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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omorebi Sep 04. 2021

나의 마음속에 흔들리는 모든 것들

the sea & the rhythm


 제가 생각하던 가을은 이런 게 아니었습니다. 생각보다 시원했고 하늘이 맑다 못해 나의 피부색도 파란색으로 덮였고 옷으로 몸을 다 덮지 않아도 될만한 따듯함이 섞여 있는 햇살이 발코니에 내 몸을 비추며 내 방을 감싸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거리에 나가보니 내가 어떤 차림으로 있던지 쳐다보는 사람은 없고 내가 믿었던 존재마저도 나를 외면하는 갑작스러운 가을이 돼버렸습니다. 언제까지나 우리는 바다와 소금 바람 같은 존재일 줄 알았지만 생각보다 바다와 소금 바람은 함께 할 수가 없었습니다. 바람과 바다는 섞이지 않았고 어느 바다에서 묻어나는지도 모르는 소금 바람만 되어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저의 가을은 갑작스럽게 그렇게 바뀌어버렸고 앞으로 다가올 가을도 전혀 짐작할 수가 없습니다. 현실이 너무 현실 같아서 꿈인 것만 같았습니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제가 하는 말이 진실인지 아닌지 모르는 것처럼 말이죠. 바람은 지금도 어디선가 불고 있습니다. 어쩌면 겨울바람보다 날카로울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던 바람은 바다를 거쳐 저의 마음속에 들어왔습니다. 정작 둔한 나는 그 바람을 바람이라고 생각 못하고 언제까지나 제 마음속에 있을 줄 알았습니다. 바다의 향만 남기고 떠난 소금 바람은 더 이상 소금 바람이 아닙니다. 앞으로 어떤 바람이 되어있을지 모릅니다. 궁금하지도 않습니다. 저에게 남기고 간 바다만 어떻게 퍼내야 할지 고민입니다. 파내도 파내도 끝도 없는 이 바다의 깊이를 과연 알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신이라면 알까요. 신의 존재를 믿지는 않지만 지나가는 사람의 마음을 추측하는 것보다는 마음이 편해집니다. 누군가의 마음을 헤아린다는 것은 자연의 순리보다 어려운 것 같습니다. 누군가와 대화하는 것도 힘들어집니다. 죽는다는 두려움만 없었더라면 이대로 저도 바람이 되어 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이것 또한 신이 계획한 일일까요. 그렇다면 조용히 새벽에 기도하러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한동안 누군가에게 의지하여 시간을 할애하는 짓만 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시간을 사용하는 법을 순간적으로 까먹은 것입니다. 저는 운이 좋다면 좋다고 해야 하는지 저를 부축해주던 친구들이 몇몇 있었습니다. 저에게 위로가 돼주는 말을 해주고 조용히 저의 말을 들어주고 아무 말도 안 해주었습니다. 하지만 집에 돌아와 발코니 속 제 벌거벗은 모습을 보니 그 친구들의 말이 다 부질없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는 침대에 누워 바다와 소금 바람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쉽게 잊히지 않는 그 짠내는 어느새 코 끝에 묻었고 닦으면 닦을수록 바다의 향은 기도를 타고 저의 몸속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누군가를 생각합니다. 절대 잊을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도 저와 마찬가지로 저를 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분명 그렇게 생각합니다. 다만 잊은 척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게 아직 저한테는 적용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한 번 들어온 소금 바람이 다시 제가 생각하던 가을바람으로 물들려면 얼마나 긴 시간이 필요할까요. 얼마나 시간을 할애하며 친구들의 부질없는 위로를 받아야 할까요. 그 바람이 저의 마음속에 들어와 모든 것들을 흔들었습니다. 저의 모든 것들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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