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남매를 키우며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는 딱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정리정돈, 둘째는 소음, 셋째는 미디어. 셋 중에 가장 날 힘들게 하는 건 언제나 미디어(영상, 게임)다. 간식은 식탁에서 먹고, 가방을 정리하고, 읽은 책은 제자리에 두어야 한다는 거나, 집안에서 뛰어다니거나 저녁 늦게 큰소리로 총싸움 따위를 하는 것에 제제를 가하면 아이들도 대게는 고개를 끄덕끄덕 거리며 받아들인다. 투덜거리기도 하고, 일부러 거북이처럼 기어 다니면서 정리를 하는 통에 나를 환장하게 만들지만 그렇게라도 상황은 어느 정도 정리가 된다.
문제는 미디어다. 이건 정말이지 통제불가다. 발단은 올해 6학년이 된 첫째에게 휴대폰을 사주면서부터다. 자기 할 일을 알아서 척척하는 첫째는 책을 읽으면서 휴대폰으로 음악을 듣기도 하고, 숙제나 학습이 끝나며 게임을 하기도 하는데, 셋째 넷째가 이걸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집에 있는 공폰으로 조금씩 시켜줬던 게임이 내 발목을 잡았다. 하루에 30분만 하던 게임을 이젠 한 시간을 해도 더 하지 못해 안달이 난다. 게임보다 일본 애니에 빠진 둘째는 틈만 나면 넷플릭스에 들어가 헤어 나오질 못한다. 언제나 시간을 미리 정해두고 시작하지만 약속이 지켜지는 날 보다 ‘조금만 더’라는 말로 징징거리는 날이 늘었다.
그러다 주말 저녁, 간신히 붙잡고 있던 인내심이 바닥을 보였고, 두 개의 공폰을 쓰레기통에 넣어 버렸다. 잘못한 게 없는 첫째는 얼른 잠자리에 드는 것으로, 아직 엄마 눈치를 보는 셋째 넷째는 더 이상 때를 쓰지 않는 것으로 상황이 종료되나 싶었는데 둘째가 느닷없이 발랑 드러누웠다. 무조건 더 보겠다며 같은 말을 계속 반복했다. “싫어, 더 볼 거야, 싫어, 볼 거야”
휴대폰을 던지고 싶었다. 아이에게 소리 지르고 싶었다. 때려주고도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어서 무시했다. 못 들은 척, 그래봤자 소용없다는 듯, 간신히 귀를 틀어막고 방으로 들어와 문을 잠갔다. 말을 보태면 끝도 없이 이어질 싸움은 생각만 해도 숨이 턱 막혀서 온 힘을 다해 참았다. 그렇게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학교에 간 둘째가 보건실에서 전화를 걸어왔다. 설사를 하고 속이 울렁거린다고. 어차피 두시 반이면 데리러 가니 좀 참아보라고 해도 병원을 가야 한다고 울먹거린다.
전쟁을 치르고 나면 아이는 꼭 이렇게 어디가 아프다고 한다. 잘못은 지가하고 마음의 병은 왜 얻는 건지. 점심시간이 지나 학교에 가니 둘째가 고개를 푹 숙인 채 털래털래 걸어 나온다. 꾀병인 줄 알면서도 어쩐지 안쓰러워 보여 일단은 아무 말을 않기로 마음먹었더니 자꾸만 내 눈치를 본다. 할 말이 있는데 참는 사람 같다나? (어휴, 말이나 못하면.)
30분을 달려 병원에 갔더니 괜찮단다. 그럴 줄 알았다. 정말. 그럼에도 연신 끙끙 거리는 아이를 보며 말했다. 두 가지 선택권을 주겠다고. 첫째는, 엄마랑 맛있는 점심을 먹고 피아노 학원 가기. 둘째는, 아프니까 그냥 집에 가기. 아이는 점심 먹고 피아노를 갈 건데 아프니까 다섯 시까지만 치고 오겠다고 한다. 그러더니 뜬금없이 오늘 급식이 비빔 만두 였는데 못 먹어서 아쉽단다. 분명 속이 울렁거린다고 했는데 너는. 배가 아프고 어지럽다고. 우린 손을 잡고 김가오가에 가서 비빔 만두와, 새우튀김 김밥, 김치알밥을 시켜서 사이좋게 먹었다. 속이 울렁거린다던 아이는 셀프코너에 가서 국물도 두 그릇이나 가져다 먹었다. 후루룩 후루룩.
아이를 보내고 들어와 종량제 봉투에 넣었던 휴대폰을 장롱 속에 숨겨 두었다. 괜찮다더니 지사제는 왜 이리 많이 처방해 준건지. 검은 봉지 안에 두둑한 약을 보니 헛웃음만 나온다. 아이는 대체 왜 병이 났을까. 내가 뭘 그리 잘못했다고. 차라리 붙들고 싸우고 지난한 긴 대화를 하고 잤으면 괜찮았을까? 한 것도 없이 고단함이 밀려온다. 한 달에 두 번, 엄마의 국밥집이 쉬는 날이라, 1분도 허투루 쓰고 싶지 않았는데. 아침부터 정수기 교체로 한 시간이 날아가고, 둘째 꾀병에 속아 12시부터 나갔다 들어오니 하루가 다 갔다. 도서관에도 가야 했는데, 곧 있으면 아이들이 올 시간이다. 스트레스 탓인지 또 왼쪽 눈에 경련이 온다.
아이들이 오면 간식을 챙겨주고 얼른 도서관에 다녀와야겠다. 오로지 책만 가득한 곳에서 바글바글 끓어오르는 마음이 조금은 진정될 때까지 서가를 빙글빙글 돌아야지. 그래도 요즘엔 빌려온 책을 거의 다 읽고 반납하고 있으니 그것 만큼은 위로가 된다. 우울과 불안을 그대로 삼키는 것이 아니라 잘 견뎌내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니까. 무언가를 꾸준히 읽는다는 것. 그 별거 아닌 것 같은 일이 오늘도 나를 살게 한다. 아직은 ‘선언’이나 ‘바람’에 그치는 내 안에 욕망들을 살 찌우는 일, 그것 만큼은 게을리하고 싶지 않다. 엄마로 사는 건 너무 외롭고 고단한 일이라 그렇게라도 날 채워두지 않으면 언제 또 고꾸라 질지 모를 일이다.
부디 오늘 저녁은 평온하길. 숨겨둔 휴대폰을 꺼대 다시 휴지통에 넣는 퍼포먼스 따윈 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날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