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Prologue> 집 왜 집일까?

'노마드'와 '역마살'의 차이

by 순정

4월

브런치 콜라보레이션 프로젝트의 주제는 '집'

'집'이라고 쓰고

우선 호흡을 길게 쉬었다. 한숨은 아니다.


'집'에 대해 할 말이 참 많다.

나의 계획과는 상관없이 '노마드' 삶을 살았다.

다른 표현으로는 '역마살'이라고도 한다.

언어적 순화를 하면 '방랑벽'이라 할 수 있다.


먼저 사전전 정의를 찾아보았다.

집 : 사람이나 동물이 추위, 더위, 비바람 따위를 막고 그 속에 들어 살기 위하여 지은 건물이다.
역마살(驛馬煞) : 늘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팔자
(역마살의 어원: 옛날에는 지금과 같은 고도의 통신기술이나 교통시설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정한 거리마다 역참(驛站)을 두고 그곳에서 말을 갈아타며 급한 볼 일을 보러 다니고 했다. 이때 역참에 갖추어 둔 말을 '역마(驛馬)'라고 하는데 이 역마는 당연히 많은 곳을 다니게 마련이다. 그리고 '살(煞)'은 사람이나 물건 등을 해치는 독한 기운을 얼컫는 말이다. 흔히 '살맞았다'와 같이 쓰인다. 따라서 '역마살'이라고 하며 천성적으로 역마처럼 이리저리 떠돌아다닐 팔자라는 뜻을 갖게 되었으며, "저 친구 역마살이 끼었군" 하는 식으로 말한다. -출처:네이버 국어사전-
방랑벽(放浪癖) : 정한 곳 없이 이리저리 떠돌아다니기를 좋아하는 버릇
노마드(Nomad) 유목민 : 목축을 업으로 삼아 물과 풀을 따라 옮겨 다니며 사는 민족

사전적 의미를 찾는 버릇은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칠 때쯤 시작되었다.


사전을 들추고 나니, '방랑벽' '방랑자'라 칭하고 싶으나, 떠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떠돌아다니다 보니 몸에 베여 버린 것 같다. 떠나지 않으면 불안함이 음습해 오는 느낌이다.

나에게는 '역마살이 끼었다.'라는 표현이 어울린다.


역마살이 끼었다


대학을 졸업 후 교사가 되겠다는 꿈을 품고 교육대학원에 진학하였다.

대학원 수업은 일주일 이틀 야간에 진행한다.

낮 시간을 활용하여 대학교 본교에서 조교 생활과 함께 용돈이라도 벌어 볼 겸 기숙사 사감보를 시작하였다.

사감보에게는 생활비 정도의 돈과 기숙사 방이 제공된다.

근무지는 충남(지금은 세종시), 대학원은 경기도 기차를 타고 다니기에 딱 좋은 최적의 조건이었다.

자연스럽게 부모님으로부터 독립이 시작된 시기였다.

정확히 이 시기에 나에게 역마살이 낀 것이다.

물론 대학 시절 자취를 잠깐 하였으나, 독립이라고 하기에는 51% 부족하다.


100% 독립으로 나의 첫 집은 대학교 기숙사 사감보 방이었다.

학생 기숙사 방과 같은 구조이지만, 불편함은 느낄 수 없었다.

사감보 사무실도 있고 통금 시간 이외에도 자유로운 출입이 가능하였다.


1년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였다.

사감보를 하는 동안은 공간에서 생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나날이 내가 소유한 물건의 수가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잘 버리지도 못하지만, 쓸만한 버려진 물건을 절대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습성 때문이다.

한정된 공간에서 화려한 수납의 기술을 발휘하면서 쌓아 올렸다.


역마살은 점점 더 음습해 오면서 드디어 큰 물줄기를 뿜어되기 시작하였다.

다른 기숙사 건물로의 이사였다.

나에게 거리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장거리 이사라면 이삿짐 트럭을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다른 동으로의 이사는 '카트'로 해야 했으며, 종종걸음으로 수십 번을 이동해야 했다.

그날 이후, 하얗게 불 지른 역마살은 더욱더 기세가 든든해지면서 꺾일 낌새는 보이지 않았다.


그 후로 기숙사에서 6개월에 한 번 심지어는

한 달 사이에 두 번의 이사를 할 수밖에 없는 사항에 처하기도 하였다.

모든 사감보가 나와 같은 사항은 아니다.

오직 나만이 연속해서 짐을 꾸리고 이동해야 했다.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는 사항이었으나, 눈물이 날 정도로 힘든 시간이었다.

발만 뻗고 잠을 청할 수 있다면 다시 짐을 싸고 싶지 않았다.

그 공간이 아픈 사연이 있다 하더라도 말이다.


그 시절에는 일주일에 두 번 정도 밤사이 일을 하고 나만의 공간을 제공받을 수 있다는 것에 만족했다.

다시는 검은색 큰 쓰레기 봉지에 이삿짐을 쓸어 담지 않길 바랬다.


그 시절 나에게 기숙사는 '집' 이상의 공간이었다.

잦은 이사만 아니라면 괜찮은 '집'이었다.

가까운 출퇴근 길

편한 통학길

건물 옆 운동을 할 수 있는 휘트니센터

기숙사 건물 뒤 산책을 할 수 있는 뒷동산

넓은 축구장-여름밤 땀을 식힐 수 있는 공간이다.

긴장으로 인해 짧아진 수면시간은 딥슬립 할 수 있는 노하우를 만들어주었다.


나에게 기숙사 집은 그랬다.

잠을 자면서 일을 하는 공간이었다.

일을 하면서 동료, 후배들과 담소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었다.


기숙사의 생활을 마감하면서 간절히 바랬다.

노마드의 삶을 동경하지만, 역마살이 끼지는 않길 바랬다.

역마살 없는 노마드 삶을 추구하고 싶었다.


인생은 한 치 앞을 모르기 때문에 살만하다.

비록 역마살은 여전히 나와 함께이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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