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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르미도르 쿠데타

1794년 7월 27일, 프랑스

by 훙훙

오늘은 그 유명한 프랑스 대혁명과 관련된 사건입니다. 다들 바스티유 습격으로 시작된 프랑스 대혁명은 블라블라~ 루이 16세 처형 랄랄라~ 정도로 알고 계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루이 16세 처형 이후 나폴레옹 등장 이전까지는 아무래도 주목도가 떨어지는 탓인지 그 사이의 일들은 잘 알려져 있지 않죠.

오늘은 나폴레옹 등장 이전, 실질적인 프랑스 대혁명의 막을 내린 테르미도르 쿠데타를 다루어 보겠습니다.

루이 16세가 처형되고 난 뒤 프랑스는 국민의회를 중심으로 국가를 운영하게 됩니다. 이 국민의회는 크게 자코뱅파와 지롱드파로 구분되어 있었습니다. 둘 다 혁명 당시에는 혁명지지파에 속했지만, 국민의회가 들어선뒤에는 자코뱅파가 과격파, 지롱드파가 온건파로 분류되게 됩니다.

자코뱅파를 이끌던 로베스피에르는 혁명재판소를 만들고 엄격한 법집행을 통해 수많은 사람을 체포하고 구금합니다. 반혁명혐의를 받은 정치범들도 많이 생기게 되었죠. 문제는 이런 혁명재판소를 정치적 반대파를 숙청하는데 사용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13876536_1576641019296112_1615961462771587271_n.jpg 혁병정부 수반이었던 로베스피에르

1973년 1월에 루이16세가 사형당한 뒤, 1973년 한 해 동안 1만 7천명이라는 사람들을 사형에 처합니다. 이들은 대부분 반혁명혐의가 씌워 졌고, 로베스피에르와 자코뱅파는 이런 공포정치를 통해 프랑스 정부를 장악했습니다. 반대파였던 지롱드파는 축소되고 탄압 받게 됩니다.

문제는 이런 공포정치하에서 프랑스경제가 악화 일변도를 걷게 되고, 또 무분별한 사형집행에 혁명파의 주요인물들이 희생되면서 여론이 악화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또 루이16세의 처형에 자극받은 주변국들은 프랑스를 공격하기 위한 움직임을 보였습니다. 자코뱅파의 공포정치는 안으로는 경제불안과 갈등, 밖으로는 외국의 침략으로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지롱드파는 왕당파들과 결탁해 자코뱅파를 견제하기도 했습니다.

공포정치에 대한 우려는 자코뱅파와 로베스피에르의 동지들 사이에서도 흘러나왔습니다. 그러나 이들마저 단두대에서 처형되면서 의원들 사이에 로베스피에르에 대한 반감은 커지게 됩니다.

1794년, 프랑스혁명력의 11번째달(테르미도르, 양력 7월)에 열린 국민공회에서 로베스피에르는 반혁명세력의 존재를 밝히고 이들을 숙청하겠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미 로베스피에르와 공포정치에 반감을 가지고 있던 의원들은 반혁명파를 명확하게 밝히라며 항의를 시작했습니다.

이런 상황에 자코뱅파는 온건파와 급진파로 또 분리가 됩니다. 문제는 온건파는 로베스피에르가 너무 과격하다고 등을 돌리고, 급진파는 결단력이 없다고 등을 돌렸다는 겁니다. 7월 27일에는 반대파들이 국민의회를 장악하고 로베스피에르의 의회연설을 막게 됩니다. 그리고 재판정에 로베스피에르와 그 동료들을 반혁명혐의로 고발하고 체포를 시도합니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는 동안 의회의 누구도 로베스피에르를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로베스피에르는 체포과정에서 턱에 총상을 입게 되는데, 자신이 권총자살에 실패해 턱이 날아가는 중상을 입었다는 설과, 도주 중에 체포대가 쏜 총에 턱을 맞았다는 설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로베스피에르는 단두대 앞에서 유언조차 남기지 못했다고 합니다.

13872664_1576641012629446_4945601821429384158_n.jpg 잘보면 총을 맞는 로베스피에르가 보인다.

로베스피에르의 지지자들과 친위대는 파리시청에 모여있었는데, 로베스피에르의 체포소식을 듣자 구출작전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파리시내의 시민군조직은 이미 로베스피에르의 집권시기에 역할을 다했다는 이유로 상당수가 자체 해산하였고, 이 때문에 무장하지 못한 로베스피에르의 지지자들인 시민군은 쉽게 진압되고 맙니다.

테르미도르의 쿠데타로 로베스피에르는 실각하게 되고 다음날인 28일, 단두대에서 사형에 처해집니다. 이 후 나폴레옹 등장시기 까지, 왕당파와 지롱드파가 연합한 정권이 프랑스를 이끕니다. 이들은 로베스피에르의 개혁을 되돌리고 자코뱅파에 대한 학살을 하게 됩니다.

넓게 보자면 나폴레옹 전쟁의 끝이 프랑스대혁명의 종말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 루이16세를 끌어내리고 혁명정부를 구성했던 본래의 대혁명은 테르미도르의 쿠데타로 막을 내리게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는 테러의 어원이 됩니다.

로베스피에르는 공포정치로 독재를 했지만 사생활 면에서는 정적들도 비판 할 수 없을 만큼 깨끗했다고 합니다.

사생활적인 측면에서, 로베스피에르는 목수의 월세방에 살았고 월세방에서 집무실로 출근했으며, 셋방주인의 셋째딸과 약혼했습니다. (이건 그냥 셋째딸 때문에 계속 남아있던거 아니냐?)

공포정치라고 해서 많은 사람들이 막연하게 시민들이 억압되는 정치상황을 생각하는데, 사실 공포정치는 정적들과 반혁명세력들에게 해당하는 것이고, 파리 시민들은 로베스피에르와 자코뱅파를 지지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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