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서를 모두 버렸다.

육아서 대신 소설책 읽는 엄마.

by 고운

첫 아이를 낳았을 때, 가슴에 올려진 아기를 보고 마음속으로 최고의 엄마가 되어주겠단 다짐을 했었다. 둘째를 낳으면서도 비슷한 다짐을 했었던 것 같다. 셋째, 넷째를 낳을 땐 두 아이를 키우느라 힘들었던 탓인지, 그저 무탈하게 출산을 끝낸 것에 안도했다. 그 뒤론 네 아이를 키우느라 최고의 엄마는커녕, 엄마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조차 하지 않았다. 결혼을 했으니 아이를 낳고, 아이를 낳았으니 엄마가 되고, 엄마가 되었으니 아이를 키우면 되는 줄 알았다. 다행인 건, 내가 생각보다 능숙하게 육아를 해냈고, 네 아이 모두 발달과정에 맞춰 건강히 잘 자라 주었다. 그래서인지 육아를 하면서 마음을 졸이거나 오래도록 고민을 해본 적이 없었다. 돌아보면 참 평온했던 시절이었다. 책을 읽기 전 까지는.


넷째가 백일쯤 되었을 때 갑자기 들이닥친 우울과 불안 때문에 책을 읽기 시작했다. 하필이면 그때 처음 읽은 책이 ‘자존감’에 관련한 책이었는데,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책은 시간을 거슬러 불우했던 나의 유년시절을 돌아보게 했고, 꽁꽁 숨겨두었던 내 안의 어두운 그림자를 내 앞에 가져다 놓았다. 불안했다. 아이들도 나처럼, 어느 날 갑자기 사랑받지 못했던 유년시절을 떠올리며 고통 속에 내동댕이 쳐질까 두렵고 무서웠다. 그때부터 육아서란 육아서는 모조리 찾아 읽었던 것 같다. 아이를 잘 키워야 한다는 강박이 내 안에서 무섭게 자라났다. 그건 좋은 부모, 아이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 언제든 아이가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에까지 무섭게 가지를 뻗어 갔다. 아이들의 행복이 오로지 내 손안에 달린 것 같았다.


닥치는 대로 육아서를 읽으며 저마다 제시하는 것들을 노트에 옮겨 적었다. 노트에 적어놓은 것들과 현실에서의 내 모습을 비교하고 검열했다. 의식적으로 사랑해, 고마워 같은 말들을 끊임없이 했고, 아이들에게 괜한 짜증이라도 낸 날엔 자책과 후회를 하느라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런 날이면 어김없이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지켜야 할 결심의 목록들이 늘어났다. 아이의 의견을 물어볼 것, 명령조로 말하지 말 것, 같은 말을 반복하지 말 것, 참고 기다려 줄 것, 엄마가 아닌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할 것, 등등등.

좋은 부모라는 강박이 목표가 되어버린 육아는 어느새 투쟁이 되어 버렸다.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면 안 된다는 생각에 매 순간이 긴장의 연속이었다. 나는 매일 내가 잘못한 것들, 부모로서, 아이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하지 말았어야 될 행동에 대해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럴수록 내가 한심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고작 그런 일로 아이한테 짜증을 내다니, 아이를 공감하기는커녕 내 입장만 내세우다니, 좋은 부모 되기는 틀려 먹은 것 같아 절망의 늪에 머리를 처박고 울었다. 지키지 못할 결심과 계획을 수두룩하게 만들어 놓고 억지로 그 안에 나를 욱여넣은 결과였다. 좋은 부모가 되고 싶어 육아서를 읽었는데, 되려 전에 없던 불안과 우울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엄마가 뭔지도 모르면서 엄마가 되었지만 이렇게 까지 힘든 적은 없었다. 산후조리 2주를 빼면 독박 육아가 일상이 되었어도 뭐든 척척 잘 해내서 스스로를 육아의 달인이라 부르기도 했던 나였으니까.


내 상처의 옹이구멍으로 아이들을 바라보며 오랜 시간 홀로 고군분투를 하고 나서야 알았다. 부모에게 상처받았지만 그것만이 나의 전부는 아니 였던 것처럼, 아이들에겐 내가 모르는 또 다른 세상이 있을 수 있다는 걸. 다 너를 위한 거야라고 했던 부모님의 최선이 나의 행복과는 무관했던 것처럼, 내가 아무리 애를 써도 아이는 다른 이유로 불행할 수 있고, 반대로 내가 크게 애쓰지 않아도 아이는 행복할 수 있다는 걸 말이다. 나만 잘하면, 내가 좋은 엄마이기만 하면 아이는 반드시 행복할 거란 생각은 얼마나 큰 착각이었나. 아이의 행복을 책임지려 했던 마음도 어쩌면 행복보다 통제하고 싶은 마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부모를 원망하듯, 아이가 나를 원망하게 될까 두려워 아이의 마음에 부모에 대한 사랑, 존경, 감사 따위 같은 마음을 심어주고 싶었는지도.


지금 내 책장엔 육아서가 꼽혀 있지 않다. 그렇게 핫 하다는 금쪽이 도 보지 않고, 더는 오은영 박사님의 책도 읽지 않는다. 좋은 부모가 되었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다. 내 안엔 여전히 치유되지 않은 유년시절의 상처가 있고, 때때론 그 상처에 걸려 넘어지는 날도 있다. 그럼에도 이것 만큼은 알고 있다. 상처의 치유와 상관없이 나는, 아이들의 슈퍼히어로가 되어 줄 수 없다는 것. 내가 아무리 애를 써도 막을 없는 절망과 슬픔, 불행의 순간들이 아이들을 스쳐 갈 것이고, 아이들은 나름의 방법으로 그 시간을 통과할 것이다. 내가 붉은 망토를 휘날리며 아이들 비호하지 않아도 스스로의 힘으로 말이다.

그래서 오늘도 난, 육아서 대신 나를 위한, 내게 즐거움을 주는 책을 읽는다. 아이들의 마음이 다칠까 노심초사 나의 말이나 행동을 검열하는 일도 더는 하지 않는다(그렇다고 막 대하는 건 아니다). 책임지려는 마음을 내려 논 뒤로는 의식적으로 아이들의 행복과 불행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육아에 목표 같은 것도 없다. 대신 도서관으로 가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책을 한 아름 빌려온다. 그렇게 나는 나만의 세상을, 아이들은 아이들만의 세상을 만들어 가는 중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전부가 되지 않도록, 각자의 세상을 넓혀가다 보면 최소한 불행보단 행복에 가닿는 날이 더 많지 않을까 생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