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반납하러 도서관에 갔다 '가족의 소중함'이라는 주제로 전시된 책들을 보았다. 테마도서라니 한 번 읽어볼까 싶어 <금요일에 읽는 가족의 시/김태훈>의 책을 들고 왔다. 가족을 테마로 한 시 50편에 해설을 붙인 에세이 집. 작가는 사랑과 감사, 위로의 마음을 담은 시를 가족에게 들려주라고 한다. 어쩐지 작가의 말부터 맘에 들지가 않는다. 삐둘어진 마음이 또 슬금슬금 올라오나 보다. 가족과 행복, 가족과 감사, 가족과 사랑을 연결 짓는 말은 언제나 나를 불편하게 한다. 가족이라는 말 뒤에 맹목적으로 따라붙는 미사여구들은 볼 때마다 속이 울렁거린다. 조금 읽다 덮어 버렸다. 도무지 감정이입이 되질 않는다. 아쉬운 마음에 휘리릭 넘기고 치우려다 보게 된 한 편의 시.
<가족/진은영>
밖에선 그토록 빛나고 아름다운 것
집에만 가져가면
꽃들이
화분이
다 죽었다.
나는 가족과 함께 비를 맞은 적이 없다. 힘들 때 건널 수 있는 돌다리가 되어줄 소소하고 행복한 대화를 오래도록 나눠본 기억이 없다. 사랑받고 싶었고 사랑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어서 애닳픈 기억만 있다. 내게 가족은 언제나 '사막' 같았다. 목이 말라죽을 것 같지만 마실 물이 없는, 도무지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사막. 딛는 걸음마다 푹푹 빠지는 발을 힘겹게 빼내면서 걷고 또 걸었지만 아직도 빠져나오지 못한 사막이 내겐 가족이다.
가족을 하나의 덩어리로 보는 시선이 싫다.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고, 자식은 부모를 공경하며 서로를 향한 무한한 애정과 신뢰를 바탕으로 자르거나 버릴 수 없는 단단한 끈으로 표현하는 말을 혐오한다. 서로에 대한 분노를 허락하지 않아 결국 원망에 이르게 만드는 폐쇄적이고 편협한 가족주의는 넌덜머리가 난다. '가족이니까'라는 말로 강요하는 용서와 이해를 증오한다. 가족 감성이 만들어 내는 안온한 믿음 같은 건 내 안에 없다.
나의 부모도, 형제도, 배우자도, 아이들도 모두 다 나에겐 남이다. 각자의 몸과 각자의 생각으로 살아가는 타인. 결코 온전히 이해하거나 받아들이지 못할 남. 그러니 쉽게 안다고 말하지 않는다. 나는 모른다. 그 누구에 대해서도 완벽히 알지 못한다. 그리고 끝내 알 수 없을 거라 생각한다. 진실로, 한치의 거짓도 없는 진실로 서로를 마주 할 수는 없다고 믿기 때문에 그렇다. 아마 끝까지 우린 서로를 모를 것이다.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나는, 의식적으로 출산에 대한 기억을 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출산에 관련한 무용담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생각을 하면 할수록 아이들을 내 손안에 두고 싶어 지기 때문이다. 어차피 조금만 크면 다 떠날 아이 들일 텐데. 보고자란 나의 세상과 본인들이 경험한 세상 그 어디쯤에서 자기만의 날개를 퍼덕거리며 살게 될 아이들 이니까. 기대하지 않는 법을 스스로 익히려 노력하는 중이다. 그런 내가 되길, 나에게 기대한다. 그럼 혹여라도 하게 될 실망이나 원망도 나를 향하게 될 테니까. 채워지지 않는 내 안의 서운함이나 화가 상대를 향하지 않길 바란다. 그래야 아파도 내 힘으로 훌훌 털어낼 수 있다고 믿는다. 내 마음속에서 요란하게 떠드는 사랑이야 내가 감당할 몫이지 아이들에게 떠넘기고 싶지 않다. 우리는 잠시 서로의 삶을 공유할 뿐, 완벽한 하나가 될 수는 없다. 아이도 배우자도 모두.
내가 경험한 가족은 마주 보고 앉아 서로의 마음을 채우려 할수록 잃는 게 더 많았다. 늘 그랬다. 듣고 싶은 말이 많아질수록, 받고 싶은 위로가 클수록, 가족을 끌어안으려 노력하면 할수록 전보다 더 외로운 사람이 되곤 했다. 그러니 상대가 나를 채워주길 바라기보다 마음을 비우는 것이 더 나을지 모른다. 가족은 생각보다 가깝지 않다. 가깝다고 생각하는 착각이 더 많은 실망과 분노 서운함과 상처를 남긴다. 결국엔 힘주어 상대를 밀어내게 만든다. 버리는 것, 마음에서 밀어내는 것은 버려지는 것보다 더 힘들고 아프다. 타인으로부터 날 채우고 싶은 작은 마음, 날 선 이기심이 그득한 나를 보고 또 보다 보면 마음에서 구정물이 흐른다.
나는, 아이들에게 가족의 소중함 보다 너 자신을 지키라고 말해주고 싶다. 스스로를 지킬 수 있어야 가족도 지킬 수 있는 거라고. 알록달록 아름답고 짠한 그림과 언어로 가족의 의미를 상기시켜 주지 않아도, 아이들이 제 스스로 지켜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을 구분할 수 있길 바랄 뿐이다. 분노가 깊어져 원망이 되기 전에 할 수 있는 말들이 자라길 바랄 뿐이다. 나는 그저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엄마이길 바란다. 상처받을 준비를 게을리하지 않는 엄마가 되고 싶다.
구태여 시간을 들여 아름다운 말과 그림으로 '가족'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고 싶지 않다. 그림책 속에 존재하는 따뜻하기만 한 부모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마찬가지로 사랑스럽기만 자식도 존재하지 않을 거다. 말은 힘이 없다. 아무리 아름다운 말이라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고, 경험할 수 없는 말은, 아무런 힘이 없다. 그러니 함께 시를 읽는다는 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이미 아이들도 다 알고 있을 텐데. 부모도 때론 형편없는 소리를 늘어놓을 때도 있고, 함께 앉아 코딱지를 파며 배꼽을 잡던 형제들도 내 맘 같지 않을 때가 있다는 걸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라고, 가족이니 믿으라고, 이해하고, 용서하라는 말을 어떻게 쉽게 할 수 있을까.
가족도 타인이다. 서로를 모르는, 끝내 알 수 없는 타인. 그저 조금 더 많은 것을 공유하며 살아가는 타인들. 그러니 너무 애쓰고 싶지 않다. 사랑하거나 사랑받으려고, 이해하거나 이해받으려고, 미워하거나 용서하려고 고민하며 앓고 싶지 않다. 뒤엉키고 부대껴 생채기를 내더라도 툭툭 털고 일어설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너무 많은 기대와 바람은 내려놓고 서로를 온전히 몰라도 괜찮다는 마음에 기대어 내 몫의 상처는 스스로 감당하며 살아가고 싶다.
언젠가 책에서 "누구에게나 지나가야 할 제 몫의 사막이 있다"는 말을 읽은 적이 있다. 살면서 반드시 지나야 할 사막이라면 그것이 가족이 아닐까 싶다. 아름다운 밤하늘과, 거친 모래바람이 동시에 존재하는 곳. 쉽게 길을 잃을 수도 있고, 생각지 못한 곳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할 수도 있는 곳. 발 밑이 뜨겁고, 갈증이 이는건 모두 똑같아서 누구도 힘들지 않은 사람이 없는 곳. 오늘도 난 그런 사막의 한가운데 서있다. 아름다운 밤하늘을 기대하기보단 터벅터벅 힘겨운 발을 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