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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끼장미 Feb 07. 2022

슈퍼우먼이 되고 싶었던 나

엄마가 되어가는 시간

 온전히 내 힘으로 아이를 키울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지만, 오롯이 엄마를 의지하는 아이를 보니 용기가 생겼다. 그리고 그동안 허전했을 엄마의 빈자리를 부족함 없이 채워주고 싶었다. 한창 말도 배우고, 아장아장 걸어 다니며 세상을 배우고 싶어 하던 15개월 아이와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할머니와 다니던 문화센터에도 이제는 엄마와 함께 갔고, 놀이터와 공원도 엄마와 함께 갔다. 아이는 무럭무럭 잘 자랐고, 너무 예뻤다.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은 행복했지만, 나는 여전히 불안했다.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을 온전히 누리지 못했고, 하루빨리 일터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래서 유급 육아휴직 1년의 기간을 마치기가 무섭게 복직을 결정했다. 복직을 결정하고 나니 준비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았다. 아이를 맡길 어린이집을 결정해야 했고, 출퇴근 시간과 등원 시간 조율이 가능한 곳을 찾아야 했다. 0교시 보충수업이 시작되는 출근 시간을 맞추려면 6시 30분에는 아이를 맡겨야 했다. 어린이집 상담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불편해지는 마음이 느껴졌다. 온종일 엄마 오기만을 기다리는 아이들의 애처로운 눈빛, 아이들 돌보는 일에 시달린 선생님들의 초췌한 모습들이 하나둘 현실로 다가왔다.     

 

 불편한 느낌이 드는 상황을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기로 했다. 이른 시간 등원이 마음에 쓰여 복직 2~3달 전 직장 근처로 이사를 했다. 그런데 이삿짐을 풀러 정리하고 있는데 보내기로 생각했던 어린이집에서 연락이 왔다. 토요일에는 등원이 불가하며, 조건이 안 맞으면 다른 어린이집을 알아보라는 통보였다. 어린이집 하나 보고 이사를 결정했는데 이제 와서 안된다니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이었다.   

  

답답한 마음에 이삿짐을 정리하다 말고 저녁이나 먹으러 나가자는 남편과 함께 집을 나섰다. 맛나게 저녁을 먹고 나오는데 음식점 뒤편에 공원이 보인다. 공원에 산책이나 가볼까 하고 걸어가는데 저 멀리 어린이집 간판 하나가 보인다. 혹시나 해 들어가 보니 원장 선생님이 계셔서 상담했다. 이른 출근 시간, 토요일 등원이 가능한지를 물었더니 원하는 상황 모두 맞춰주실 수 있다며 따뜻하게 이야기해주셨다.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는 데 어려운 상황을 다 이해해 주시고 맞춰주신다고 하니 괜스레 눈물이 났다. 함께 눈물 흘리며 마음으로 이야기 들어주시는 원장 선생님께 너무 감사했다. 답답한 마음에 저녁이나 먹으러 나오지 싶어 나왔는데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아이는 26개월이 될 즈음 엄마의 복직 두어 달 전부터 어린이집 생활을 시작했다. 처음엔 울기도 하고 감기에 걸리기도 했지만 금세 적응을 잘하는 아이를 보며 완벽하게 복직 준비를 마쳤다고 생각했다. 모든 것이 괜찮을 거로 믿었다.




   

복직하면서 나름의 포부도 있었다. 아이도 잘 키우고 내 일도 잘 해내고 싶었다. 그래서 복직 후 누구보다 열심히 최선을 다했다. 워킹맘 아이라 애도 제대로 못 챙긴다는 소리 듣고 싫어서 말끔히 씻기고 입히고 머리를 빗겨서 어린이집에 등원시켰다. 애 키우느라 직장 일에 소홀하다는 소리 듣지 않기 위해 정성으로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데 복직 후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들에 속수무책이었다. 복직 2주 후 추석 연휴 내내 아이는 고열에 시달렸다. 아침부터 밤까지 계속 울며 보챘다. 종일 울며 매달리는 아이를 안아주고 업어주며 달래 보지만 밤새도록 엄마에게 매달려 울기만 했다. 아이 자고 있을 새벽, 출근 준비로 머리라도 감을라치면 욕실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는 안아달라고 울었다. 따라 나온 아빠가 안아준다고 해도 소용이 없었다. 머리 얼른 감고 안아준다는 엄마의 말에도 아랑곳없이 ‘엄마 안아줘’ 생떼를 쓰는 아이를 보며 답답하고 힘들었다. 머리 감던 엄마도 울고, 엄마에게 안기고 싶은 아이도 울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아빠도 함께 울었다. 퇴근 후에도 저녁 준비라도 할라치면 엄마 다리에 매달려 안아달라고 했고, 그러다 눈물이 시작되면 잦아들기까지 3~4시간을 울다가 지쳐 쓰러지는 날들이 잦아졌다.       


직장에서의 생활도 만만치 않았다. 아무리 출근 시간 맞춰 준비해도 돌발 상황은 끝이 없었다. 출발 직전에 쉬 마렵다고 말하거나 옷 입히는데 토하거나, 열이 나서 병원에 다녀와야 하는 등 지참과 조퇴가 잦아졌다. 그래서 늘 미안하고 부탁해야 하는 상황이 괴롭고 힘들었다. 그래도 학생 지도에는 최선을 다하고 싶었는데, 퇴근 후에는 늘 시간에 좇기는 상황이라 야간 자율학습이나 보충수업 등 학생들이 원하는 부분을 채워줄 수가 없어서 괴로웠다. 담임이 아니니 책임질 학생이 있는 상황은 아니었지만, 학생들에게 최선을 다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 견디기 힘들었다.     



괜찮을 거라 생각했는데, 육아도 일도 아이도 그리고 엄마인 나도 모든 것이 뒤죽박죽 되어 버렸다.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지? 

고민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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