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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라이비츠 방송국 습격사건

1939년 8월 31일, 독일(현 폴란드령)

by 훙훙

오늘은 폴란드에서 있었던 방송국 습격 사건입니다. 1939년 8월 31일, 독일과 폴란드의 국경지대에 있던 글라이비츠 방송국이 폴란드 군인들에게 습격을 받게 됩니다. 폴란드 군인들은 순식간에 방송국 직원과 경비를 포박하고, 방송으로 독일에게 선전포고를 하고는 사라집니다. 그리고 방송국 앞에는 폴란드 군복을 입은 남자의 시체가 한 구 발견됩니다.

14141559_1588507258109488_4134668826605527655_n.jpg 사건이 일어난 방송국

역덕분들이나 밀덕분들은 뭔가 이상함을 느끼실 겁니다. 1939년은 세계 제 2차대전이 일어난 해이고, 바로 다음 날인 9월 1일이 독일의 폴란드 침공이 일어난 날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독일이 폴란드 침공의 명분으로 삼은 사건이 바로 글라이비츠 방송국 습격사건입니다. 폴란드 군인들이 먼저 독일에 선전포고를 했다는 것이죠.

방송국 습격사건이 일어난 후 괴벨스는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폴란드의 테러를 비난하였으며 몇 시간 뒤 독일 전투병력이 폴란드 국경을 넘으면서 폴란드 침공이 일어나게 됩니다. 세계사 최악의 전쟁인 제 2차 세계대전의 시작이었습니다.

6년이 넘는 전쟁기간동안 방송국습격사건은 진상이 밝혀지지 않은채, 폴란드가 어째서 독일에게 전쟁명분을 줄 테러를 일으켰는지 의문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결국 전쟁이 끝난 후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에서 ss친위대인 알프레드 헬무트 나우요크스의 증언에 의해 진상이 밝혀지게 됩니다.

14212782_1588507264776154_2902940078040652084_n.jpg 나우요크스의 사진. 전범재판 직전 도주해 잡히지 않았다.

ss 사령관인 하임리히 힘러와 국가보안본부의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의 지시를 받은 나우요크스는 8월 말, 글라이비츠 북쪽의 오베른이라는 도시로 향합니다. 그곳에는 게쉬타포 장관인 밀러가 있었고, 오베른의 수용소에서 죄수들을 건네 받게 됩니다. 죄수들은 깡통으로 불렸습니다.

8월 31일,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라는 작전신호를 받은 나우요크스 일당은 폴란드 군복을 갖춰 입고 방송국을 습격해 미리 준비한 선전포고문을 폴란드 어로 방송하게 됩니다. 그리고 준비한 깡통들은 폴란드 군복을 입히고 약에 중독시킨 채로 방송국 앞마당으로 끌고가 등뒤에 총을 쏴 살해 합니다. 도망치다가 총에 맞은 것처럼 위장한 것입니다. 이들의 습격은 4분정도 밖에 걸리지 않았을 만큼 철저하게 준비 되어 있었습니다.

히틀러는 폴란드 침공에 대한 명분을 찾기 위해 5월 부터 하인리히 힘러에게 방안모색을 지시했고, 하임리히 힘러는 자국의 방송국에 테러를 일으킨 것입니다.

아이러니 한 일은 독일의 동맹국이던 일본 또한, 중국 침공을 위해 만주사변이라는 자작극을 일으켰다는 것이죠. 전쟁에 대한 과욕과 광기는 이처럼 자국민에 대한 테러도 불사하는 미치광이들을 양성하게 되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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