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전, 보풀이 인 낡은 운동복 바지를 입고 이른 새벽 함께 고시학원을 향했던 오랜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보통은 아이들이 어린이집이나 학교에 간 늦은 아침이나 점심 즈음 통화를 하곤 했는데 밤 열 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잘 지냈느냐는 변함없는 친구의 목소리가 반가워 나도 모르게 목소리톤이 높아졌다. 나의 안부를 확인한 친구가 대뜸 너는 힘들지 않으냐고 물어왔다. 나는 대답 대신 "너 힘들구나, 무슨 일 있는 거야?"라고 물었고 전화기 너머 잠깐의 침묵 뒤에 흐느낌이 들려왔다. 친구는 울고 있었다.
순간 나도 커다란 눈 가득 눈물이 차올랐다. 늦은 밤, 아이를 재우고 밀려드는 공허함, 헤아릴 길 없는 깊은 외로움, 피곤함과 헛헛한 마음이 만들어내는 눅눅한 감정의 콜라보를 누구보다 잘 알아서 그랬을 거다. 딱히 속상하거나 슬프거나 마음 아파야 할 구체적인 사건들이 없음에도 그랬다. 모래사장을 할퀴고 지나가는 거센 파도처럼 끊임없이 밀려와 엄마라는 이름을 걷어내고, 기어이 구멍 난 양말 같은 나를 꺼내보게 만들어 버리고 마는 따갑고 아픈 밤의 시간들을어찌 모를 수가 있겠나.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고 그저 견디고, 버티고,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나를 놓아주는 눅눅한 밤의 시간들. 그걸 너무 잘 알아서 쉽게 위로의 말을 던질 수 없었다. 나는 아이가 깰까 숨죽여 우는 친구의 울음에 "그래, 힘들지. 나도 그랬어. 지금도 그렇고. 그래, 그래. 왜 안 힘들겠어..."라는 말만 버벅거렸다.
아무도 모르게 흘러가는 하루가 늘어 갈수록 혼자 깨지고 부서졌던 캄캄한 밤들, 친구는 지금 그 시간을 지나고 있는 것 같았다. 엄마가 되려고 결혼한 건 아닌데 엄마만 되어버린 삶. 육체와 정신의 피로감 뒤에 어느 날 불쑥 마주하게 되는 구멍 난 생. 까마득한 나와, 하루도 미룰 수 없는 무거운 일상의 연속성 사이에 서서 홀로 바둥거려야하는 서글픈 시간들.
모성은 빛나는 것이라고, 위대하고, 아름다운 것이라 말하면서 그 특별한 것을 매일 살아내고 있는 우리는 왜 숨죽여 울어야 하나. 왜 우리의 이야기는 수취인 불명의 편지처럼 누구에게도 온전히 가닿지 못하나. 왜 우리의 구멍 난 생은 이기적이라 퉁쳐지는 도덕적 잣대 뒤에서 눈치를 보며 채워가야 하는 걸까. 숨죽여 울다가도 아이가 깨는 바람에 눈물을 삼켜야 했을 서러운 친구의 밤이 내방까지흘러와 코끝이 자꾸만 매워졌다.
내 모성의 팔 할은 기쁨이나 환희가 아닌 지독한 외로움이 이었다. 빛나는 이름이 가진 순수함, 사랑이라 불리는 것의 권위가 너무 커서, 감히 그 선의에 저항하기 힘들었을 뿐이다. 사랑은 언제나 옳은 것이니까. 옳다고 말하는 것에 반기를 들고 나를 챙기려면 생각보다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요즘엔 '엄마란 마땅히 그래야 한다'는 완곡한 표현을 지양하는 시대지만, 와해된 틀 안에서 경계를 넘기란 얼마나 더 어려운 일인가. 그래서 지금도 나는, 어떤 밤이면 익숙하지만 받아들이기 힘든 슬픔과 우울 속을 헤매는 것일지 모른다.
친구의 동그스름한 몸 어딘가에 주름처럼 남아있을 숨죽인 흐느낌이 아프다. 만일 내가 전화를 받지 못했다면 아무도 모르고 지나갔을 고된 친구의 하루는 늘 그랬듯 아무렇지 않게 흩어져 버렸을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아이들의 소란함과 분주한 일상에 묻혀 없던 일이 되어버렸을까? 버벅거리던 나의 서툰 말이, 곧 만나자는 짧은 메시지 안에 담긴 내 마음이 친구에게 가닿긴 했을까?
아마도 우린 전화조차 할 수 없었던 밤, 후드득 떨어지는 눈물을 닦을 힘도 없어 검은 천장을 바라보며 베갯잇을 적셔야 했던 비슷한 시간을 이미 여러 번 건너왔을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어느 늦은 밤, 짧은 안부인사를 전하곤 귓바퀴에 댄 휴대전화 위로 또르르 눈물길을 그려내야 할지 모른다.
그러니 '괜찮아'라고 말하고 싶었다. 20대 초반, 이미 우리가 함께 견디고 버텼던 날들처럼 결국엔 건너고 지나갈 시간일 거라고. 엄마라서가 아니라 너와 나라서. 우리라서 그럴 수 있을 거라 말해주고 싶었다. 집안에만 고여있다고 생각하는 너의 삶은 250km나 떨어진 내가 사는 곳까지 뻗어있다고. 나에게 너는 ○○엄마가 아니고 누구보다 열심히 매일을 살아내는 훌륭한 사람이고, 내겐 아주 특별하고 고마운 멋진 친구라고.
잠에서 깬 아이의 등을 토닥이기 위해 제 눈물은 삼켜야 했을 친구의 서글픈 밤을 툭 떼어내 덜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급하게 전화를 끊고 아이 곁으로 간 친구에게 짧은 메시지를 보냈다. '오늘도 수고하고 고생했으니 푹 쉬고, 다시 또 살아보자고.' 부디 오늘 밤은, 아니 앞으로 마주할 친구의 많은 밤들이 평온할 수 있기를. 눈물을 훔치는 대신 내일을 기다리며 웃을 수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