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코가 석자
― 번아웃이 와버린 프리랜서 휴머노이드.
지난 글 이후로 꽤 오래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일이 너무 바빴고 그로인해 나는 번아웃이 와버렸다.
"그래도 일이 있는게 낫지 배부른 소리 한다"
그래 그렇게 느껴질 수도 있는게 당연하다.
매출도 그동안 벌었던 한달 수입의 최고를 찍었으니. 그렇지만 프리랜서의 일이 어떻게 한달 벌이로 판단될 수 있을까, 이 상태가 지속적으로 유지가 되느냐가 문제였다.
가장 큰 문제는 리소스 관리의 부재였다.
몰려오는 일들. 그 중 힘들어하며 부탁하는 대행사 대표님을 위해 일을 받았던 것이 가장 많은 리소스를 투입하되 돈은 많이 되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
그 덕분에 기존에 나를 믿고 맡겨주셨던 분들의 일은 챙겨주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했었다.
왜 이렇게 리소스 관리가 안되었을까?
그건 바로 "리소스 관리가 안되는 곳에서 일을 받아" 그 절차를 따라 업무를 해야했기 때문이었는데, 정확히 어떤 것이 문제였는지를 더 상세히 적어보면 아래와 같다.
[리소스 관리가 안되는 업무 특징, 7가지]
1. 한개의 광고주 담당계약건에 여러개의 브랜드가 포함.
→ 그 중 내가 인계 받은 뒤 거의 동시에 추가 브랜드가 3건이나 광고 재개 요청이 와 일이 3배로 증가.
*되도록 단건의 브랜드만 있는 광고주를 받을 것.
2. 커뮤니케이션을 업무 메신저가 아닌 카톡으로 진행.
→ 카톡방 한개가 아니라 2개였고 담당자도 2명이었음 (사생활과 업무가 구분이 안되는 컨디션으로 피로 누적, 히스토리 관리 안됨)
*카톡으로 커뮤니케이션 하는 곳은 절대 받지 않는 편인데 이번에 확실히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됨
3. 프리랜서에게 소재 제작을 맡기는데 절차를 프리랜서 마다 다르게 맞춰줌. (기획을 해서 내가 프리랜서 커뮤니케이션을 했어야 했고, 프리랜서가 여러명에 시간엄수가 안되는 경우도 있어 관리 시간 배로 소요)
*외주를 다수 관리하려면 내부 절차를 만들고 그 기준으로 프리랜서 관리 필요
4. 보고 절차가 복잡함. (드라이브로 일괄 전달 하거나 해야하는데 프리랜서별 커뮤니케이션 방법이 달랐고 소재는 백업이 안되게 계속 덮어쓰는 구조였고, 소재 리포트를 따로 만들어서 보고함. 보고할 때마다 권한 설정해서 공유해야하는 구조였음.)
5. 한달 소재 제작 개수와 수정 횟수에 제한을 두지 않음. 한 주에 최소 각 브랜드별로 영상 2개, 이미지 1개를 기획해야했는데 브랜드가 4개여서 "매 주" 영상 8개, 이미지 16개를 혼자서 기획해야 했음.
*도의적인 부분에 맡기지 않고, 추후 계약 시 소재 기획은 비용을 따로 받는 것으로 계약하던지 월에 00개 이상까지는 무료, 그 이상은 유료로 명명하는 등 조건을 걸어야 할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
6. 소재제작 개수는 많은데 이에 대한 기획 제작 비용을 따로 받지 않고 대행 수수료만 받음.
대행 수수료는 광고비를 많이 쓰지는 않았기 때문에 적었고 사람장사를 하는 대행사에서 사람 투입 리소스 대비 흑자가 날 수 없는 수수료를 받고 있는 것.
7. 기다리지 못하고 수시로 머신러닝 되기 전에 최적화 요구 & 질문하는 광고주.
(그래서 실제로 계속 캠페인을 괴롭혀대니 성과는 점점 안좋아짐.)
업무 한달도 되기전에 이건 아닌데..? 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 광고주를 담당한 모든 마케터가 다 퇴사했다.
그렇지만 나는 3개월 계약이었기 때문에 11월까지 그 일을 해야 했었는데
다행히 대표님도 내가 이야기를 꺼내니 잘 서포트 해주셔서 넘겨야 할 일은 일부 넘기고, 계약은 2개월까지만 하기로 했다. (그래서 8월 중순~10월 중순까지만 서포트 하고 오늘 카톡방 모두 정리 완료 한 상태. 정산만 남았다)
10월 14일에 인계를 하고 난 뒤 드는 생각은 "앞으로 다시는 이렇게 리소스 관리 안되도록 만들지 말아야겠다." 였고 약간은 외주 업무에 넌더리가 나기도 했다.
나에게 종종 대행사 사업을 해보는건 어떠냐는 이야기를 하는 지인들에게 입버릇처럼 "나는 대행사로 사업을 하지는 않을거야" 라고 했었는데 그 마음이 더 확고해지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잊을만 할 때 다시 대행사 시절로 돌아간 듯한 뜨거운 맛을 본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정신 차리고 한 발 한 발.
나는 이제 고작 10개월차 프리랜서 이므로, 다른 사람 신경은 좀 덜쓰는게 좋겠다 생각이 들었다.
또, 이런 생각도 들었다.
프리랜서가 되면 선택권이 많아진다. 그러므로 나는 좀 더 모두 YES 하지 말고 나를 위한 선택을 더 신중하게 해야 한다.
결론 : 내 코가 석자다.
공간적 자유 100%, 시간적 자유 80%를 꿈꾸면서 소중한 사람과 웃기 위해 달리는 7년 차 마케터 이야기.
이제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