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강현 산문집
누군가의 글의 읽으면서 기억의 문이 열린다는 것
생소한 경험이다.
간혹 드라마나 영화를 보고 있으면 한컷이 기억 속으로 데려간 적은 있으나
그 순간은 찰나였으며, 좋은 기억 아련한 추억이었다.
오늘 자연스럽게 열린 나의 기억의 문은 억지로 굳게 닫아버린 기억이었다.
저 멀리 닫아둔 문이 열리는 순간
나의 귀에는 쿵소리가 들렸다.
펜을 떨어뜨린 소리이거나
마음이 내려앉은 소리일 것이다.
환청이었다.
'자유의 죽음'이란 표현은 고종석 작가의 것이다. 스스로를 살해한다는 뜻의 '자살(自殺)'보다는 죽음을 제 의지로 선택했다는 의미에 무게를 둔 표현이다. 나는 이것이 좀 더 객관적인 표현이라고 생각하고. '자살'보다는 '자유 죽음'이란 표현을 자주 빌려 쓴다. 하루에 30명쯤 자유 죽음을 선택하는 나라에서, 이제는 자유 죽음 자체는 뉴스 목록에 오르지도 못한다. 그러나 2011년 4월 무렵, 카이스트에서...
<우리는 눈물로 자란다> 中 128-129쪽
2011년 4월
나 역시 대학원생으로 모교인 대학교에서 조교로 기숙사 사감보로 일을 하면서 나의 인생의 목표를 향해 앞만 보고 달렸다. 봄 꽃들의 잔치를 구경할 여유도 없는 시기였다.
그 와중에 타학교 기숙사에서 들려오는 자즌 '자유 죽음'의 소식
남일 같지 않았으나, 기숙사가 오픈한 지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한 번도 들리지 않았던 '자유 죽음'
2011年 死月
후배가
사생이
'자유 죽음'을 선택했다.
후배의 선택을 원망하면서 가족을 위로하면서
그의 주변을 정리했다.
死월이 없어지면 좋겠다.
달력에서 지워버리고 싶다.
벚꽃이 아름답기보다는 애절하게 느껴지는 것은 死월이기 때문이다.
봄바람 부는
햇살이 따뜻한
사월
자유 죽음을 선택했다.
사월이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
나는 다시 기억의 문을 닫아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