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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0 | 미-중 패권 전쟁이 흔드는 패션의 질서

관세/원산지/ESG

by Roi Whang

중국 생산 회귀, 원산지 검증 솔루션, 미국 관세 전 사재기, ESG 글로벌 수상. 최근 기사들을 모아보면 하나의 그림이 그려집니다. 패션은 더 이상 유행만 따라가는 산업이 아니에요. 미-중 패권 전쟁이라는 지정학적 충돌 속에서 ‘얼마나 빨리 만들 수 있느냐’보다 ‘그 빠름을 얼마나 신뢰받게 증명할 수 있느냐’가 성패를 가릅니다.


한국 남성복 브랜드들이 중국 생산 비중을 늘리려 한다는 소식은 단순히 비용 절감이 아닙니다. 베트남은 인건비가 급등했고 동남아는 납기 불확실성이 커졌어요. 반대로 중국은 다시 품질과 리드타임에서 경쟁력을 보이고 있죠. 그러나 이 선택은 동시에 지정학적 리스크를 불러옵니다. 중국이 공급망을 무기화하고 미국이 새로운 무역 규제를 강화한다면 중국에 의존한 물량은 하루아침에 발목을 잡힐 수 있습니다. “빠름”만으로는 안 되고 “믿을 수 있는 빠름”이 필요하다는 얘기예요.


여기서 믿음의 근거가 되는 게 바로 '원산지 검증'이에요. 오리테인 같은 포렌식 기업이 면화, 울, 캐시미어의 출처를 추적해주는 이유는 단순한 기술 자랑이 아닙니다. 미국과 유럽은 공급망 투명성을 인권, 안보 문제로 다루고 있고 위구르산 원료처럼 민감한 이슈는 곧바로 통관 거부로 이어집니다. 한국 브랜드가 원산지를 증명할 수 있다면 미-중 대립이라는 격랑 속에서도 수출의 안전망을 확보할 수 있어요. 속도를 내면서도 “우리는 깨끗하다”를 보여줄 수 있는 기업만이 살아남습니다.


ORITAIN.jpg 원산지 추적 플랫폼 ‘오리테인’


실제 데이터는 정치가 소비 패턴에 미치는 영향을 증명해줍니다. 미국 7월 패션 판매가 7.35% 급증한 배경은 관세 시행 전 ‘사재기’ 수요였어요. 패션이 정치적 변수에 따라 단기간에 어떻게 요동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죠. 한국 기업 입장에서 이건 곧 “수요 변동에 빠르게 대응할 생산 체계”가 필요하다는 신호입니다. 단기 급등에 맞춰 즉시 리오더할 수 있어야 하고 반대로 급락 시 손실을 최소화할 유연성도 확보해야 합니다.


믿을 수 있는 빠름의 또 다른 축은 '소비자 신뢰'예요. 알리익스프레스가 허위 할인 광고로 21억 원 과징금을 받은 사건은 한국 소비자가 ‘표시, 광고의 투명성’을 얼마나 중시하는지 드러냈습니다. 이제 소비자에게는 ‘빠른 배송’보다 ‘정직한 가격', '정확한 원산지’가 더 큰 가치예요. 직영점이 단순한 판매 공간을 넘어 데이터를 수집하고 피팅/코칭/케어 경험을 제공하는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신뢰는 브랜드 충성도를 만드는 가장 확실한 장치예요.


알리익스프레스.png 알리익스프레스 홈페이지


글로벌 무대에서도 ‘신뢰’는 경쟁력으로 작동합니다. 효성티앤씨와 어썸레이가 국제 섬유 어워즈를 수상한 건 단순한 영예가 아니에요. 폐섬유를 재활용해 친환경 제품을 만들고 신소재를 상용화한 성과는 글로벌 ESG 요구에 정확히 부합합니다. 미-중 패권 전쟁으로 지정학적 균열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한국 기업이 “국제 규범을 따르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순간 해외 시장에서의 협상력은 배가됩니다.


미-중 대립 구도가 패션업계에 던지는 질문은 이겁니다. “우리는 어디에 줄을 설 것인가?” 한국의 답은 명확해야 합니다. 중국의 속도를 보조적으로 활용하되 미국/유럽 진영의 규범과 기준에 발맞추는 것. 이것이야말로 생존을 넘어 성장으로 가는 길입니다. 생산은 다변화하고 공급망은 투명하게 만들고 ESG 성과를 국제 무대에서 인정받는 것. 정치의 충격을 최소화하는 동시에 신뢰를 자산으로 전환하는 전략이에요.

AI 역시 이 맥락에서 도구로 쓰여야 합니다. 콘텐츠 제작, 상품 설명, 수요 예측 속도를 높여주지만 소비자가 보는 건 AI가 아니라 브랜드의 정체성이에요. 빠름은 도구로 확보하고 신뢰는 브랜드 철학과 투명성으로 쌓아야 합니다.


2025 F/W 한국 패션업계의 생존 조건은 명확합니다. 첫째, 생산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해 불확실성에 대비할 것. 둘째, 원산지 검증과 가격 표시로 투명성을 확보할 것. 셋째, 직영점과 플랫폼을 연결해 소비자 경험을 신뢰로 확장할 것. 빠름과 신뢰가 결합된 브랜드만이 미-중 패권 전쟁의 충격을 기회로 바꿀 수 있을 거예요.


Date: 2025.09.02 | Editor: Roi Wh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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