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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운 Mar 17. 2023

So cool!

국밥과 다이어트

체격이 좋은 아주머니 세분이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국밥 세 그릇을 주문했다. 요 앞에서 지금 막 에어로빅을 하고 나오는 길인데 배가 너무 고프다면서 고기가 많이 들어간 특 사이즈를 달라고 했다. 그리곤 밥 두 개 추가. “사장님, 너무 맛있게 잘 먹었어요. 우리 진짜 배 고팠거든. 밥이 이렇게 맛있어서 다이어트는 물 건너갔다 갔어. 잘 먹고 갑니다” 명랑한 인사를 남기고 나간 손님의 상을 치우러 갔을 땐 나도 모르게 짧은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특 사이즈의 뚝배긴 지름도 크고 깊어서 꽤 많은 국물이 들어가는데, 고기는 그렇다 쳐도 국물까지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깨끗하게 다 드신 거다. 다섯 개의 밥공기와 김치, 사이드로 나오는 부침개와 식혜까지.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여자아이 세 명이 자리에 앉자마자 국밥 세 그릇을 주문하고 나눈 이야기는 ‘다이어트’였다. 헬스를 끊고 다이어트를 시작했다는 친구의 말에 마주 보고 있던 아이가 헬스는 근육을 만드는 운동이라 살이 빠지지 않고 오히려 몸무게가 늘어난다고 했다. 내가 해봐서 안다고. 그 말을 들은 아이는 ‘진짜야?’라고 묻더니 울상이 된 얼굴로 자기는 정말 살을 빼야 하는데 그럼 어떡하냐고 또르르 눈물까지 흘렸다. 그때, 남아 있던 한 친구가 말했다. ! 괜찮아, 울지 마. 밥으로 풀어 밥으로. 사장님, 여기 밥 한 공기 추가요”라고. 추가한 밥은 다이어트를 한다고 했던 친구 혼자 먹었는데, 아이들은 밥 한 공기를 더한 금액을 정확히 1/3로 나눠 계산을 하고 나갔다.     


에어로빅과 국밥, 국밥과 다이어트라니. 이 맥락 없는 풍경에서 내가 본 건 ‘쿨함’이다. 거슬리는 것 없이 시원시원한 태도. 고민은 고민이고, 밥은 밥이고. 국밥은 국밥이고, 다이어트는 다이어트라는. 그럼에도 다이어트 때문에 눈물을 보이는 친구에게 밥으로 풀라던 친구의 위로는 최근에 보고 들었던 어떤 말 보다도 따뜻했다. 그 밥은 얼마나 맛있었을까? 만일 내가 다이어트를 하는 친구였다면 그 장면을 평생 간직할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데리러 가는 길, 신호에 걸려 잠시 멈췄을 때 횡단보도 앞에서 스트레칭을 하는 아저씨를 보았다. 어깨너비로 적당히 벌어진 다리, 허리에 얹힌 손, 그위로 사정없이 돌아가던 머리. 오른쪽으로 세 번 왼쪽으로 세 번. 어찌나 세게 돌리던지 저러다 머리가 날아갈 것만 같았다. 그리곤 이어지는 다리 펴기. 엉덩이가 바닥에 을만큼 납작하게 앉아 양쪽으로 한 번씩 쭉쭉쭉. 길 위에서 저렇게 큰 동작으로 몸을 풀 수 있다는 게 놀라워 넋을 놓고 바라보다 클랙슨 소리를 듣고서야 신호가 바뀐 걸 알았다. 이런 것도 쿨함이라고 할 수 있을진 모르겠으나, 사람들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한 내겐 정말이지 놀랍도록 신선한 장면이었다.      


무겁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무얼 하든 why not? 이 되는 사람. 그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사람. 생각이나 고민을 너무 오래 끓이지 않는 사람. 그래서  어떤 상황이든 ‘괜찮아’가 되는 사람. 다이어트를 하면서도 밥 두 공기쯤은 웃으며 해치울 수 있고, 대로변 사거리에 서서 찌뿌둥한 몸을 마음껏 풀 수 있는 사람도 그 축에 속할 거다. 잡다한 걱정과 불안을 가득 담고 있는 것도 모자라, 툭하면 뱉은 말과 받은 말을 곱씹거나 자기 검열 센서가 꺼질 날이 없어  만날 쓸데없이 속을 끓이면서 사는 나 같은 사람은 아무리 노력해도 가질 수 없는 태도.      


만일 다이어트 때문에 눈물 흘리는 친구를 마주 한다면 난 어떤 말을 했을까? ‘밥으로 풀어 밥으로’ 같은 말은 백날을 고민해도 하지 못했을 거다. 위로의 말을 고민하다 아무 말 못 했을지도.


집으로 돌아가는 길, 허이!! 으아! 헛! 합! 건너편 창문에서 새어 나오는 에어로빅의 기합 소리를 들으면 자연스레 그날의 아주머니들이 생각난다. 오늘은 어떤 음식으로 즐겁게 허기를 달래셨을지. 그나저나 사거리에서 스트레칭을 하던 아저씨의 몸은 좀 가벼워지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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