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이제 정말 술을 끊어야겠어'

지키지 못할 뻔한 다짐.

by 고운


‘아, 이제 정말 술을 끊어야겠어’


숙취와 함께 눈을 뜨는 날이면 몸을 일으킴과 동시에 꺼끌꺼끌한 입에서 제일 먼저 튀어나오는 말. 나는 자물쇠를 채워둔 셔터처럼 무겁게 내려앉은 눈 커플을 힘겹게 올리고 앉아 전날 마신 술병의 개수를 헤아리다 속으로 ‘미쳤군’ 한다. 그리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데 이 또한 금주를 선언할 때면 순서를 기다렸다는 듯 이어지는 행동 패턴이다. 방 안엔 몸에서 뿜어져 나온 미적지근한 알코올 냄새와 채 소화하지 못한 음식 냄새가 뒤섞여 쿰쿰한 냄새가 그득하다. 해물파전의 기름 냄새, 임연수 구이의 짭조름한 군내, 옆 테이블에 먹던 매콤한 닭발 냄새, 시켜놓고 그대로 두고 나온 퉁퉁 불은 라면의 조미료 냄새까지. 대체 얼마나 마시고 얼마나 먹은 걸까. 마음은 얼른 일어나 찬 물로 개운하게 세수를 하고 텁텁한 입 안 구석구석 힘차게 양치를 하고 싶은데, 방문을 열고 나갈 힘이 없어 겨우 일으켰던 몸은 다시 털썩 침대로 나가떨어진다. 그렇게 5분만, 10분만, 30분만 하다 눈을 뜨면 해가 중천에 떠 있다. ‘이런, 하루가 다 갔잖아.’


술이 참 달게 느껴지는 날이 있다. 짠하고 마셨는데 눈이 동그래지는 날이 그렇다. 평소 같으면 크~하고 넘기던 술이 오! 하고 들어가는 날. 그런 날은 첫 잔을 내려놓고 싱글싱글 웃으며 생각한다.


'좋아! 맛있게, 기분 좋게, 적당히 먹는 거야' 하고.


그럼에도 하나 둘 안주가 나오고, 그 덕에 술맛이 배가 되면 ‘적당히’라는 다짐은 간데없이 사라지고 ‘인생 뭐 있어? 먹고 죽자’라는 본능만 남은 자아가 활개를 친다. 그럼 게임오버다. 목청이 한껏 높아지고 웃음소리가 커지고 말이 많아지기 시작하면 주변의 시야가 흐려진다. 어둠에 자리를 내준 바깥 풍경도, 이미 자정을 넘긴 시곗바늘도, 하나 둘 자리를 뜨는 사람들도 보이지 않는다. 맛있는 안주와 달콤한 술, 나와 눈을 마주하고 있는 사람과 우리만의 이야기에 취해 술 집 안 작은 테이블에 위에 펼쳐진 세상이 내게 전부가 되어 버린다. 그 안에서 나는 어느 때보다 큰 웃음을 짓고, 많은 이야기를 한다. 최근에 날 울린 어느 드라마의 대사부터,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던 말, 더러는 정리되지 않은 무수한 상념들 까지도 모두 펼쳐 보인다. 그래도 괜찮다는 걸 알아서 그럴 것이다. 그 순간 내가 밟고 기대 선 땅이 단단하고 마른땅이라는 걸 잘 알아서 들쑥날쑥한 호흡과 거친 말, 우스꽝 스러운 표정과 몸짓까지도 숨김없이 드러내고 마는 것이다.


며칠 전에도 그랬다. 오랜만에 친구 J와 술을 마셨는데 짠하고 첫 잔을 내려놓기 무섭게 둘 다 눈이 동그래졌다. 술집을 나왔을 땐 우린 캄캄한 아스팔트 위를 걸으며 신나게 웃고 있었다. 왜 웃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서로의 웃음소리에 놀라 더 크게 웃다 한참이나 휘청거렸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던 순간에도 부스스한 미소를 보이며 여러 번 손을 흔들었던 것 같다. 길 위에 흘린 웃음을 주워 모으면 며칠은 헤헤 거리며 지낼 수 있을 만큼 웃었던 것 같은데, 난 무엇이 아쉬워 그토록 오래 손을 흔들었을까.




무뚝뚝하고 부끄럼 많은 성격의 난, 오래 알고 지낸 사람과 만나도 어딘지 모르게 서툴고 어색한 사람이 되는 때가 있다. 마음은 그게 아닌데 밖으로 보이는 행동은 누가 봐도 ‘저 지금 낯가려요’라는 말을 대신 전해준다. 문제는 그런 서툼이 때론 친밀한 관계에 있는 사람조차 어리둥절하게 만들고 만다는 거다. 과장된 리액션, 빠르게 받아치는 말로 대화의 분위기를 살리고 이야기를 이어가야 하는데 두 가지 모두 내겐 너무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세 또한 꾹 다문 입처럼 크게 움직임이 없으니 그런 뻣뻣함과 투박함을 참지 못하는 사람에게 나는, 다가가기 힘든 사람 혹은 차가운 사람이 돼 버린다. 한 발 느려서 그렇지 예열 중인 다정함과 친밀함이 내게도 있는데, 그걸 꺼내 보여주기가 참 힘들다. 그래서 난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함께 술을 마시고 싶어 한다. 알코올이 혈관을 타고 흐르면 어느 때보다 빨리 예열을 마친 마음을 꺼내 보여 줄 수 있어서, 조금만 더 용기를 내면 고마워, 좋아해, 사랑해란 말도 할 수 있을 것만 같아서 말이다.


사람 앞에 서는 일, 누군가를 만나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며 관계를 형성하는 평범한 일상이 내겐 많은 용기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애쓴 만큼 마음이 채워지기라도 하면 좋을 텐데, 시작부터 어려운 만남은 마음에 찬 바람만 일으키고 끝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럼 난 재빨리 마음의 밸브를 잠그고 데구루루 내 안으로 굴러 들어간다. 누군가 나를 툭 하고 밀어내기 전에, 내가 먼저 툭 하고 나를 떨어트리는 거다. 남겨지는 것 보다야 외로움을 택하는 것이 덜 아픈 법이니까.


물론, 내게도 친구는 있다. 매일 저녁 수고했다는 말로 위로를 건네주는 친구, ‘OO 씨 생각은 어때요?’라고 내 생각을 궁금해하는 친구, 요즘엔 무슨 책을 읽는지, 힘든 일은 없는지 소소한 일상을 물어오며 잊지 않고 곁을 내어주는 친구. 나는 주로 이 친구들과 술을 마신다. 서로의 생일, 무심결에 베이는 손처럼 무언가 마음을 할퀴고 지나간 날, 바람이 너무 좋아 시원한 맥주가 그리운 밤, 혹은 이유 없이 밤거리를 마구 쏘다니고 싶은 날, 우린 자주 가는 단골 술집으로 향한다. 익숙한 공간, 익숙한 맛, 익숙한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편안함은 시원한 소주 한 잔 보다 더 빨리 나를 취하게 한다. 그때의 난 비치볼처럼 가볍다.


문제는 이거다. 비치볼처럼 가벼워진다고 해서 주량이 늘어나지는 않는다는 것과 그걸 알면서도 잊어버리고 마는 나. 그 결과 나의 머리엔 분기별로 강도 높은 지진이 일어난다. 그래서 1년이면 평균 4회, 특별한 일이 보태지면 더러는 한 달에 한 번 꼴로 아침에 눈을 뜸과 동시에 금주 선언을 한다. 우스운 건 이제껏 했던 수많은 금주선언의 순간에 진심인 적은 별로 없었다는 것. 그럼 대체 왜 금주 선언을 하냐고? 나도 그걸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런데 쓰다 보니 알겠다. 나는 단지 고의적인 두통으로 육체를 괴롭게 한 행동에 대해 몸의 주인으로서 예의상 반성의 제스처를 취하는 거다. 숙취로 괴로운 중에도 마음속엔 아직 사라지지 않은 비치볼이 신나게 굴러다니고 있으니 내가 어떻게 진심으로 금주를 할 수 있겠나.


얼마 전 인스타에서 유희열이 결혼에 대해 했던 말을 읽었다. “잠자는 아내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렇게 쓸쓸할 수가 없어요. 한 달이면 25일이 그래요. 그냥 너무 쓸쓸해요. 결혼이 그런 것 같아요. 쓸쓸하지 않은 5일에 기대서 쓸쓸한 25일을 함께 견디며 사는 거예요” 그때는 그냥 넘기듯 읽었던 그 말이 오래도록 잊히질 않았다. 사는 게 그런 것 같다. 대부분의 날들이 쓸쓸하고 외롭지 만 그렇지 않은 찰나의 순간의 기대어 살아가는 것.


내겐 쓸쓸하지 않은 5일 중 하루가 친구들과 함께 어둠이 깔린 아스팔트 위를 춤추듯 걸어갈 수 있는 시간인 것 같다. 그럼에도 부끄럽지 않아 큰 소리로 웃으며 서로의 손을 잡을 수 있는 시간. 나의 볼썽사나운 쭈뼛거림과 뻣뻣함에도 다감하게 내밀었던 손을 거두지 않고 기다려준 사람들 곁에서 가장 솔직한 나로 마음 편히 쉬어 갈 수 있는 하루. 그러니 몇 번이고 금주를 선언하더라도 눈이 동그랗게 떠지는 날에는 신나게 달릴 것만 같다.


지진 이난 머리통을 붙들고 앉아 “살아있어?”라는 친구의 카톡에 “살아있음”이란 짧은 생존 톡을 보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