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3월 12일, 대한민국
오늘은 우리나라 헌정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 사건이 일어난 날입니다. 사실 임시정부까지 따지자면, 노무현 전 대통령 이전에 탄핵당한 대통령이 한 명 더 있는데, 바로 임시정부 대통령이었던 이승만 전 대통령입니다.(사유는 횡령)
하지만 대한민국 제헌 이후에 탄핵안이 가결된 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처음입니다. 때문에 당시에도 정치적으로 많은 논란을 일으켰지요. 2002년, 노무현은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로 대선을 치르고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그렇게 대통령에 취임했지만, 임기 초반부터 굵직한 정치 사건들을 해결해야 했죠.
먼저 김대중 정부의 대북송금 사건이나, 2002년 대선 과정에서 불거진 불법 정치자금 사건 등이 있었습니다. 당시 SK그룹에서 민주당에 대선자금으로 25억을 제공했고, 이것이 대선 비리 사건으로 확대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대선자금 수사가 확대되면서 SK그룹에서는 민주당뿐만 아니라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의 전신)에도 대선자금을 건넸고 그 금액이 100억 원이 넘는다는(차별 보소.)것이 드러난 것입니다. 대선자금 수사는 여야를 가리지 않고 확대되었고, 한나라당에서는 차떼기(차량에 현금을 채워서 차 통째로 전달 받음...)라는 충격적인 방법을 동원해 LG그룹으로부터 SK그룹 이상의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것이 밝혀집니다. 더욱이 대선자금 수사에 대해 노무현 대통령을 맹공했던 것이 한나라당이었기에 한나라당은 수많은 비웃음을 당해야 했고, 당사까지 팔아가며 불법 정치자금 800억을 갚아야 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정치적으로 위기에 빠진 것도 당연한 일이었죠.
민주당 쪽도 사정은 좋지 않은 편이었습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민주당을 탈당하고(대통령이 당적을 보유하는 것이 옳으냐의 문제는 왕왕 논쟁거리가 됩니다.) 새로이 창당된 열린우리당을 지지하였는데, 민주당에서는 이것을 민주당의 힘으로 대통령이 된 사람이 당을 버린 것으로 여겼습니다.
2004년에는 국회의원 총선거가 예정되어 있었고, 신당은 열린우리당은 노무현 대통령의 심정적인 지지를 받고 있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상당히 직설적인 화법을 구사했기 때문에, 총선을 앞두고 열린우리당을 지지해줄 것을 호소하는 발언을 여러 차례 하였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도 중립을 지켜달라는 권고를 할 정도였습니다.(그리고 2016년에도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지지 순방과 발언을 하게 되는데, 이번에는 중앙선관위에서 아무 말이 없군요.)
사실,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 발언 이전에도 각종 여론조사에서 열린우리당은 과반의석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되었습니다. 그런 상황에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정치적인 열세를 뒤집기 위한 카드가 필요했고, 노무현 대통령의 선거중립의무 위반을 근거로 탄핵안을 상정하게 됩니다.
열린우리당에서는 탄핵안을 막기 위해 국회를 점거하고 농성하였으나, 압도적인 숫자의 한나라당, 민주당, 자민련 등의 야당들은 이들을 강제로 끌어내고 193명의 찬성으로 탄핵안을 가결시킵니다. 탄핵안 가결 이후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심판청구를 받아들여 심사를 시작하였고, 노무현 대통령은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되어 고건 국무총리의 대행이 시작되었습니다.
여론은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예상과는 달리 악화일로를 걷게 됩니다. 국민들은 우리가 뽑은 대통령을 의회에서 탄핵했다는 것에 분노했고,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열린우리당의 지지율이 70%까지 치솟는 등, 탄핵 역풍이 강하게 불었습니다. 모 한나라당 국회의원은 토론 프로그램에 나와 “탄핵안 가결은 지지세력을 결집시키기 위한 노무현 대통령의 정략이다. 탄핵을 기다리며 버티기하고 있었던 것이다.”라고 주장하다가, 사회자에 의해 “알면서 왜 하셨습니까?”라고 굴욕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탄핵에 대한 반대 여론은 지역과 연령을 불문하고 매우 높았습니다. 심지어는 한나라당의 정치적 중심지인 대구와 경북에서도 탄핵 반대의견이 과반을 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정세 속에 치러진 17대 국회의원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은 152석이라는 압도적인 승리를 얻었습니다. 당시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의 실언이 없었다면 개헌이 가능한 2/3의 의석을 획득했을 것이라는 예상이 있을 정도의 완벽한 승리였습니다. 민주당은 원내 4당으로 전락하게 되었고, 자민련은 김종필 총재를 비례 1번(...)으로 내세우는 배수진까지 쳤지만 비례 1번도 당선을 못 시킬 정도로 몰락하게 되었습니다. 한나라당은 텃밭인 경상북도에서 선전하여 121석을 확보하며 체면치례를 하게 되었죠.
결국 이 탄핵안은 2004년 5월 14일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의해 기각되면서 탄핵정국은 마무리 되게 됩니다. 그럼에도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이라는 사건과, 열린우리당의 창당으로 불거진 일련의 흐름은, 대한민국 정치사에 큰 변화를 야기하게 되었습니다.
올해는 20대 국회의원 선거가 있는 해입니다. 여당과 야당은 어느 쪽 할 것 없이 내홍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이러는 와중에 또다시 청와대의 선거개입 논란도(엄밀히 이야기하면 공천 개입 논란이지요.) 불거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투표합시다. 탄핵심판이든 역풍이든, 여러분의 표가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