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omorebi Nov 26. 2022

생각이 안 난다

Lethargy


 한 것도 없는데 무기력할 때가 온다. 뭔가를 하려고 했고 실행에 잘 옮기고 있는 와중에 모든 걸 멈춰버리고 온갖 핑계를 이유로 생각을 하는 척을 한다.


 다시 마음을 다잡고 하려던 일을 다시 시작한다. 시곗바늘이 움직이긴 했을까… 잠시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다시 핸드폰을 켠다. 그리고 전에 봤던 것들을 다시 핸드폰으로 보며 재미없어한다. 그 짓을 몇 번 반복한다. 정말로 핸드폰으로 뭔가를 해야 하는 건 아니었다. 정말로 목이 말라서 물을 마신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다시 말 같지도 않은 이유를 찾으며 하려던 것을 멈춘다. 그러곤 누워서 눈을 감는다. 그리고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자기 전 다음 날 일어나야 할 시간을 맞춘다. 8시에 일어나려고 한다. 8시에 일어나서 해야 할 일은 없다. 실제로 나가야 하는 건 오후 1시에 나가야 한다. 1시에 나가려면 11시에 일어나도 충분하다. 일어나서 씻고 밥 먹기만 하더라도 나는 1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하지만 8시에 일어나고 싶어서 8시에 알람을 맞췄다. 그리고는 12시쯤 일어난다. 8시에 알람을 못 들은 건 아니다. 8시에 일어나서 알람을 끈다. 그리고 9시로 알람을 바꾸고 다시 잠든다. 9시에 알람이 다시 울리면 10시로 바꾸고 그 짓을 12시까지 반복한다. 잠이 많은 건 아니고 그렇다고 잠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자는 것도, 안자는 것도 아닌 피곤하고 한심한 수면이다. 마치 현실을 도피하고자 꿈을 그리워하며 자는 느낌이다. 알림이 울리기 전 새벽에 눈을 뜨면 문득 안심하곤 한다. 아직 현실을 부정할 명분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행동을 매일 반복한다. 그리고 이 행동들을 후회한다.


 반복적인 일상이 반복된다. 어떻게 보면 규칙적인 생활일 수도 있겠다. 루틴이라는 체계가 갖춰지고 그 틀에서 익숙함을 발견하면 대게는 그 안에서 무언가의 보람을 찾곤 하는데 나는 오히려 찾고 싶지 않은 것들을 찾는 것 같다. 반복적인 실수가 계속되면 더 이상 실수라고 부를 수도 없을 것이다. 지금 내가 겪고 있는 루틴은 이제 실수라고도 부를 수 없는 혹은 실수라는 말보다 더 원치 않는 단어로 변하고 있다. 원치 않기 때문에 나는 무언가라도 행동해야만 했고 다행히도 아직 움직여야 할 명분이 남아있다. 그래서 지금 '브런치'를 들어와서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이 무기력함을 타이핑하면서 아무 생각이 안 난다고는 할 수 없지만 원하지 않은 생각만 하는 것 같다. 그렇다고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일은 일찍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은 생긴다.

매거진의 이전글 유통기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