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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omorebi Jun 19. 2019

Tea Cup

Winter

권순찬 - Tea Cup 2019.12.09 12PM released

‘Tea Cup’이 발매되었습니다. 모든 음원사이트에서 들으실 수 있습니다.


 그녀가 찻잔을 내려놓았다. 찻잔과 받침대가 부딪히는 청량한 소리가 카페에 앉아있는 사람들의 적당한 말소리와 에스프레소를 내리는 커피 머신의 소음을 뚫고 카페 내부를 울렸다. 하지만 그 소리를 선명하게 들은 건 아마 나뿐이었을 것이다. 그 순간 모든 것들이 멈추고 찻잔의 울림만이 움직이고 있었다. 참 예쁘게 생긴 찻잔세트다. 고급스러워 보이진 않지만 분홍과 빨강이 섞인 무슨 꽃인지 모르는 무늬들이 띄엄띄엄 그려져 있었는데 가게에 울리는 재즈와 커피 냄새, 그리고 앤티크 한 인테리어까지 각자가 각자를 꾸며주는 듯한 팀플레이였다.


 그녀가 한 모금 마신 후 찻잔을 내려놓는 순간 나는 느꼈다. 뭔가 간절하지만 내 마음대로 행동할 수 없는 불안한 감정이랄까. 그런 것들이 찻잔의 청량한 소리와 함께 들려왔다. 그녀는 나에게 함께 지나왔던 시간들이 아쉽다고 말했지만 준비를 하고 온 듯이 적당한 시간을 뜸 들인 후 누구보다 냉정한 표정으로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카페 문이 열리자 아직 봄이 오려면 멀었다는 듯 차가운 바람이 잠깐 들어오더니 이내 사라졌다. 정말 순간이었다. 그녀와 함께 했던 지난 모든 날은 그저 이 카페에서 있었던 한순간뿐이었다. 나는 한동안 테이블 다리에 묻어있던 커피 자국을 빤히 쳐다봤다. 이 자리에 앉았을 때부터 발견했던 건데 아까부터 계속 거슬렸었다. 한 10분 정도 쳐다봤을까 갑자기 목이 말라 내가 주문했던 식은 라떼를 마셨다. 맛이 너무 텁텁해서 순간 그녀가 마시다 만 찻잔에 눈이 갔다. 그녀는 홍차를 좋아했고 가끔가다 우유를 섞어 마시기도 했다. 심지어 더운 여름에도 항상 따뜻한 홍차를 마셨었다. 나는 입안이 텁텁했지만 꾹 틀어막은 체 다시 한동안 그녀가 앉았던 자리와 찻잔을 번갈아가며 쳐다봤다. 사실 그때까지 나는 한 시간 전으로 머물러있었다. 그녀가 자리를 떠난 뒤 내 시간은 그때로 멈춰버리고 만 것이다. 그녀와 함께 했던 시간들과 같이 묶인 채로 말이다.


 나는 이제 그 묶여버린 추억들을 이 찻잔에 옮기려 한다. 그녀가 마시다 만 식어버린 홍차 속으로 말이다. 한동안은 찻잔의 소리와 홍차를 마실 때마다 묶여있는 추억이 생각날 것이고, 겨울이 올 때마다 묶인 밧줄을 풀며 어딘가 기억 속으로 날려버릴 것이다. 그리곤 우리는 점점 서로를 잊으며 살아갈 것이다. 또 다른 겨울을 기다리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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