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8 사건 발발
1947년 2월 28일, 타이완
타이완은 참 복잡한 근대사를 가지고 있는 나라입니다. 지금은 장제스의 국민당이 점령하여 중화민국으로 불리고 있긴 하지만, 타이완이 온전히 중국인들의 지배를 받게 된 것은 생각보다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청나라에 귀속되어 있긴 했지만 청나라의 행정력은 거의 미치지 않았고, 그나마도 청일 전쟁 이후에 일본에 할양되어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았습니다.
2차 세계 대전 기간 동안, 일본은 타이완과 조선을 2등 국민 취급하며 차별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 패망 후, 장제스의 국민당군이 타이완에 진주하자 타이완 원주민(이하 본성인)들은 이들을 매우 환영했죠.
그러나 중국 본토인(이하 외성인)으로 구성된 국민당군은 일본과 다를 바 없는 점령군일 뿐이었습니다. 또 중국 본토에서 공산당과의 세력다툼이 계속되고 있던 상황에, 타이완에 인력과 물자를 투자할 여력도 없었습니다. 당시 타이완을 담당한 국민당군의 '천이'는 본성인들을 친일부역자 취급하며 혹독하게 대했습니다. 이런 차별과 탄압이 어찌나 심했던지 본성인들은 개가 떠나자 돼지가 왔다는 말로 국민당의 폭거를 표현했습니다.
이후 국민당군을 따라 외성인들이 타이완으로 이주를 해왔고, 타이완의 주요 행정기관은 이들 외성인의 차지가 되었습니다. 본성인들은 중앙행정 요직에는 진출하지 못한 채 타이완의 지방에서 지방조직들을 차지하는 정치 양분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그 이후로도 본성인과 외성인의 차별은 점점 심해져 본성인들은 외성인의 월급에 비해 절반밖에 안 되는 돈을 받았고, 이러한 차별은 일본 식민시대의 차별보다 더욱 심해졌습니다. 이 때문에 본성인들은 오히려 일본제국의 식민지배가 나았다는 평가를 하기도 합니다.
그러던 중 사소한 사건이 터지면서 본성인들과 외성인들의 대립에 불똥이 튀게 됩니다.
1947년, 2월 27일, 린장마이라는 과부가 타이베이에서 담배를 팔고 있었습니다. 당시 담배는 정부의 전매품이었기 때문에, 개인이 거래할 수 없는 물건이었습니다. 전매청의 직원과 외성인 경찰이 이 여인을 단속하던 중, 총기의 개머리판으로 린장마이의 머리를 가격하는 등 과격한 폭력을 행사하자, 주변에 있던 본성인들이 이에 항의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경찰은 항의하던 학생 중 한 명에서 총격을 가하고 이 학생은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2월 28일 사망하고 맙니다.
이 학생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분노한 타이완의 시민들은 국민당 경찰서와 군부대를 포위한 채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지만, 경찰은 응답조차 하지 않았고, 군중들은 경찰서를 습격해 경찰을 구타 살해하고, 노동자들이 연대파업에 나서면서 2.28 사건이 시작됩니다.
시위 중인 타이페이 시민들다음날인 3월 1일이 되자 타이완 전역에서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고, 시민들을 중심으로 '2.28 사건 처리 위원회'가 구성되어 언론과 집회의 자유를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합니다. 이에 타이완 행정장관 겸 주둔군 총사령관이었던 천이가 계엄 중지와 체포된 시민들을 석방할 것 등을 약속하면서 사태는 진정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타이완 시민들은 정치 개혁을 요구하면서 근본적인 차별정책의 폐지를 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시민들의 요구가 커지자, 천이는 중국 본토의 국민당군에게 지원을 요청하게 됩니다. 본토에서는 국공내전으로 국민당군도 병력을 함부로 차출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타이완 정부가 전복될지도 모른다는 천이의 보고를 받은 장제스는 군대를 파견하기로 결정합니다.
그리고 3월 8일, 타이완에 도착한 국민당군은 대학살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1주일간의 진압작전으로 본성인은 약 2만 명, 외성인이 약 800명 정도 살해되었다고 합니다. 비공식적으로 사망자가 4만 명에 이른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국민당의 학살을 표현한 기록화'2.28 사건 처리위원회' 구성원들은 대부분 체포되어 처형당했고, 5월 16일까지 타이완 전역에서 국민당에 의한 체포, 구금, 처형이 계속되었습니다. 장제스는 5월 16일 계엄령을 해제하면서 공식적인 2.28 사건 종료를 선언합니다.
이런 국민당에 의한 민간인 학살 사건은, 국민당이 국공내전에서 패배하여 타이완으로 근거지를 옮기면서 언급 자체가 금기시되어 왔습니다. 본성인들의 사회진출이 활발해진 1980년 말이 되어서야 2.28 사건의 피해자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리덩후이 총리가 취임하면서, 해당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 요구가 이루어졌습니다. 이는 리덩후이 총리가 본성인 출신이었던 덕분이었습니다.
많은 논란 끝에 1997년, 타이완 정부는 공식적으로 사건에 대해 사죄하고, 2.28 기념공원을 건립하였습니다. 또 2007년에는 장제스가 직접 민간인 학살을 지시했다는 연구결과가 나오는 등, 아직도 진상규명을 위한 움직임들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어찌 됐던 타이완을 차지하고 있는 중화민국 입장에서는 국부라고 할 수 있는 장제스가 연루된 사건이고, 본성인과 외성 인간의 차별과 대립을 부각시키는 사건이라 이 사건을 축소, 은폐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본성인들의 기억 속에 각인되어 있는 2.28 사건은, 타이완 독립운동의 정신적인 뿌리로 작용하고 있고 타이완의 민주화 운동의 시발점이기도 합니다.
군부에 의한 민간인 학살, 정부의 축소 은폐는 우리나라의 양민학살 사건이나, 5.18 광주 민주화 항쟁, 또 본토인에 의한 섬 지역 주민 학살이라는 점에서는 제주 4.3 사건과 많이 비교되는 사건입니다. 타이완에 가게 된다면 타이완 본성인들의 아픔에 공감하는 의미에서 기념공원을 방문하는 건 어떨까요.
그 시기의 타이완을 다룬 영화 중에는 비정성시가 있습니다. 그 당시 타이완이 어떤 분위기와 시대상을 가지고 있었는지 간접적으로나마 엿볼 수 있습니다.
영화 비정성시 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