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해도 돼. 행복했으면 해

우리에겐 때로 삶이 멈춘 것 같은 순간이 찾아온다

by 숭숭

W를 처음 만난 건 21년 졸업작품에 관한 상담을 하면서였다. 따뜻한 그림체를 가진 W는 귀엽고 아기자기하게 잘 정리된 졸업작품 기획서를 갖고 왔다. W는 졸업작품의 스타일을 가늠할 수 있도록 다른 수업 때 과제로 했던 자신의 단편 웹툰을 보여주었다. 책을 매개로 한 주인공과 엄마의 행복했던 시간, 엄마의 항암 투병, 이별, 주인공의 상처… 그리고 다시 시작하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었다.


'암으로 어머니를 잃은 주인공...'


웹툰을 보자마자 주인공이 W라는 것을 알았다. 항암치료로 머리카락이 빠진 어머니가 모자를 쓰는 장면이나 다양한 종류의 책들이 항암 관련 책들로 바뀌는 장면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W의 단편 웹툰 - 이야기를 시작하는 방법


하지만 인상적이었다는 말이 피상적이었다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2년 반이 걸렸다.


2년 반 뒤,


나는 어머니의 암 수술실 앞에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골반 주변 복근에 생긴 육종암. 암 중에서도 전이와 재발이 잘 되는 희귀 암이라고 한다. 병원에서는 최악을 가정하여 선고를 한다. 마치 사형선고를 하듯 당신은 이러이러한 암이라고 선고를 내린다. 그리고 환자는 죄인처럼 의사 앞에서 그 선고를 받는다. 소명할 기회는 주어지지 않는다.


선고 후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절차가 진행된다. 우선 여러 가지 검사를 하고 수술 날짜를 잡고, 수술대에 오르고, 수술 후 고통이 찾아온다. 수술 부위의 특수성 때문에 정형외과와 일반외과가 함께 수술에 참여했다. 긴 수술이 끝나고 회복실로 간 어머니는 마취가 풀리면서 고통에 몸부림쳤다. 병원은 코로나19의 여파가 아직 남아있었기에 코로나19 음성이 확인된 보호자 1명 만이 간병인으로 허락되었다. 다행히 여름방학 중이었던 나는 보호자 자격으로 수술부터 퇴원까지 어머니 간병을 할 수 있게 되었고 고통스러워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생생하게 지켜봤다.


'암 덩어리도 제거가 되었으니 회복하고 퇴원만 하면 괜찮겠지...'


그러나 퇴원이 끝이 아니었다. 퇴원 후에는 8차까지의 항암치료가 기다리고 있었다. 담당 의사는 육종암이라는 게 재발도 잘되고 전이도 잘되는 지독한 암이기 때문에 항암제 용량을 높여서 아주 세게 한번 해보자고 한다. 항암을 하는 기간은 차수당 5일. 한 차례 항암이 끝나면 3주간 쉬었다가 다시 또 다음 차수 항암치료를 한다. 항암치료 직후에는 면역도 함께 떨어져서 컨디션이 최악이 된다. 그나마 3주 동안 집에서 간신히 회복한다 싶으면 바로 다음 항암치료가 기다리고 있다. 특히 3차 항암치료 때는 같은 병실에 코로나 환자가 발생하여 매우 위험한 순간도 있었다.


이런 일들을 겪은 뒤 얼마 전 문득 W의 웹툰을 보게 된 것이다..


웹툰의 마지막 부분, 주인공의 어머니가 '생의 한가운데' 책의 속표지에 적은 편지 내용이 있다.


'생의 한가운데'에서, 우리는 때로 삶의 이야기가 멈춘 것 같다고 느낄 수 있어. 다시는 어떤 것도 할 수 없고, 느낄 수 없을 것 같다고.


그런데 이야기를 다시 시작하는 방법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아. 몇 개의 문장만으로도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거든.


봐봐, 음... 어떤 문장이 좋을까?


아, 이건 어때?


"행복해도 돼. 행복했으면 해."



나는 괜찮다고, 모든 상황을 이겨낼 수 있다고 이를 악물고 1년을 버티며 어머니의 수술과 항암 등 여러 일들을 겪었다.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을 왔다 갔다 하는 동안 단 한 번도 비관적인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다 괜찮을 거라고 희망적인 얘기로 어머니를 위로하며 지냈다. 그러나 수술 후 고통스러워하는, 항암치료로 힘겨워하는, 조금씩 빠지는 머리카락을 모자로 가리는, 밥맛을 잃어 끼니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어머니를 보며 어쩌면 나는 나도 모르게 깊고 어두운 저편으로 빠져들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무력감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

사랑하는 이를 잃을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


그때 마주한 W의 웹툰은 내게 큰 위로가 되었다.


"행복해도 돼. 행복했으면 해."


예전과는 다르게 느껴지는 W의 웹툰을 통해,

다시 이야기를 시작할 용기를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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