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이라고 쓰고

다시 추억 씹어먹기

by 순정

2004년 대학 졸업

대학시절 매번 중간고사 기간으로 가본 적 없던

부산국제영화제 첫 발을 내디뎠다

8월 상반기 졸업생

취업이 아닌 학업을 선택, 10월에 있을 교육대학원 입시 준비


입시 준비를 핑계로 마냥 백수일 수는 없다

모교에서 행정직(비정규직)을 뽑길래 지원했다

일주일 후 발표 예정

그 틈바구니에서 부산행 기차를 탔다


언제나 그렇듯 여행의 목적은 분명 하나

과정은 허술하다

무작정 떠난 국내 여행은 해외여행보다 더 빈틈 투성이다

그냥 표 끊고 출발

부산역에 도착하면 모든 것이 부산국제영화제로 이어지는 줄 알았다


말이 통하는 한국임에도 불구하고

유독 질문하는 것을 싫어하는 나는

(다행히 눈치는 있었다)

당시 나의 폰은 2G 폰이다

많은 사람들이 가는 곳으로 그냥 따라갔다


도착한 곳은 수영만 요트경기장(개막식 현장)

(당시에는 영화의 전당은 존재하지 않았다)

한 번의 두리번거림도 없이 무사히 도착


멀리서 보이는 형형색색의 불빛과 레이저 쇼

아직도 생생하다(여전히 그날의 흥분과 떨림 심장박동수가 들린다)


옷차림에 신경을 쓰지 않는 축에 속한다

학교에서는 트레이닝복을 자주 입고 다녀 후배들이 날 체육학과 선배로 오해받은 적이 많다

(사실 옷차림뿐이겠냐만은 머리스타일도 당시에는 파격적인 투 블록 헤어컷)

나름 영화제를 간다고 관객이지만 위아래 검은색 복장과 나의 당시 트레이트 마크인 숄에 가까운 스카프

깐 영화제를 보면 영화제 취재 기자들까지도 보타이를 착용해야 한다고 하잖아

영화에 대한 예의랄까


평소 영화관에서 영화를 본다 치면 팝콘에 오징어에 맥주까지

여가를 즐기다는 차원에서는 반대하고 싶지는 않지만


영화에 대한 숭고함(?)이 있는 나는 커피와 허기를 달랠 수 있는 초콜릿이나 사탕 정도

부산영화제를 다니면서 커피와 칼로리바란스로 바뀌긴 했지만 말이다


나름 처음 가는 국제영화제이니 복장을 신경 쓴 탓일까

프리패스 개막식장으로 입장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이지 영화 같은 순간이었다

(문이 열리면서 다른 세계로 진입하는 순간)


3일간(2박 3일간의) 짧은 찰나였으나

그날의 추억으로 9년간 시월이 되면 부산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여행은 가기 전 준비하는 동안의 설렘과

다녀온 후 여행기간의 추억으로 다시 반복되는 고된 일상을 버틸 수 있는 에너지를 준다


부산영화제는 나에게 최고의 여행지이자

잠시 일상을 벗어나 미지의 세계로의 일탈이었다

스크린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느낌

많은 관객이 함께 했으나 나만 존재하는 느낌

나와 주인공들만 존재하는 순간


영화관 불빛이 꺼지는 순간

현실도 함께 꺼지는 느낌

그렇게 하루 평균 네다섯 번의 블랙아웃을 경험하고 나면

현실이 영화 같고 영화가 현실 같은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여름궁전을 만났을 때

홀리 모터스를 마주할 때

여름 끝자락을 보면서


2012년을 끝으로 해외에서 생활한다는 이유로

돌아와서는 삶이 퍽퍽해서

가지 않았다

내년 2022년에도 역시 못 갔으면 좋겠다

가지 않는 것이 아니라 못 가는 거다


코로나 이전의 생활로 돌아갈 것이다

반드시 기필코 기여코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 것이다


말이 씨가 되는 일이 반드시 벌어질 것이다

나는 올해가 가기 전에 비행기를 탈것이다

내가 가본 곳일 수도 있고 가본 적이 없는 곳일 수도 있다


올해가 가기 전 비행기를 탈 것이며

2022년 시월, 부산을 부산국제영화제를 지구 반대편에서 그리워할 것이다

절대, 아쉬움 없이...


시월이라 쓰고 영화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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