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3월 16일, 베트남
오늘은 미군 역사상 최악의 흑역사로 칭해지는 베트남전쟁, 그중에서도 최악의 사건인 미라이 양민학살 사건이 일어난 날입니다.
베트남전쟁 자체가 더러운 전쟁이라는 평가를 받지만, 이 미라이 학살 사건은 그중에서도 가장 더러운 전쟁 범죄에 속합니다.
먼저, 베트남전 당시 미군의 문제점을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 당시 미군은 베트남전으로 군인들이 소모되면서, 저학력, 저소득자 중심의 파병이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현재 미국 정치인들 중에 베트남전 참전 기록을 가지고 있는 정치인들은 영웅 취급을 받는 것입니다. 대신 일반 전투병력의 인성과 질은 매우 낮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더욱이 부패한 남베트남을 돕는다는 것에 미국 내부에서도 많은 불만이 있었고, 때문에 세계대전과는 달리 청년들은 입대에 회의적이었습니다. 이는 베트남 파병 군인의 질을 더욱 떨어뜨리는 원인이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1968년, 일명 구정공세가 벌어집니다. 구정공세란, 남베트남에서 게릴라전을 펼치고 있던 베트콩들이 구정을 기해 남베트남 전역에서 대대적인 공격을 가한 것으로, 구정 휴가를 보내고 있던 미군과 남베트남군은 베트콩들의 기습을 막아내지 못하게 됩니다.
순간적이었지만 사이공의 미 대사관이 불타고, 대도시가 점령당하기도 하는 등, 구정공세는 성공적으로 보였으나, 미군은 곧 병력을 수습하여 반격에 나섰고, 곧 베트콩들을 섬멸하고, 점령당한 지역을 수복해 나가기 시작하면서 구정공세는 실패하게 됩니다.
이 수복 과정에서 미군들은 미국에서 새로 지원된 부대들까지 투입해야 했고, 그중에 23보병사단 11여단 20보병연대 1대대가 미라이 마을 수복을 위해 미라이마을을 포위하게 됩니다.
A, B 중대는 미라이마을을 포위하고 C중대가 마을에 투입되어 혹시 남아 있을지 모를 베트콩과 협력자를 색출하게 되는데, 이미 마을에 게릴라들은 빠져나가고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C중대원들은 미라이 마을의 주민들을 강제로 끌어내 모았고, 곧 대학살극이 벌어지게 됩니다.
마을 주민 150여 명이 사살당했고, 아이를 안고 도망가는 여자들을 쫒아 가 총격을 가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는 그 아이도 사살당하는 지경에 이릅니다. 게다가 C중대원들은 이를 적군 사살로 표시하는 등, 지휘계통 또한 이 학살을 막을 생각이 없었습니다.
또 미라이 학살을 끝내고 증원된 부대는, 인접한 마을에서 또 학살을 벌여 주민 200여 명을 사살, 두 마을을 합쳐 500여 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 학살 사건은 여러가지 경로를 통해 미국 사회에 알려지게 됩니다.
먼저, 당시 헬기(OH-23)로 미라이 마을 주변 정찰 임무를 수행 중이던 '휴 톰슨 주니어'준위는 지상에서 벌어지는 학살사건에 경악하여 민간인들을 구출하기 위해 나섰습니다.
이들은 학살 작전을 수행 중이던 C중대 켈 소대와 대치하였고, 같은 미군을 향해 사격 위협까지 하면서 민간인들을 구출했습니다. OH-23 헬기가 정찰용 소형 헬기인 탓에 많은 수를 구출하지는 못했지만, 이들의 영웅적인 행위로 미라이 사건은 은폐되지 않았습니다.
또 사진기자였던 로널드 해벌, 프리랜서 기자인 시모어 허시에 의해 학살 사진과 기사가 공개되면서 1969년, 미국 사회가 발칵 뒤집히게 됩니다.
미군은 즉시 1대대에 대한 진상조사에 나섰고, 상급부대에서 마을에 대한 초토화 명령을 내렸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미군은 장교 14명을 체포하고 형사재판에 넘겼으나, 실제로 형사 처벌을 받은 것은 현장지휘관인 윌리엄 켈리 소위 뿐이었습니다.
켈리 소위 또한 민간인 학살로 종신형을 선고받았으나,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지시로, 가택연금으로 감형되었고, 3년 뒤 가택 연금도 해제되면서 사실상 형사처벌받은 장교는 없습니다.
미라이 학살 사건은 구정공세와 더불어, 베트남전 참전에 대한 명분을 뒤흔들었고, 미국 사회에서 자성의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전 세계적인 68 운동의 효과도 이어져, 미국내에서도 미군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었고, 결국 이는 미군의 베트남 철수를 이끌어 내는 계기가 됩니다.
1. 윌리엄 켈리 소위는 훗날 자신의 행위를 참회하고 반성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당시 학살 책임자들 중, 유일한 사죄 표현입니다.
2. 그리고 켈리는 성공한 사업가로 잘 먹고 잘 살고 있습니다.
3. 민간인을 구출한 영웅인 휴 톰슨 준위는 비행무공십자장을 수여받았으나, 훈장 수여 항목에 '교전에 휘말린 민간인을 구출'이라고 적혀 있는 것을 보고 훈장을 던져버렸다고 합니다.
4. 휴 톰슨 준위와 당시 동승자 2명은 1998년, 민간인 구출 공로를 인정받아 군인훈장을 수여받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