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 피우는 엄마가 어때서?

엄마는 담배피면 안 되나요?

by 고운


2017년 여름, 아이들을 재워 놓고 거실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앉아 남편과 삼겹살을 구워 먹었다. 과수원 안에 집을 짓고 살던 때라 커다란 창을 열어두면 컴컴한 하늘에 무수히 박혀 있는 별들을 볼 수 있었다. 복분자를 사이좋게 나눠 마시다 마지막 삼겹살을 입에 넣었을 때 어쩐지 담배가 피우고 싶어졌다.

결혼 전 흡연자였던 나는 결혼과 동시에 금연을 했었다. 그전엔 그렇게 하고 싶어도 안됐던 일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를 생각을 하니 어렵지 않게 금연에 성공했다. 그렇게 7년, 네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한 번도 담배를 피우고 싶단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날따라 분위기에 취했는지 담배 하나만 피우면 행복지수가 치솟을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혔다. 남편에게 말했더니 벌떡 일어나 동네 슈퍼에서 담배를 사다 주었다. 그날 밤 나는 집 뒤뜰로 나가 별을 보며 담배 한 개비를 피우고 잠이 들었다. 며칠 후, 어쩐지 또 하나가 피우고 싶어졌다. 남편 트럭에 두었던 담배 각에서 한 개비를 꺼냈다. 며칠 걸러 한 개비씩 피우던 담배가 다 떨어졌을 때 (담배 한 갑을 한 달 정도 피웠던 거 같다) 다시 남편에게 담배를 사다 달라고 부탁했다. 그 뒤로 쭉......... 나는 다시 흡연자가 되었다. 아이들이 등원과 등교를 하고 난 뒤 집 뒤뜰에 나가 피우던 담배 한 개비, 아이들이 잠들고 난 뒤, 혹은 가끔 남편과 술 한 잔을 하러 밖에 나갔을 때 피우는 담배는 일종의 해방감 같은 걸 느끼게 해 주었다.


다시 흡연자가 된 이후로 가장 괴로운 건, 아무 때고 담배를 피울 수 없다는 사실보다 내게 붙은 ‘엄마’라는 이름이 만들어 내는 묘한 죄책감이었다. 미혼 일 때는 여자라서 눈치를 보며 담배를 피웠는데, 이젠 여자 플러스 엄마에 시골이라는 동네의 특성까지 더해져 전보다 촘촘하게 눈치를 봐가며 담배를 피워야 했다. 담배가 가진 유해성보다 흡연자인 엄마가 갖는 유해한 이미지가 더 크기 때문이다.


언젠가 말도 안 되는 때를 부리며 울고불고 난리를 피던 막내를 달래다 화를 참지 못하고 도망치듯 차를 끌고 밖으로 나간 적이 있다. 주말이었고, 소나기가 퍼붓던 날이었다. 차를 끌고 나왔지만 갈 데가 없어 하릴없이 동네를 돌다, 날씨 탓에 사람이 없는 자전거 공원 뒷골목에 차를 세우고 한참을 울었다. 잠시 비가 잦아들었을 때 창문을 내리고 담배 한 대를 피웠다. 담벼락 밑에 바짝 붙여 놓은 차 안에서 담배를 피우면서도 백미러와 사이드 미러로 몇 번이고 주변을 살폈다. 그러다 우비를 입고 지나가던 아저씨와 눈이 마주쳤다. 얼른 담배를 쥐고 있던 손을 핸들 아래로 내렸지만 꾹 다문 입에선 슬금슬금 연기가 빠져나왔다. 지금도 그 아저씨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눈알을 위아래로 굴리며 확 구겨지던 얼굴. 사이드미러 속 아저씨는 걸어가는 내내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엔 썬팅을 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아파트 현관을 나설 때면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입에 담배를 물고 주차장으로 가는 남자들을 본다.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가면 분리수거장 한편에 서서 아무렇지 않게 담배를 피우는 남자들이 있다. 아파트 후문에서, 놀이터 앞 정자에 앉아서, 신호대기 중인 자동차에 앉아 창문을 활짝 열어두고 담배를 피우는 남자들. 흡연 장소가 아닌 곳에서도 눈치 보지 않고 거리 위로 뿌연 연기를 뱉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식당 주변에는 거하게 취한 몸을 비틀며 사이좋게 담배를 나눠 피는 한 무리의 남자들도 자주 보인다. 나는 그들을 보며 얼굴을 찌 부리는 대신 생각한다. 남자들은 참 편하구나 하고.


종종, 오래전 함께 담배를 피우던 친구들을 생각한다. 그들은 지금 어디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을까. 나처럼 인적이 드문 공용 주차장이나, 해거름이 진 후에야 남편 뒤에 숨어 담배를 피울까. 그도 아니면 어느 소설 속의 여자들처럼 담배가 든 파우치를 들고 동네 찜질방 흡연실에 가서 수다를 떨며 담배를 피울까. 흡연실이라는 정해진 장소에 들어가면서도 고개를 숙이고 눈치를 보고 있을까. 담배는 기호식품이란 말은 여전히 남자들에게만 해당하는 말인가 보다. 마흔을 앞두고도 숨어서 담배를 피워야 하는 걸 보면 말이다.


대체 담배가 뭐라고, 그렇게 까지 하면서 왜 피우냐고 묻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그럼에도 아직은 금연을 생각하지 않는다. 담배만이 나의 작은 일탈이고, 소소한 재미이고, 때론 긴장과 불안을 덜어 주기도 하니까. 세상은 참 이상하다. 담배 피우는 아빠에게 금연을 권할 땐 건강상의 이유를 들면서, 흡연자인 엄마에게는 왜 엄마 됨을 먼저 논하는 걸까. 자식 키우는 여자가, 결혼한 여자가, 엄마가 라는 말로 왜 내게 부끄러움을 강요하나.


그럴 때마다 생각한다. 담배 피우는 엄마? 그게 뭐 어때서 하고.

애들 앞에서 피우는 것도 아니고, 아무데서나 막 피우는 것도 아니고, 길거리에서 담배를 물고 다니는 것도 아닌데 뭘. 엄마가 담배 피우면 안 된다는 법이라도 있나? 흡연자라는 정체성이 갖는 잡다한 편견들은 말 그대로 다 편견이 아닌가? 나는 네 아이의 육아와 여섯 식구의 살림을 혼자서 척척해내고, 주말이면 아이들과 함께 도서관도 다니고, 매일 아이들의 숙제를 봐주고, 맛있는 간식도 잘 만들고, 집은 또 얼마나 깨끗하게 잘 관리를 하나? 내 할 일 다 하면서 스트레스 좀 풀겠다는데 그게 뭐 어때서. 일종의 치열한 자기 합리화를 해 보지만 여전히 숨어서 담배를 피워야 하는 상황은 바뀌지 않는다.



나도 안다. 담배는 건강에 해롭다는 것. 유치원과 학교를 거치면서 귀가 닳도록 배웠고 들었다. 어릴 적 어버이날에는 아버지에게 금연을 바라는 편지도 여러 번 썼었다. 그리고 엄마가 된 지금, 아이들은 1년에 두어 번 흡연의 위험을 알리는 안내장을 들고 온다. 까맣게 변해버린 폐 사진이 박힌 유인물에는 흡연이 유발하는 여러 질병들이 빼곡히 들어가 있다. 나는 아이들이 던져둔 종이를 대충 훑어보고 쓰레기통에 버린다. 다 아는 거니까. 누가 몰라서 피우나.


물론, 다시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 거란 생각은 한다. 하지만 내가 흡연자인 것이 부끄럽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나의 흡연과 엄마 됨은 하등의 상관관계가 없다. 그럼에도 숨어서 담배를 피우는 건 부끄러워서가 아니라 사람들의 입, 나에 대해 잘 모르면서 함부로 떠들어댈 입이 무서워서 이다. 여긴 너무 작고, 작은 마을엔 2022년과는 어울리지 않는 가부장의 질서와 유교문화가 끈적하게 달라붙어있다. 그러니 될 수 있다면 굳이 흡연을 드러내서 좋을 게 없는 동네다.


나는 흡연자다. 네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고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다. 그냥 그런 사람일 뿐이다. 담배를 피우지만 아이들을 사랑하고, 담배를 피우지만 누구보다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 매일 아이스크림이나 조각 케이크를 먹으며 스트레스를 푸는 사람이 있듯이 그저 담배 몇 가치로 위안을 삼는 그런 사람인 거다. 다만, 바라는 것이 있다면 숨어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을 보면 그냥 좀 모른 척해주길 바랄 뿐이다. 굳이 퍽퍽 인상을 써 가면서 까지 일그러진 얼굴로 레이저를 쏠 이유는 없지 않은가. 담배가 뭐라고. 게다가 나는 담배꽁초도 함부로 버리지 않는다고!!

이전 07화가족도 타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