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행궁과 거중기
정약용은 많은 에피소드를 남겼다. 정조와의 브로맨스는 물론, 수원 화성에서의 거중기, 목민심서 등등 뛰어난 저작물과 발명품으로도 잘 알려져있다.
그 중에서도 거중기는 일개 유학자가 아닌 실리성을 추구했던 실리주의자 정약용을 나타내는 장치로 부각되어 왔다. 당시 양반이 상놈들이나 하는 몸쓰는 일을 위해 직접 기계장치를 고안하고 설계 했다는 것이 현대인으로서는 꽤나 신선하게 받아들여진 탓이다.
하지만 여기엔 뜻밖의 반전이 있는데, 거중기는 세간에 알려진바와 달리 화성의 성벽을 쌓아 올리는데 사용한 것이 아니라 석재를 수레에 옮겨 싣는데 사용한 것이다. 실제로 성벽위로 돌을 들어올리는 녹로라는 기계가 따로 있었다. 물론 그것도 정약용이 설계했다.
정약용이 정조가 행차시 머물던 수원행궁으로 거중기와 녹로를 가져와 정조에게 처음으로 기계장치를 선보이는 날 정조는 크게 기뻐하며 버선발로 내려와 정약용을 얼싸안았다고 한다. 얼마나 기뻤던지 정약용과 한상에서 밥을 같이 먹었고, 그날 밤은 정약용을 행궁으로 불러 밤새 술을 마시다가 같은 방에서 잠이 들었다고한다. 정약용은 평소에 술을 거의 못함에도 그날만큼은 정조가 주는 술을 모두 받아먹고 정신을 못차릴 지경이었다고 하고 정조 또한 정약용이 평소에 술을 못하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도 만취할때까지 술을 권하였으니 정조의 기쁨이 얼마나 컸는지 짐작이 간다.
당시 규장각직각을 맡던 서용보는 역시 정조의 신임을 두텁게 받고 있었는데, 정약용과 사이가 좋지 않아 이 일을 두고 크게 상심했다고 한다.
거짓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