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라 핑크팬더 Ep.10
2025년 4월 6일, 고양하프마라톤의 날이 밝았다. 핑크팬더의 첫 하프(21.095km)마라톤 참가가 되겠다.
아침 7시까지 고양종합운동장까지 가야 하는 우리는 새벽 4시에 일어나 간단하게 미역국에 밥을 말아먹고, 테이핑 및 짐을 챙기고 지하철 첫차를 타기 위해 길을 나섰다.
새벽 5시, 벚꽃이 핀 새벽 밤길을 걸어 5호선으로 향했다. 5시 33분 첫차를 타고 이제 대회장인 고양종합운동장, 3호선의 종착지 대화역으로 향한다. 서울의 동쪽에서 고양의 서쪽 끝자락까지 간다. 이동시간만 1시간 30분, 긴 이동시간이다. 핑크팬더는 졸리는지 틈틈이 내 어깨에 기대어 잠을 청한다. (정말 곤히 잘 자더라..ㅎ)
고양시로 진입한 지하철이 지상 위로 오른다. 새벽밤은 걷히고 해가 뜬 고양시가 보인다. 오랜만에 방문하는 고양시이다.
6시 55분 늦지 않게 대화역에 도착한다. 일찍 온 탓일까? 러너들로 지하철 안이 북적일 거란 예상과 달리 한적했던 것 같다. 하지만 대화역을 올라와보니 고양종합운동장으로 향하는 러너들로 북적인다. 핑크팬더와 난 러너들 틈사이 파도에 휩쓸리듯이 따라가서 고양종합운동장에 도착한다.
스태프들의 안내로 종합운동장 안 복도로 입장한다. 여기서 핑크팬더는 나이키 알파3 러닝화로 갈아 신는다. 지난 서울마라톤에서는 우천으로 인해 신지 못 했던 알파3를 드디어 신는다. 신발을 갈아 신고 난 뒤 종합운동장 밖으로 나와 바로 스트레칭을 한다. 하프를 뛰어야 하니 열심히 몸을 풀어야 한다. 내 동작에 맞춰 머리부터 발끝까지 늘리고, 당기고, 돌린다. 스트레칭을 마친 뒤 조깅을 시작, 천천히 운동장 주변을 달려보는 핑크팬더는 몸에 열이 오르는지 입고 있던 플리스를 벗는다. 그리고 보조경기장을 돌아 고하마 집결지로 향한다.
집결지에 들어가기 전 핑크팬더는 에너지젤을 섭취하고, 입고 있던 마지막 바람막이를 벗고 싱글렛을 드러낸다. 이날의 날씨는 흐리고 아직 벚꽃이 피지 않은 고양시는 기온 8도로 서울보다 쌀쌀했다. 핑크팬더에게는 다소 싸늘한 날씨일 수 있음에도 싱글렛을 입고 온 건 이번 하프에 임하는 핑크팬더의 의지이다. 하지만 털장갑은 끼고 참전하는 핑크팬더.ㅎㅎㅎ
집결지 펜스 앞에서 나는 핑크팬더와 헤어진다. 펜스밖에서 핑크팬더를 지켜보았다. 그리고 우리는 통화를 시작했다.
“핑크팬더 잘 들려?”
“응 잘 들려~ 곰들씌!”
“이렇게 함께 달리자!!”
“응! 좋아~”
통화? 그렇다. 이날 핑크팬더와 나는 통화를 했다. 핑크팬더가 하프가 끝날 때까지. 하프(21.095km)를 나 홀로 나서는 핑크팬더가 마음에 걸렸던 나는 대회 참전 직전에 핑크팬더에게 제안을 했다. 조금 무겁겠지만 휴대폰을 들고, 샥즈를 착용하고 뛰는 게 어떻겠냐고 내가 통화로 페이스 체크를 해줄 수 있다고, 막연한 하프가 덜 힘들게 도울 수 있을 것 같다고 얘길 했다.
평소 휴대폰도 두고 뛰는 핑크팬더라 이 제안을 받을지.. 괜한 제안을 했나 싶었는데 그녀는 “좋아~” 흔쾌히 받아주었다. 허리에는 휴대폰을 넣은 러닝벨트를 착용하고, 샥 오프런 프로2를 착용하고 핑크팬더는 대회를 참전한다.
핑크팬더는 하프마라톤 마지막인 D조였다. 대회시작 시간 8시, A조가 출발하고 2~3분(?) 단위로 순서대로 다음 조가 출발을 했다. 그리고 D조가 출발을 한다.
“핑크팬더 출발선 지나면 알려줘!!”
“출발선 지나~ 나 갔다 올게!!”
“응! 시작이다!! 파이팅~!!”
마그네틱 출발선을 지나면서 핑크팬더는 가민워치를 작동했고 나는 스톱워치를 시작해 핑크팬더의 러닝시간을 체크를 했다.
“대화는 힘들 테니 오롯이 호흡과 뛰는데 집중하고, 랩 페이스를 알려줘-”
“응! 초반 병목이 장난 아니야~”
“초반이야 천천히~ 서두를 필요 없어!”
우리는 사전에 목표 기록과 전략을 설정을 했다.
• 10km : 54분 30초-55분
• 11km : 60-61분
• 15km : 80-81분
• 18km : 97-98분
• 마지막 3.095km : 있는 힘껏 뛴다!
전반 10km까지는 525-530 페이스로 뛰고, 후반은 510-520 페이스로 빌드업을 해서 최종 1시간 54~55분대로 들어오는 것으로 목표로 잡았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목표를 잡아보았다.
“1km, 523!!” 핑크팬더가 첫 1km 랩을 전달해 준다. 계획한 페이스보다 빠른 페이스였다.
“페이스가 조금 빨라 좀 더 여유 가지고 천천히 가도 돼~!”
“응 알았어!”
대회가 주는 아드레날린과 대회 극초반부 병목을 뚫고 가느라 자칫 오버페이스를 할지도 모를 핑크팬더를 나는 다그쳤다. 10km 마라톤과 달리 21.095km를 달려야 하는 하프는 체력안배가 필요하다. 특히 초반 3~4km 동안의 레이스는 몸과 심박이 풀리는 과정이기 때문에 결코 오버페이스를 하면 안 된다.
“2km, 522!”
“3km, 524!! 심박 166!!”
“4km, 525! 나 지속주하는 거 같은데?”
“5km, 519!? 큰일이다 빨라졌다.”
분명 우리가 계획한 페이스보다 2~5초 빠르지만 통화에서 전달되는 핑크팬더는 헛기침이나 숨이 헐떡이질 않았다. 평심박은 벌써 160이 넘어가고 있음에도 리듬 있게 호흡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제 1/4 지났다! 조금 빠르지만 페이스 잘 유지하고 있어! 힘내!”
나는 직접 현장에서 달리는 핑크팬더를 믿기로 했다. 혹여나 후반에 조금 밀리더라도 고하마 코스가 후반부가 긴 평지를 달리는 길이라 괜찮을 것 같았다. 500~519 페이스로 오버페이스만 하지 않길 바랬다.
핑크팬더는 매 km구간마다 이렇게 페이스를 알려줬고 덤으로 대회의 상황을 얘기해 줬다.
“6km, 환자발생!”
“터널을 지나 곧 함성소리가 들릴 거야”
“와아아아아~” 터널에서 들리는 러너들의 힘찬 함성소리 하지만 핑크팬더는 소리를 지르지 않는다.
“유모차 지나가고요~”
그리고 갑자기 “파이팅!” 뜬금없이 핑크팬더가 외친다. 나도 “파이팅!” 답을 했는데, “시각장애인 러너에게 한 거야”라고 얘기하는 핑크팬더, 이후에도 달리는 동안 시각장애인 러너들을 마주칠 때마다 “파이팅” 하는 핑크팬더의 작은 응원이 통화 너머로 들렸다. 핑크팬더 착하다! 훌륭하다!
“7km, 523! 심박 184! 심박 터졌어!”
“호흡 크게 내뱉으며, 이제 에너지젤 섭취하세요!”
“응 알았어! 하아~ 하아~ 하아~”
“이제 1/3 넘었어. 힘내!”
두 개의 에너지젤을 챙긴 핑크팬더는 7km와 14km 지점에서 에너지젤을 섭취하기로 했다. 이제 심박은 160에서 180대로 더 널뛰고 있었지만 통화로 들리는 핑크팬더는 여전히 괜찮아 보였다. 알파3가 착지할 때 나는 특유의 “뽁. 뽁. 뽁.” 소리도 리듬감 있게 들렸다. 가끔 호흡이 엇박자가 나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크게 호흡을 내쉬면서 호흡을 안정시키는 핑크팬더는 “페이스 누르며 달리고 있어!”라며 여유를 가지고 마이페이스에 유지하며 순조로운 러닝을 하고 있었다.
“급수합니다!”
“10km 구나!?”
“응!”
핑크팬더가 10km 급수대를 지나고 있었다. 통과시간은 53분대로 계획보다 1분 정도 빨랐다.
“11km, 59분 31초!”
“기록 좋다. 이제 10km 남았다!! 이대로 밀고 가면 돼!! 힘은 남아?!”
“응, 남아!!”
11km 지점도 목표보다 1분여 빠르게 통과했다. 하프마라톤도 이제 절반 이상을 달렸다. 핑크팬더의 페이스는 좋았다. 컨디션도 이상 없었다. 그렇게 핑크팬더는 하프마라톤 본게임이라 할 수 있는 후반전에 돌입한다.
후반부에 접어들면서 동쪽으로 달리던 코스는 반환점을 돌아 고향종합운동장으로 향해 서쪽으로 달리게 된다. 서풍이 불었던 탓인지 맞바람을 느낀 핑크팬더는 힘에 부치는지 “맞바람 분다. 힘들어!” 내뱉는다. 나는 “남은 거리가 더 짧으니 힘내”라고 독려를 했다.
“14km, 520!”
14km를 지나면서 핑크팬더는 520~523 페이스로 당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남은 후반부 힘을 내기 위해 마지막 에너지젤을 섭취한다.
“급수합니다!”
15km 지점이었다. 마지막 급수를 하는 핑크팬더 1시간 20분대로 통과한다. 이때쯤부터 우리의 대화는 줄었다. 핑크팬더는 랩 페이스만 얘길 하고, 나는 “앞으로 40분 남았다!” “앞으로 30분도 안 남았다!” “얼마 안 남았어! 조금만 더 힘내!” 라며 응원을 이어나갔다. 나머지 공백은 “헥. 헥. 헥.”거리는 핑크팬다의 거칠어진 숨소리와 알파3의 “뽁. 뽁. 뽁.” 착지소리만 귀에 맴돌 뿐이었다. 핑크팬더의 거칠어진 숨소리에서 후반부 힘이 부치는 것이 느껴졌지만 그럼에도 페이스는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었다.
“16km, 520”
“좋아! 이제 5km 남았어! 힘내!”
이때 구름으로 흐렸던 하늘이 개이기 시작, 따스한 햇볕이 내리쬐었다.
“핑크팬더 해 떴어! 따뜻해진다! 힘내!”라고 전했다.
그리고 17~18km를 520 페이스로 통과한 핑크팬더를 보고 확신이 들었다.
“핑크팬더! 이대로라면 1시간 53분대 가능하겠어! 라스트 3km 힘내!”
핑크팬더는 대답 없이 묵묵히 거친 숨을 내쉬며 두 다리를 움직이는데 전념했다. 나는 1시간 53분대 기록을 확신하고 “앞으로 13분!” “앞으로 10분 남았다!” 응원을 했다.
“19km, 520”
이제 마지막 2km가 남았다. 그리고 두 번째 “힘들어”라고 핑크팬더가 말한다. 핑크팬더의 숨소리는 더 거칠어져 갔다. 알파3의 “뽁. 뽁. 뽁”소리는 더 크게 들렸다. 핑크팬더의 발구름에 힘이 많이 들어간 듯했다.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서 달리는 듯했다.
“20km 528, 운동장 보여!”
“운동장 보여? 이제 진짜 다 왔다!” “마지막 3분! 힘내! 핑크팬더!”
드디어 고양종합운동장이 시야에 보이는 핑크팬더였다. 시간은 1시간 50분을 지난다. 그리고 갑작스러운 528 페이스에 퍼졌나 했는데, 나중에 듣게 된 거지만 20km 마지막 급수대를 지나치는데 버려진 종이컵이 알파3 밑창 홈에 끼여서 종이컵을 제거하는데 당황한 나머지 페이스가 떨어졌다고 했다.
"이제 운동장 안으로 들어간다!” “트랙 밟는다!” 핑크팬더가 말한다.
나는 고양종합운동장 트랙 입구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트랙으로 진입한 핑크팬더를 바로 발견했다. 운동장 반대편 넘어 흰 모자, 검은 싱글렛, 긴 흰 양말, 핑크팬더였다. 무리들 중에 그렇게 입은 사람은 핑크팬더뿐이었다.
그녀는 마지막 트랙구간 300m를 질주하고 있었다. 나는 결승점 앞트랙의 커브길에서 내 앞으로 다가오는 핑크팬더를 향해 “핑크팬더! 핑크팬더! 핑크팬더!” 외치며 한 손엔 카메라를, 한 손엔 폰을 들고 사진과 영상을 담으려고 노력했지만 내 외침이 핑크팬더에게 닿질 않았나 보다. 눈길하나 주질 않고 결승지점으로 향해 올곧게 달려가는 핑크팬더였다. (하참~)
그렇게 핑크팬더의 첫 하프마라톤 기록은 1시간 53분 26초, 목표 보다 더 좋은 기록으로 핑크팬더는 결승점을 통과했다. 성공적인 결과였다. 그리고 핑크팬더와 곰돌씌의 2시간 11분간의 긴 통화도 끝이 났다.
전력을 다해 뛴 핑크팬더가 덤덤히 걸어왔다. 이번에도 그랬지만 뛴 핑크팬더보다 응원한 내가 더 기뻐했던 것 같다.
대회장 밖으로 나온 우리는 보조경기장에 여러 스폰업체 부스를 돌아다니며 본격 전리품을 수집했다. 카스에서 준 테이핑과 멘소래담에서 얻은 파스 그리고 선크림은 향후 러닝훈련에 요긴하게 쓰일 것 같다. 만족스러운 수집활동이었다.
전리품을 수집한 우리는 재빨리 종합운동장을 벗어났다. 그리고 허기진 핑크팬더의 배를 채우기 위해 고양시 맛집으로 유명한 '일산 칼국수'로 향했다. 몇 년 만에 방문한 '일산 칼국수'는 여전히 긴 대기줄을 자랑했다. 고하마를 마치고 넘어온 러너들도 많이 보였다. 우리는 50여분을 기다린 뒤에서야 닭칼국수를 먹을 수 있었고, 긴 기다림의 가치는 있었다. 공깃밥까지 말아서 쓱싹 해치운다.
배부르게 식사를 마치고 난 뒤, 우리는 길었던 고양 하프마라톤의 일정을 마치고 서울로 향했다. 불과 몇 시간 전 1시간 30분여를 지하철을 타고 고양시로 왔는데 서울로 돌아가는 길도 마찬가지였다. 경의중앙선을 타고 1시간 30분을 달려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는 반대로 내가 졸고 말았다.
2025 고양 하프마라톤은 핑크팬더의 성공적인 마수걸이 하프마라톤으로 기억이 될 것 같다. 그리고 나에게는 서울과 고양시를 오가며 즐거웠던 짧은 여행으로 기억될 것 같다. 참으로 부지런히 움직이고 온 힘을 쏟고 다녀온 여행이었다. 열심히 달린 핑크팬더와 열심히 응원한 곰돌씌 ㅎ
그렇게 오후 3시에 서울로 돌아오니 새벽밤에 하얗게 개화했던 벚꽃은 새벽 때 보다 더 활짝 만개해 있었다. 봄이 짙어가는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