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만의 역사와 문화를 보여주는 교환 수단
해외여행을 가기 전, 우리는 여행을 가는 나라의 화폐를 은행에서 교환한다. 손에 쥐어진 외국의 화폐는 한국의 화폐와는 다르기 때문일까? 다른 나라를 간다는 흥분감을 고취시킨다. 또한 여행을 다녀온 뒤, 우리는 해외여행 기념을 위해 지폐를 지갑 속에 고이 모셔두기도 한다.
이렇듯, 화폐는 각 나라마다 고유의 느낌을 표현하는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화폐 디자인은 한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고스란히 보여줄 수 있는 접근을 해야 한다.
화폐는 사전적인 의미로 상품의 가치를 나타내어 지불 기능을 가진 교환 수단을 의미한다. 이는 인간이 물물교환을 보다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만들어진 매개체다. 이를 위해 주화, 지폐, 은행권과 같은 수단으로 상품 교환 가치의 척도를 나누게 된다고 한다. 이 중에서 지폐의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지폐는 동물 가죽을 화폐로 사용하는 중국의 사례가 시초라고 한다. 초기의 지폐는 '액면가의 귀금속'의 교환이 가능한 보증서 역할을 하고 있었다.
즉, 화폐의 기능이라기보다는 '보관권' 및 '증명서'의 역할에 가까웠었다. 이는 '금'은 현물 경제의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특정한 상황에도 물물교환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을 수 있으나, 화폐는 상황에 따라 물물교환의 기능에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말은 화폐의 사용을 지행 하기 어려우면, 사회 전반의 신용이 무너지게 된다. 즉, 화폐 사용의 무용지물은 경제의 붕괴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이는 화폐가 경제 붕괴 시, 종이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니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디자인 관점으로 시선을 돌려보자. 종이 위에 어떤 정보가 있길래 자국과 외국의 화폐로 구분 지을 수 있을까? 한국은행 화폐박물관에서는 각 나라의 중앙은행에서 국가 별 화폐를 구분하기 위해 몇 가지의 요소를 통해 구분 짓는다고 정의했다. 이 요소는 각 국가의 역사와 문화, 지리에 관련된 정보다.
역사의 경우에는, 화폐 발행국의 위인 혹은 왕족과 같은 인물 또는 대표적인 역사 건축물을 활용한다. 문화적 측면에는 그 나라의 문자와 언어 및 패턴을 활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지리는, 각 나라의 대표적인 동물과 식물을 활용하는 것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지폐를 떠올려보자. 현재 우리나라의 지폐는 4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천 원, 5천 원, 만원, 5만 원의 구성이다. 이러한 지폐에는 인물로는 퇴계 이황, 율곡 이이, 세종대왕, 신사임당으로 구분 지었다. 여기서 천 원과 오천 원의 디자인을 자세하게 이야기해보겠다.
천원은 앞면에 조선시대 유생을 가르치던 성균관 내 명륜당을, 뒷면에는 퇴계 이황이 기거하던 계상정거도(보물 제588호)를 사용하였다. 오천 원의 경우에는 율곡 이이가 태어나고 어린 시절 시간을 보낸 오죽헌(보물 165호)을, 뒷면에는 신사임당이 그린 초충도를 사용하였다.
즉, 대한민국의 역사적 인물과 한국화라는 문화적인 콘텐츠를 기반하여, 가장 한국스러운 이야기를 담은 디자인이 된 것이다. 이처럼 각 국의 화폐는 그 나라 고유의 콘텐츠를 활용하여, 독립적이고 고유의 이야기를 디자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지폐 디자인은 어떻게 변화하였으며, 해외의 디자인은 어떤 모습일까?
첫째로, 우리나라의 지폐 디자인을 이야기해보겠다. 최초의 중앙은행 발행은 1909년이다. 대한제국은 한국은행 조례를 공표하고 최초의 중앙은행을 설립한 후, 일원권과 오원권, 십원권을 발행하였다. 당시 지폐 도안에는 수원성의 화홍문, 서울의 광화문, 창덕궁의 주합루를 사용한 디자인이었다.
이후, 1910년 일제 강점기에는 한국은행을 조선은행으로 개편한 뒤, 1914년에 백 원권, 십원권, 오원권, 일원권을 발행하였다. 당시 백 원권에는 '재복'을 상징하는 '대흑천상'을 묘사한 일본 은행권의 디자인을 그대로 활용하였다.
그리고 1915년 발행된 도안에서는 대흑천상에서 수염이 길고 관을 쓴 노인의 모습을, 뒷면에는 일본은행 은행권과 교환해 준다는 영어 문구를 디자인하였다. 일제 강점기는 우리가 국가를 잃은 시기다. 따라서 대한제국의 지폐와 달리, 한국스러운 문화의 소재에 기반한 디자인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대한민국 최초의 화폐는 독립을 한 후, 1950년에 설립된 한국은행으로 부터다. 당시 6.25가 일어나는 바람에 최초 한국 은행권인 천 원권과 백 원권은 대구에서 발행되었다고 한다. 당시 지폐의 앞면에는 동일하게 이승만 대통령의 초상을, 뒷면에는 탑골공원의 팔각정과 원각사지 10층 석탑을 사용하고, 컬러를 다르게 적용하여 지폐를 쉽게 구분할 수 있는 디자인을 하였다.
전쟁이 끝난 뒤, 1953년 화폐개혁이 일어났다. 일본의 잔재라고 생각하던 '원'을 폐기하고, 조선 제국에서 쓰던 '환'으로 바꾸어 발행되었다. 이는 환 화폐단위의 복권은 근대적 한국 지폐 양식의 토대를 대한제국에서 찾으려 한 것으로 접근할 수도 있다. 당시 도안 디자인에는 남대문, 해금강의 총 석장, 독립문, 한국은행의 행표를 넣는 디자인으로 변경이 되었다.
1950년대의 지폐 디자인은 정치 사회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이는 이승만이 지폐에 통합적으로 사용된 점을 들 수 있다. 실제로 이승만은 양녕대군의 16대손으로 전통적 '군왕'의 면모를 들어내고자 했다고 한다. 이 예로, 1953년 발행된 지폐는 이승만의 얼굴이 중앙에 위치한 경우를 들 수 있겠다.
지폐를 반으로 접어 다닐 때, 이승만의 얼굴이 접히는 '불경'한 상황이 벌어지기 때문에, 1953년 이승만의 초상화를 옮긴 디자인으로 재발행하였다고 한다. 또한 1957년 3월 26일 2년 동안 동일한 날짜에 자신의 얼굴을 인쇄한 지폐를 발행했는데, 그 날은 이승만의 ‘생일’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1960년에는 4.19 혁명에 따라 새로운 경제질서 확립을 하게 된다. 이에 따라, 새로운 지폐 도안이 은행에 발행되었다. 이승만 대통령 대신 세종대왕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기존 한자를 사용한 지폐에서 최초로 한글을 사용하여 디자인을 하였다. 그리고 1962년에는 국민의 저축의욕을 북돋우기 위해 통장을 들고 있는 어머니와 아들의 도안을 채택했으나, 20여 일 만에 유통이 금지된 사례도 있었다.
1962년 6월, 화폐개혁으로 발행된 한글 '원'을 표시한 은행권이 재발행되었다. 전쟁 후, 경제개발에 필요한 투자재원을 확보하고 잠재적 인플레이션 요인을 제거하기 위해 화폐가치를 10:1로 절하하는 개혁이 단행되었다. 이에 따라 한글 '원'표시 새 은행권 6종인 오백 원, 백 원, 오십 원, 십원, 오원, 일원이 발행되었다. 도안에는 남대문, 독립문, 해금강의 총석장을 디자인에 활용하였다.
1970년 대에는 경제성장과 함께 거래 단위가 커지게 되어 고액권 발행의 필요성이 크게 높아지게 되었다. 당시에는 율곡 이이, 세종대왕을 도안으로 한 만원 와 오천 원권이 발행되었다. 그리고 경복궁의 근정전, 한국은행의 건물이 사용되었다. 또하 1982년 석굴암 본존불, 불국사를 도안으로 채택한 만 원권 지폐는 박정희 대통령의 서명까지 받았으나 종교계의 반발로 미발행되었다고 한다.
1980년대는, 20년 동안 사용된 디자인의 근간이 완성되었다. 1975년 퇴계 이황의 투호, 사슴이 그려진 천 원, 1988년 율곡 이이와 벼루와 학이 그려진 오천 원, 1979년 세종 대왕 및 물시계와 용이 그려진 만원은 현재 우리의 지폐와 매우 비슷한 모습이다. 즉, 우리가 사용하는 현재 지폐 디자인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로, 각 나라별의 재미난 지폐 디자인을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위에서 지폐의 디자인은 인물, 역사적 사물, 지리로 구분 지었었다.
우선 인물 중심의 지폐 디자인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인물도 몇몇 타입에 따라 구분이 되기도 한다.
국가 영웅 및 왕족이나 지도자의 초상화다. 한국이 만원에 세종대왕을 모시는 것과 같은 디자인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몽골의 경우 500투그릭에 대제국을 건설한 칭기스 칸, 베트남의 경우 500,000동에 독립영웅 호찌민, 미국의 경우 1달러에 미국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 중국은 내전에서 승리하고 중화인민공화국을 세운 마오쩌둥, 쿠바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게릴라 영웅 체 게바라가 디자인에 사용되었다.
한국의 천 원과 오천 원처럼, 유명 문학자 및 과학자가 사용되는 경우도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유로화로 통합되기 전 프랑스에는 어린 왕자로 유명한 생텍쥐페리, 일본에는 과학자로 유명한 노구치 히데오와 소설가로 유명한 나쓰메 소세키, 오스트리아에는 모차르트, 스위스에는 화가이자 조각가 그리고 디자이너로 기하학적 형태와 다양한 색체를 표현한 작가 아르프, 이탈리아는 과학자로 유명한 갈릴레이가 각 지폐 디자인에 사용되었다.
문화적인 건축 사례로는 고전주의 양식 건축을 사용한 유로, 국립 볼쇼이 극장의 러시아, 카바 신전의 이란, 푸에블라 성당의 멕시코, 링컨 기념관의 미국, 앙코르와트 사원의 캄보디아, 스핑크스의 이집트, 만리장성의 중국 지폐에서 확인을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지리 환경에 따른 내용을 담은 지폐는 인도네시아의 오랑우탄 고 극락조, 스리랑카의 블랙 루비 등 다양한 모습으로 디자인되어있다.
이렇듯, 세계의 화폐는 각 국가의 가장 적극적인 표현 수단인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각 국가는 고유의 문화를 반영하는 화폐 디자인을 위해 많은 시도를 하게 된다. 이 중에서 많은 여행객들의 눈을 사로잡는 지폐도 존재한다.
이러한 지폐를 디자인한 아티스트 중 가장 유명한 디자이너 중 한 명은 로저 폰트 일 것이다. 그는 1969년 스위스 국립 은행 화폐 디자인 공모전에서 수상을 한 후, 프랑스 프랑, 유로화, 스위스 여권 등 다수의 디자인을 해왔다.
그는 화폐 디자이너로서 역할은 미적 요소와 기능적 가치의 접목이라고 한다. 어떻게 하면 화폐를 통해서 해당 국가의 문화와 정신을 잘 나타내면서, 위조방지 기술을 디자인의 일부처럼 자연스럽게 접목시킬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그것이다.
또한 주제(Theme)에 대한 본질적인 접근이 중요하다 하였다. 수학자를 은행권에 표현하기 위해서는 수학자에 대한 피상적인 이미지를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수학자의 학문에 대한 이해를 위한 노력에서 출발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사람의 업적에 대해 공부하고, 그것을 시각화시켜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말한다. 더불어, 각각의 디자인 요소는 동일한 가치를 지녀야 하며 이 동일한 가치는 일괄적인 패턴, 즉 unity in security design으로 표현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위를 통해 화폐 디자인은 기능성과 심미성을 기반으로 각 국가의 이야기를 담아야 비로소 좋은 디자인으로 완성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주위에는 기능성과 심미성 외에 이벤트적인 기능을 하는 지폐가 존재한다. 사람들은 이 기능을 통해 행복감을 느끼기도 하고, 당시 시대를 추억하는 소재로도 사용된다.
예를 들어, 미국의 2달러와 일본의 2000엔은 우리 주위에서 쉽게 발견할 수 없는 지폐다. 사람들은 이 지폐를 받게 되면 지갑 속에 행운을 빌면서 집어넣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화폐를 행운 화폐라고 부르고 싶다. 사람들이 돈을 쓰기 위한 목적보다 행운을 지갑 속에 보관하는 역할로 이용되는 경우를 더러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벤트 화폐는 국가적 행사 시 나오는 화폐다. 이를 기념화폐라고 부른다. 기념화폐는 역사이자 문화를 상징한다. 특히나 한정적으로 생산되는 목적에 따라서,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가 높아지기도 한다. 최근 평창 올림픽을 기념하기 위한 한국의 2천 원 지폐가 디자인되었다.
위의 2달러와 2000엔과 달리, 한국의 2000원은 무언가 부족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 원인은 디자인에 있지 않을까 한다. 위에서 분석을 한 것과 같이, 지폐는 그 나라 고유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자연환경 등을 조합하여 디자인을 하는 것을 확인했다. 한국의 2000원 기념 지폐에는 그러한 모습이 어디에 있을까?
한국이 쇼트트랙 강국이라고 하지만, 선수들의 경기 모습을 강조했어야 했을까? 그리고 뒷 면의 한국화를 그려 넣었지만 동계 올림픽과는 무슨 연관성이 있을까? 가장 한국스러운 디자인을 담기 위해서는 이러한 기념 화폐 디자인 또한 많은 고려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로저 푼트의 말처럼 화폐는 심미적인 측면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지폐는 이를 반영한 가장 적극적인 국가의 아이덴티티 표출이 아닐까 생각한다. 과거 인터넷에는 십만 원권 지폐 디자인이 이슈가 되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이룩한 광개토대왕과 한국의 가장 동쪽 끝인 독도를 디자인에 활용하자는 아이디어였다.
신채호 선생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했다. 이 아이디어는 신채호 선생의 생각이 적극 반영된 아이디어의 사물이 아니었을까? 지폐는 결국 한 나라의 독립성과 고유의 문화 등 다양한 콘텐츠가 뒤섞여 우리 생각 이상의 경험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다양한 지폐 이야기를 확인했다. 가장 한국스러운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는 지폐는 외국인에게 어떻게 보일지 궁금하다. 아름다운 디자인으로 보일까? 혹은 한국스럽거나 동양의 고풍스러운 디자인으로 보일까?
지폐 디자인에 정답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좋은 디자인을 통해, 지폐를 사용하는 우리의 일상이 심미적으로 풍요로워질 수 있다면? 그것이 지폐 디자인의 올바른 해답이 아닐까 생각한다.
참조자료
Google image
우리 화폐 세계화폐 (한국은행 화폐박물관 도록)
http://komsco.tistory.com/tag/스위스 (한국 조폐공사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