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데기 다시 읽기

이슬람 문화권에서 2년 1개월 그 후

by 순정

2009년

우물 안 개구리 시절이다

대학원 박사과정을 시작하면서 그곳이 나의 전부였다

대학원 강의를 듣고

학부 조교를 하고

기숙사 사감(보)으로 활동하면서

숙소도 식사도 인간관계도 모두가 그곳에서 이루어지던 시절이다


당시에는 전부였던 것들이

지금은 한심하게 다가온다


무엇을 위해 그리 아등바등거렸는지


몇 번의 벽과 배신(?)을 마주하면서

한 톨의 미련도 없이 떠났다


2013년

짧은 중국어학연수를 마친 후

겨울 이슬람 문화권인 우즈베키스탄으로 떠났다


한국어 교육이라는 나름의 큰 명목을 갖고 떠났다

코이카 국내 교육에서 나에게 와 닿았던 것은

봉사는 나눔과 섬김이라는 것이었다

나눔은 이해가 됐으나 섬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으나

섬김=존중이라고 해석하였다


2년간 섬기고 나누리라 그것만 실천하고 오리라 생각했다


나의 섬김 존중은 그들의 문화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직접 실천하고 그들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한국어, 한국문화를 가르치기보다는 서로 소통하고 교환하고 싶었다


코란을 읽거나 기도를 하지는 않았으나

돼지고기를 피하고 할랄 음식을 먹었다

다행히 채식을 하던 시기라 어렵지 않았다


우즈베키스탄 가족과 함께 생활도 하면서 그들의 음식 만드는 방법을 배우고

함께 사원에 가서 기도도 드리고 무슬림에 대해 조금은 알게 되었다


여름 라마단 기간에는 철저하게 라마단을 지켰다

기도를 드리지는 않았으나, 새벽 동이 트기 전에 식사를 한 후

해가 저물 시간에 맞춰 식사를 하였다


낮동안에는 물도 마시지 않았다.

한 달 동안 방학기간이라 그리 어렵지 않게 실천할 수 있었다


말로만 들었을 때는 40~50도가 넘는 뜨거운 여름

한낮에 물도 안 마시고 어떻게 버틸 수 있을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나에게 복병은 커피였다

새벽에 커피 한잔 이후 저녁까지 커피를 마실 수 없다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3일 정도 힘들었다

라마단 기간 의료봉사를 1주일 정도 하게 되었는데

아 그때는 정말 커피 한 모금이 어찌나 그리운지

금단(?) 현상이 살짝 일어나는 듯했다


지금까지 한 것이 아까워 버텼다

눈 한번 찔끔 감으니 그것도 지나가더라..


배고픔을 잘 견디는 나이기에

(음식을 먹는 것도 좋아하지만 그보다는 음식을 쟁여놓는 것이 더 배부른 느낌이다)

원래 새벽형 인간인지라 새벽에 일어나는 것은 나에게는 일상이었다


대학원 시절 기상시간은 새벽 4~5시였다

아예 밤샘을 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어라.. 대학원 시절의 습관이 도움을 주는 건가?)


그들의 문화를 그들의 생각을 섬기면서

전부는 아닐 수 있지만 많은 부분 받아 드릴 수 있었다


틀린 것이 아닌 다른 것임을 인정하면 되는 것이다

내가 절대적으로 맞는 것이 아니기에....


3.JPG


2021년 책꽂이 털이 프로젝트로 다시 읽고 필사하기를 시작하였다

황석영 작가의 바리데기


10년도 더 지난 2009년 그때

그냥 스쳐 지나간 이야기가 지금 콕콕 박힌다


바리 그녀의 삶과 더불어 그녀의 주변 사람들에게도


누가 국경을 만든 것일까?

종교란 무엇이며, 믿음은 어떻게 존재하는 것일까?


차별과 갑질이 여전히 판치는 세상에서

무슨 답을 얻을 수 있을까?


무거운 마음으로 마지막 책장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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