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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운 Jul 08. 2023

피어싱을 하다가.

어쩌다 마주친 행복

무어라도 해야 하는 날이 있다. 쳇바퀴 굴러가듯 비등비등한 지겨운 삶에 환기를 불어넣어 줄 소소한 일탈 같은 것. 하지만 네 아이를 키우며 불꽃 튀는 돌봄 전성시대를 통과 중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언제나, 매우 한정적이다. 가장 하고 싶은 일이야 일주일 정도 조용한 곳에 혼자 처박혀 있는 거지만, 그건 그저 바람일 뿐이라 상상도 하지 않는다. 어떤 일은 상상만으로 기분이 좋아지기도 하지만, 이건 간절함과 불가능함이 동시에 작용하는 일이라 되려 괴로워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은 마음먹고 피어싱 가게로 갔다. 몇 해전, 귓바퀴에 구멍하나를 뚫고 해방감에 얼마간 즐거웠던 기억이 있어서다. 그땐, 귓볼이 아닌 곳에 구멍을 뚫는다는 것이 매우 특별한 일처럼 느껴졌다. 안 해본 일이라 그랬을 거다. 반짝이고 아기자기한 작은 액세서리들, 귀를 뚫을 때 끌어안을 수 있는 작은 곰인형, 기다란 바늘과 소독약, 바셀린 따위가 있는 낯선 공간에 들어선 것만으로 설레기도 했다.


여하튼, 오늘 난 기분전환이 될 만한 일로 피어싱을 택했고, 혼자는 무서워서  친구와 함께 동행했다. 학원에서 일하는 친구의 출근시간이 촉박했고, 바늘로 귀를 찔릴 생각에  초초하게 곰인형을 끌어안고  앉아 있는데, 친구가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 천천히 해"라고.  


친구의 부드러운 말과 표정은, 예전에 타투를 하러 갔을 때 잔뜩 긴장한 채 앉아있던 내 옆에 서서 머리칼을 정리해 주던 또 다른 친구의 손을 떠올리게 했다. 덕분에 한결 마음이 차분해졌고, 잠깐동안 눈을 질끈 감았다 뜨니 귓볼에 두 개의 구멍이 뚫려있었다. 순전히 나를 위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했다는 것이 좋았고, 함께 갈 수 있는 친구가 있어서, 오래전 추억을 떠올릴 수 있어서 좋았다.



일주일 전,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와이퍼에도 쏟아지는 비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던 날, 오전에 있던 글쓰기 모임을 마치고 친구와 함께 동네 산책을 했었다. 화창한 날에도 하지 않는 일을, 굳이 비가 쏟아지는 날에, 바짓단을 걷고 했다. 우산을 때리는 둔탁한 빗소리를 듣고, 골목골목 경사면을 따라 돌아 치는 물줄기를 보면서 걸었다. 걷어올린 바짓단은 몇 걸음 못 가 다 젖었고, 멀쩡해 보이는 우산 윗꼭지 어딘가엔 구멍이 났는지 우산대를 타고 투둑투둑 떨어진 빗물이 정수리에서 이마를 타고 흘러내렸다. 걷는 내내 이마에 축축하게 들러붙는 머리칼을 연신 떼어내면서도 나는, 쉴 새 없이 떠들었던 것 같다.( 지지부진한 삶의 하소연들)


지나다 마주한 물웅덩이에 과감하게 발을 헹구는 유치한 장난도 쳐봤다. 그러면서 슬쩍 웃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친구랑 동네를 빙글빙글 돌다 손을 흔들고 돌아서 차에 탔을 땐, 빗물에 철떡하게 젖은 우리의 발 사진을 찍어둘걸 하는 생각에 아쉬움이 남았다.


그런 순간이 있다. 잠깐이고 찰나지만, 오래도록 기억될 것 같은 순간. 그날의 산책이 그랬고, 오늘의 피어싱이 그랬고, 예전의 타투가 그랬다.  쉼 없이 떠들면서 내려다보았던 친구와 나의 발, 함께 걷다 젖은 우리의 크록스, '괜찮아'라고 말해준 친구의 목소리, 머리칼을 넘겨주던 친구의 손처럼.



고맙고 따뜻하고 좋았던 순간들이 그냥 얻어진 시간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자연스레 서로에게 기울어진 마음이 우리를 '친구'라는 이름으로 묶어 주었지만, 알게 모르게 우린 서로를 위해 애쓰고 있을 거다. 상처 주거나 상처받지 않기 위해 마음을 쓰고, 고민을 하고, 한 발 다가섰다가도 한 발 물러서고,  다시 다가가면서.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이런 게 아닐까? 통한다는 말로 뭉뚱그릴 수 있는 비슷하거나 닮은 점 보다도, 다른 하나가 서로를 향한 화살이 되지 않게  애쓰는 일. 혹은 때때로  화살에 찔려도,  쉽게 돌아서는 대신 외롭고 쓸쓸한 밤을 조금은 견뎌보는 것. 그리고 가끔은 긴 말 보다 시간에 기대

기다릴 수 있는 마음 같은 것. 이를테면 쉽게 돌아서지 않기 위해 하는 모든 애씀들. 보듬고 살피며 끝까지  간직하려는 정성스러운 마음.


완전무결한, 온전히 아름답기만 한 관계는 존재하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인간이 나만큼 타인을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을 모르는 나이는 오래전에 지났으니까. 그럼에도 '친구' 덕분에 마음이 따뜻해지는 날이 있다는 건, 그래서 더  특별한 일이  아닐까 싶다. 그들이 애써 내어 준 것들. 작은 끄덕임이나 따뜻한 말, 함께 나눈 시간, 다정한 손의 토닥임 같은 것들은 결코 혼자서는 채울 수 없는 것들 이니까.


작은 일탈로 약간의 해방감을 맛보고 싶었는데, 다정한 친구의 얼굴 때문에 마음이 기분 좋게 느슨해졌다. 대체로 우울에 걸려 있는 삶이지만, 그럼에도 가끔은 정성을 다해 살아내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건 이런 순간이 있기 때문일까?


누군가 그랬다. 내가 가진 불행을 설명할 수 있는 언어를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행복한 순간을 설명할 수 있는 언어를 갖는 것도  중요한 일이라고. 그래서 써본다. 오래도록 기억될 찰나의 순간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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