 더군다나 같은 가격대라면 SPA 브랜드에서 최신 트렌드를 반값에 사고, 명품 브랜드에서 상징성을 두 배로 살 수 있습니다. 결국 여성 영캐주얼은 ‘명품도 아니고 SPA도 아닌 중간지대’에서 설 자리를 잃은 거예요.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백화점이라는 무대 자체가 더 이상 젊은 세대의 일상 공간이 아니라는 점이에요. 백화점이 기획전으로 젊은 소비자를 불러 모으는 동안 여성 영캐주얼은 매장 축소와 매출 하락의 악순환에 갇혔습니다. 온라인 플랫폼은 브랜드와 공동으로 새로운 ‘세계관’을 설계하며 팬덤을 만드는 반면, 백화점은 여전히 ‘매대와 재고 관리’에 집중하고 있어요. 소비자가 브랜드를 만나는 접점에서 극명한 차이가 생겨버린 겁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여성 영캐주얼의 위기는 특정 브랜드의 부진일까요, 아니면 카테고리 자체의 퇴장이 시작된 걸까요? 최근 데이터를 보면 후자에 가깝습니다. 소비자가 떠나는 것은 개별 브랜드가 아니라 ‘영캐주얼’이라는 범주 자체예요. 이는 패션 산업에서 흔치 않은 현상입니다. 특정 아이템이 유행에서 밀려나는 건 흔하지만 사회적 정체성을 지탱하던 한 카테고리가 통째로 힘을 잃는 건 구조적 신호거든요.


soonmok-kwon-JWptMV0DiUU-unsplash.jpg 사진: Unsplash의Soonmok Kwon


결국 이 문제는 단순히 매출 하락이 아니라 '세대 교체 실패'로 요약됩니다. 새로운 소비자는 ‘입문 패션’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첫 직장에서도 유니폼처럼 정해진 옷 대신, 자신이 좋아하는 브랜드와 아이템으로 자유롭게 조합합니다. 영캐주얼 브랜드가 과거처럼 ‘사회 초년생을 위한 옷’을 설계한다면 그 자체가 시대착오가 되는 거예요.


앞으로의 해법은 분명합니다. 여성 영캐주얼은 ‘입문 패션’이라는 낡은 역할을 버리고 새로운 정체성을 찾아야 합니다. 온라인 플랫폼과 협업해 한정 캡슐을 내거나 세대와 취향별 마이크로 브랜드를 흡수하는 방식이 하나의 길이 될 수 있습니다. 가격을 낮추는 단기 처방보다 중요한 건, 소비자가 왜 굳이 이 카테고리를 다시 선택해야 하는지 '존재 이유'를 새로 쓰는 일이에요.


여성 영캐주얼의 침체는 사실 브랜드 위기가 아니라 산업 전환의 신호탄입니다. 사회적 의례를 잃은 소비자가 더 이상 ‘첫 정장’을 필요로 하지 않는 시대, 브랜드가 붙잡아야 할 건 과거의 충성도가 아니라 새로운 세계관과 경험이에요. 이제 선택의 문제는 명확해졌습니다. '카테고리로서 퇴장할 것인가, 혹은 새로운 정체성으로 다시 설 무대에 오를 것인가.


Date: 2025.08.25 | Editor: Roi Wh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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