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교과서, 철수와 영희 다시 보기
현재 우리나라의 문화를 지탱하는데 중요한 요소는 무엇이 있을까? 가장 가까이에 있는 요소는 교육이 아닐까 생각한다.
세상의 이치를 배워가는 어린 시절의 교육은 성인이 된 우리의 생각과 가치의 기준을 형성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 이는 어릴 적 교육을 통해 습득한 경험과 정보의 차이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림 01은 동양의 문화에 바탕을 둔 교육의 현상 중 하나다. '메이저리그'에서 활약을 했던 박찬호와 이치로가 목례로 인사하고 있다. 그리고 'KBO'에서 선배를 향해 인사하는 모습과 '세리에 A'에서 첫 골을 기록한 나가토모가 동료와 코치와 고개를 숙이는 모습이다.
아마도 서양 문화에서는 악수로 인사하는 것과 사뭇 다른 풍경일 것이다. 실제로 박찬호가 모자를 벗고 목례를 하는 행동과 나가토모가 90도로 인사하는 행동에 대해서 기사가 나갈 정도니 말이다.
이러한 행동은 관계의 친근함을 표현하는 동시에 존경을 담아 행동하는 의미를 담은 하나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인사를 할때 고개를 숙여 서로에게 예의를 표현한다. 위의 사진을 통해 우리가 저러한 인사를 하는 것은 아마도 어릴 적 고개 숙여 인사하는 문화의 교육을 받았기 때문이 아닐까?
어릴적 교육을 통해 습득한 정보는 우리의 문화와 전통을 이어가고, 지금 대한민국을 구성하는 암묵적인 룰을 만들게 된다. 이러한 룰을 바탕으로 우리는 가치관을 형성하고 행동 양식까지 영향을 받기 때문에, 우리는 교육의 중요성을 인지하게 된다.
그렇다면, '교육'은 우리나라만의 디자인 소재가 될 수 있을까?
1986년에 태어난 세대는 절반은 국민학교로, 절반은 초등학교를 다닌 경험이 있다. 선배들로 부터는 초등학교 세대라며 어린 취급을 받지만, 어린 후배들에게는 국민학교 때 학교를 다녔냐며 구시대의 화석 같은 취급을 받는다. 하지만 재미나게도 선후배를 하나로 이어 줄 수 있는 요소가 있다.
그림 3의 일러스트는 과거 교과서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철수'와 '영희'로 불리던 캐릭터다. 우라는 철수와 영희를 통해 국민학교와 초등학교 세대를 이어 주는 한국만의 추억 소재다.
각 세대는 시대에 따라 조금은 다른 교육을 받았다. 하지만 일러스트라는 그래픽 디자인의 소재가 시대를 관통하는 공감대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시대의 흐름에 따라 세대를 분간할 수 있는 것도, 또는 세대를 이어 줄 수도 있는 디자인 소재는 '교과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세종특별자치시에는 특별한 박물관이 있다. 우리나라의 교과서 역사를 고스란히 보관하고 있는 '교과서 박물관'이다. 여기에는 우리 선조들이 교육용으로 사용했던 서적부터 개화기, 광복 직후 그리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시대별 다양한 교과서를 전시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 시절에 우리 선조들이 사용한 교과서는 일본어로 되어있었다. 당시 국어는 일본어였기 때문에, 한글과 조선어는 일개 지방의 언어로 취급받았었다.
교과서에는 일본어 읽기와 쓰기, 학교와 가정에서 지켜야 할 예절과 일본식 문화 예법에 대한 내용, 그리고 우리나라의 지형, 기후, 산업 등에 대한 지리 내용과 식물에 대한 내용을 서술하는 식물학 교과서 등이 사용되었다.
광복 후에는 일본어가 아닌 임시로 제작된 한글 교과서가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알쓸신잡'에서 김영하 작가는 4학년 때까지 일본어로 교육을 받던 학생들이 갑자기 한글로 된 교과서를 사용하게 되었으니 얼마나 황당했을까 하며 시대적 배경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당시 선조들은 시대 상황에 따라 전시 생활 교과서가 편찬되었다. '싸우는 우리나라', '우리는 반드시 이긴다', '국군과 유엔군은 어떻게 싸워왔나?', '우리도 싸운다' 등과 먹고살기 위한 기술을 가르치는 '농사짓기'와 같은 교과서는 당시 어린이들도 먹고살기 위한 투쟁을 위한 교육을 했다고 어림짐작할 수 있다.
1차 교육과정은 1954년 시작되었다. '철수'와 '영희'는 이때부터 등장한다. 당시에는 이 듀오는 '기영'과 '김순'으로 불리었다. 1차에서 4차 교육과정에는 생활 경험 중심의 교육과 일반성과 특수성을 조화를 목표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시대적 배경 탓일까? 당시의 특수한 시대적 배경인 냉전시대로 인해 '승공'과 '교련'같은 과목이 존재했다. 이 교과서는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공산주의를 비판하며, 언제든 전쟁이 일어나면 학도군이 되어나갈 수 있는 준비를 하는 교과다.
6~7차 교육과 정기에는 기초, 기본 교육이 강화되었고, 직업 교육이 강화되었다. 그로 인해 재량에 따른 교육이 시작된 시점이다. 이에 따라 다양한 과목이 신설되었다. 그래서일까? 5차 교육과정의 교과서와 다르게 교과서 디자인에도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이전에는 비슷한 일러스트 풍의 그림이 교과서 디자인에 사용되었지만, 6차 교육과정부터는 다양한 일러스트의 스타일이 과목마다 적용되기 시작한 점이다.
최근 변한 교과서는 보다 다양한 디자인을 확인할 수 있다. '철수'와 '영희'는 찾아볼 수가 없다. 그리고 각 교과서마다 타이포그래피와 컬러, 일러스트에서 공통점을 찾아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실 생활 중심의 교육과정과 교육과정의 가능성을 강화하는 목표로 만들어진 교과서 디자인에서 우리는 친근함을 느낄 수 없다.
아무래도 50년대부터 이어온 '철수'와 '영희', 그리고 비슷하게 지켜오던 교과서 레이아웃의 변화가 이유가 아닐까 한다. 지금의 교과서를 쓰는 세대는 우리 세대와 교과서를 통한 공감대를 만들 수 있을까? 그들에게 교과서에서 느낄 추억적 비주얼 요소가 존재할까?
이러한 질문에 교과서를 통한 우리나라만의 문화 형성을 위한 디자인 요소를 고민하게 된다. 반 세기에 가깝도록 등장한 철수와 영희의 퇴장은 우리 세대에게 한국스러운 교과서인지 의문이 들게 만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커버에서 사라진 그들이지만, 그들을 활용할 방법은 많다고 생각한다.
교과서는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기초 교육과 창의적 능력을 증진시키는 교육이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국어, 산수, 과학과 같은 기초 교육 외 '즐거운 생활'과 같은 생활 교육을 받고 있다.
이러한 창의성 증진을 위해 삶에 영감을 주는 위인의 이야기 외 삶에 교훈이 되는 이야기를 교과서에 싣게 된다. 이는 홍익인간 이념 아래 인격을 도야하고, 자주적 생활 능력과 민주 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하여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민주 국가의 발전과 인류 공영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 이바지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한다.
이러한 목표를 위해 딱딱한 텍스트 보다, 쉽게 공감 가고 집중시킬 수 있게 일러스트 삽화를 주로 사용하게 된다. 이러한 부분에서 '철수'와 '영희'를 다시 부활시킬 수는 없을까?
이런 디자인 접근에 도움이 될 사례를 하나 이야기하고자 한다. 최근 온라인에서는 만화책처럼 보이는 일본의 교과서 사진이 화제가 되었었다. 이 교과서는 미츠 무라 도서(光村図書)의 2018년 도덕 교과서 디자인이다.
재패니메이션(Japanimation)으로 대표되는 일본의 문화답게 마치 한 권의 만화책 가지고 하고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 같기도 하다. 이는 지브리 스튜디오 출신의 애니메이터 '아라이 요지로'가 그린 일러스트기 때문일 것이다. <태풍의 노루다> 등 애니메이션을 등을 연출한 탓에 지브리 스튜디오에서 볼 법한 느낌이 든다.
이 도덕 교과서 디자인에 가장 중요한 주제로 다룬 것은 '생명'이라고 한다. 앞으로의 시대를 짊어질 어린이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의 존재를 소중하게 생각하며, 자신처럼 살아있는 다른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할 수 있는 내용을 담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가장 일본스러운 그림을 활용하여 교과서에 친근감을 가질 수 하여 교과서 내 주제를 사유하는데 더욱 몰입감을 주고자 한 것을 느낄 수가 있다.
이 교과서의 각 학년 별 커버에서는 주인공이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아이들 눈높이에 맞게 일러스트를 그린 섬세함도 찾을 수 있다. 그리고 교과서 커버에 쓰이고 있는 '모두가 살아 있고 모두가 살아있다(みんな 生きてるみんなで 生きてる)' 문구는 마츠무라 도서가 교과서를 디자인하며 담고자 하는 마음을 가장 잘 표현한 문장이 아닐까 생각한다.
* 재패니메이션(Japanimation) : 일본 애니메이션을 부르는 말. 일본(Japan)과 애니메이션(animation)을 합성한 조어이다. ‘재패니메이션’이라는 말 자체는 일본 애니메이션이 하와이를 비롯한 미국의 서해안 지역에 소개되면서 생겨났다. (네이버 지식백과 , 영화 사전, propaganda)
상기의 도덕 교과서로 공부를 하는 세대가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된다면, 현재 사회를 지탱하는 세대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는 현재 사회생활을 하는 세대가 지브리 스튜디오를 보고 자라왔기 때문이다.
이렇듯, 교과서에는 각 문화를 대표하는 요소가 녹아들어 디자인이 완성된다. 각 나라의 문자로 교과서를 설명하는 디자인, 교과 내용에 따라 다양하게 운용되는 타이포그래피, 그리고 교과서 배경에 사용되는 패턴 등을 통해 디자인을 하기 때문이다. 교과서 박물관에는 이러한 이야기를 담은 세계의 교과서가 전시되어 있다.
그렇다면 우리와 같은 문자를 쓰지만, 공산주의 문화에서 살아가고 있는 북한의 교과서는 어떨까? 철수와 영희와 닮은 캐릭터가 커버에 사용되는 점이 재미있었다.
우리나라로 넘어온 북한 사람들은 이 교과서를 본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아마도 새터민들끼리 어릴 적 이야기를 하며 서로 묶일 수 있는 문화 공감대를 형성하지 않을까?
이렇듯, 교과서에 사용되는 그림과 타이포그래피와 같은 비주얼 요소만으로도 우리의 추억을 되살리기도 하고, 각 나라의 고유문화를 경험한 사람들을 뭉치게도 할 수 있고, 그리고 세대를 넘나드는 공감대를 만들기도 한다. 교과서는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대단한 디자인적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위의 내용을 바탕으로 우리는 한국만의 문화를 담고, 한국의 다양한 세대를 묶을 수 있는 교과서 디자인을 할 수 있을까?
아마도 '철수'와 '영희'의 부활이 그 답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는 이 듀오가 바른생활 이모티콘으로도 사용되고, 다양한 콘텐츠에서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캐시카우로서 가능성을 증명하고 있다.
철수와 영희는 현대 사회에서 새로운 물결을 일으키는 비주얼 요소가 아니라, 흑백사진이 풍기는 하이 모더니즘의 숭고하고 진지한 추억의 '온기'로서 디자인이 되지 않을까 한다.
이는 '현재' 보다 '과거'가 더 미래처럼 들린다면 복고는 진보가 될 수 있는 소재로서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릴 적, 정말 보기 싫었던 교과서가 이제는 추억을 되살리며 다시 한번 보고 싶은 소재가 되었다. 교육의 형식이라는 부분에서 디자인이 해야 하는 교과 내용 전달성 역할보다, 어떤 요소가 우리에게 노스탤지어로서 남을 수 있을까 하는 개념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었다.
이는 50년대부터 교과서에 등장했던 철수와 영희를 통해, 한국만의 교과서의 아이덴티티로서 전 세대를 아우르는 디자인 소재로 그들을 부활시켜야 할지 모른다는 생각이다.
이를 통해 우리 세대 또한 노스탤지어에 빠지기 전을 향한 노스탤지어도 가능할지 모른다. 기록은 기억보다 오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참조문헌
레트로 마니아, 과거에 중독된 대중문화 (사이먼 레이놀즈, 최성민 역)
시민의 교양 (채사장)
한국과 일본의 초등학교 교과서 디자인 비교 연구 : 일본 교과서 삽화와 사진, 편집을 중심으로 (민경희 외)
참조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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