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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지 Nov 13. 2024

아동청소년문학과 가을 나기

청소년문학으로 뉴스레터 쓰기, 창비어린이 계간지 받아보기

지난달 친구에게 자기가 연재하는 취향 뉴스레터에 특별호에 실을 글을 한 편 써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주제는 자유. 형식은 간결하게. 마침 쓰고싶은 글이 있던 차에 잘됐다 싶었다. 기고할 공간을 준다니 고맙기도 했다. 친구의 부탁을 승낙하고는 곧장 글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이틀에 걸쳐 청소년문학에 관한 장편 에세이를 써내려고 했다. 젊은 층이 많이 읽는 취향 뉴스레터이다 보니, 친구에게 소개하듯이 청소년문학을 제대로 소개해 볼 심산이었다. 참고할 도서를 옆에 차곡차곡 쌓아둔 채 청소년 도서를 둘러싼 편견과 그에 대한 변론, 그리고 청소년문학의 역사, 의의와 작품 추천까지 아우르는 내용을 워드에 빼곡히 써 내려갔다. 생각해 보니 블로그나 브런치를 벗어나서 글을 써보는 건 처음이나 다름없었다. 글을 실을 공간이 한 페이지 반 정도밖에 안 된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더라면 적어도 참고도서 몇 개는 읽지 않았을 텐데.


짧디 짧은 글을 쓰기 위해 분투한 흔적들이 바탕화면 한 구석에 초라하게 남았다.


우여곡절 끝에 분량을 줄이고 줄이고 줄이는 데 성공하였다. 다른 뉴스레터와 비교하면서 글을 최대한 뉴스레터스럽게 바꾸는 데에도 매진했다. 며칠에 걸쳐 퇴고를 거듭하고 나니 글이 아주 홀쭉해져 있었다. 툭 튀어나온 부사는 자르고, 문맥에 안 맞는 문장은 가지치기하고, 문단 순서도 여러 차례 바꿨다. 방대한 양을 줄이려니 솔직히 처음에는 엄두가 안 났었는데 막상 해보니까 되긴 되더란다. 지금 생각해보면 초고가 그만큼 엉망이라서 고칠 부분도 많았던 것 같다.


마침내 뉴스레터로 발송한 글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청소년문학을 위한 변론’이라고 할 수 있다. 청소년뿐 아니라 어른도 청소년문학을 읽어야 하는 이유에 관해 설득하듯이 썼다. 제목은 그 유명한 생텍쥐페리 저 『어린 왕자』의 문구를 빌렸다. “어른들은 누구나 처음에는 어린이였다.” 주제를 바로 잡으니 곧바로 제목이 떠올랐다. 아마 『어린 왕자』가 ‘어른들을 위한 동화’로 불릴 만큼 여리고 순수한 감성을 지녔기 때문인 것 같다. 아, 그리고 글을 처음 쓰기 시작할 때는 가을비가 한창 내리고 있어서 가을비로 글을 환기하는 투로 첫머리를 썼는데, 수정을 끝내고 나니 가을비가 그쳐서 뉴스레터를 발송할 즈음에는 농담처럼 맑은 날만 이어지는 게 아니겠는가. 머쓱했지만 그냥 체념하고 최종 원고를 발송했다 하하. 이번 계기로 짧은 글이 더 쓰기 어렵다는 사실을 똑똑히 배웠다. 하려는 말이 똑바로 서야 뭐든 명료하고 간결하게 표현할 수 있는 것 같다.


다음은 뉴스레터 전문. 짧으니 궁금하다면 읽어보세요.


취향 뉴스레터 Pebbles


바야흐로 독서의 계절이 왔습니다. 지금은 부슬비가 내리고 있고요, 잎이 연하게 바랬습니다. 가을만큼 부지런히 제 얼굴을 바꾸어가는 게 있을까요? 여름이 가는 것은 아쉽지만, 가을이 보여주는 풍요로운 얼굴도 제법 마음에 들더군요.


제 책장을 소개하면서 운을 떼보겠습니다. 저는 세계고전도 좋아하고, 인문에세이도 즐겨 읽습니다. 다양한 나라에서 온 가지각색의 책들이 저마다 특별함을 뽐내며 책장에 가지런히 꽂혀있죠. 그중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한 책은 청소년문학입니다. 책장 하나를 가득 채울 정도로요. 그 때문에 겉보기가 조화롭지는 않습니다만, 늘 설레는 마음으로 신간을 들여놓게 되더군요. 물론 저는 청소년이 아니기 때문에 ‘왜 하필 청소년도서냐’고 해명해야 할 처지에 종종 놓이곤 합니다. 그러면 상대방은 지칠 때까지 일장 연설을 들어야 하지요. 오늘은 여러분께 그 이야기를 해드리려고 합니다. 청소년문학이 얼마나 매력적인 장르인지 말이죠.


여러분은 기억하는 청소년문학이 있으신지요? 곧바로 떠오르진 않아도, 분명히 읽어봤으리라 생각합니다. 잠시 학창 시절을 떠올려 보세요. <나의 오렌지라임 나무>나 <어린 왕자>와 같은 고전 작품도 청소년문학이고, <완득이>나 <아몬드>와 같은 현대 소설도 마찬가지로 청소년문학입니다. ‘청소년 권장 도서’란 이름도 제법 익숙하시겠지요. 입시를 치르다 보면 자연스레 청소년 권장 도서와 씨름하게 되니까요.


하지만 성인이 된 이후에 청소년문학을 읽어 본 적이 있냐고 물으면, 확신하건대 많은 사람이 아니라고 대답할 겁니다. 실제로 청소년문학을 소비하는 주 독자는 학부모 층에 해당하는 40대와 10대입니다. 청소년 중 대부분이 교육과정에서 청소년문학을 접하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부모가 될 때까지 청소년문학을 읽지 않는 셈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많은 사람이 청소년도서를 ‘청소년을 교육하는 책’ 정도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아마 ‘청소년 권장도서’를 떠올렸겠지요. 하지만 청소년문학이 오직 청소년을 위한 책에 불과한 것은 아닙니다. 더군다나 건전한 내용과 비슷한 교훈만 늘어놓는 것은 더욱 아니고요.


청소년문학은 외려 가을만큼이나 풍성하고 다채로운 면면을 지닌 장르입니다. 이는 청소년문학의 주인공인 청소년이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지요. 청소년은 진정한 자기를 찾기 위해 매시간 동분서주합니다. 청소년의 무한한 가능성은 그 과정에서 어른을 의심하고 불편해하며, 과거의 답을 거스르면서 탄생합니다. 불온하고 반항적이지만, 새로운 것에 거리낌이 없고, 함박웃음 짓다가도 금세 눈물 흘리고, 어떤 구석에선 어른보다 진지하고 성숙한 사람을 떠올려 보십시오. 청소년문학은 이러한 청소년의 역동力動을 무기로 어른이 주인인 사회의 통념을 예측할 수 없게 비틀고, 이야기를 괴악하게 휘저어 버리곤 합니다.


그래서 모든 어른에게는 청소년문학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언젠가 자기가 어린아이였다는 사실을 곧잘 잊습니다. 청소년의 변칙적인 모습에 철이 없다고 혀를 내두르고, 세상을 건조하게 대하는 데 익숙하지요. 우리의 영원한 비행기 조종사 생텍쥐페리가 "어른들은 누구나 처음엔 어린이였다. 그러나 그것을 기억하는 어른은 별로 없다."고 <어린왕자>에 썼던 것처럼요. 대신 우리는 청소년문학을 읽으며 이야기 속 아이가 속삭이는 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면 아이의 시선을 통해 세상을 자유롭게 대하는 방식을 다시 터득할 수도 있습니다. 요컨대 청소년문학을 읽는 것은 마음속 잠든 아이를 계속해서 깨우는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제가 소개해 드리고 싶은 청소년문학은 자기 자리에서 가장 빛나는 청소년들의 이야기입니다. 시집부터 흥미로운 설정의 SF소설, 그리고 신랄한 비판이 담긴 우화까지. 소위 입문서라고 할 만한 책들을 다양하게 꺼내왔습니다. 여러분께서 어떤 아이의 모습을 발견하실지 기대됩니다. 재밌게 읽으신다면 더할 나위 없겠습니다.



『내일도 담임은 울 삘이다』 - ★공고 학생들이 쓴 시


지은이: 류연우 외 77인

엮은이: 김상희, 정윤혜, 조혜숙

발행일: 2012-03-29

출판사: 휴머니스트


2008년부터 2011년까지 ‘서울북공업고등학교’(현재는 ‘서울도시과학기술고등학교’로 교명이 변경되었습니다)의 학생들 80여 명이 쓴 시를 엮은 시집입니다. 한 학생은 매일 출근하는 공사 현장을, 또 어떤 학생은 오토바이로 짜장면을 배달하는 일상을 교실 삼아 시를 썼습니다.



『현아의 장풍』

지은이: 최영희

발행일: 2019-10-04

출판사: 북멘토


10대 청소년 ‘현아’가 ‘설계자’라 불리는 절대자에게 장풍의 힘을 얻게 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그린 SF 장편소설입니다. 정의감에 넘치는 소녀 현아는 불의로 가득한 세상에 맞서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황당한 설정과 마냥 가볍지 않은 주제가 일품인 작품입니다.



『3차 면접에서 돌발 행동을 보인 MAN에 관하여』 - 욜로욜로 시리즈

지은이: 박지리

발행일: 2017-12-15

출판사: 사계절


“왜냐하면…… 그건…… 이게 면접이기 때문입니다.”

MAN이라 불리는 한 남자가 자신의 마흔여덟 번째 면접에서 보인 돌발 행동에 관한 장편소설입니다. 과열된 경쟁사회의 부조리한 일면을 날카롭게 포착해 그려낸 작품이지요.


『3차 면접에서 돌발 행동을 보인 MAN에 관하여』 - 연극을 위한 연극을 연극적인 것으로 둘러싸인 연극 속에서…





창비에서 발행하는 계간지 창비어린이를 구독하였다!



청소년문학을 좋아해서 여태 읽어왔다지만, 솔직히 당사자도 아니고 주변에 청소년도 없는지라 이야기에 몰입하지 못하는 경험을 가끔 한다. 청소년 문학에는 학교가 이야기의 배경인 경우가 무척 많다. 다른 장르와 다르게 청소년 인물이 전면에 나서니 부득이하게 학교 안팎의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때로는 이야기 속 세계가 나와 완전히 동떨어져 있는 것 같다. 뭔가… 다른 세상 이야기를 듣는 느낌? 학교는커녕 십 대 때 기억이 통째로 가물가물한 처지다. 십 대 안에서 유행하는 말이나 놀이가 나오면 더 당황스럽다. 이게 무슨 말이야? 할 때가 종종 있다. 그럴 때면 인터넷을 켜서 검색해야 한다. 물론 인터넷을 키는 순간 몰입은 깨지고 만다. 와장창!


나는 그렇게 길을 잃었다. 어떻게 청소년문학을 읽어야 좋을까 싶을 때, 딱 결심했다. 한번 읽는 거 제대로 읽어보자는 마음으로 <창비어린이>를 구독했다. <창비어린이>는 창비에서 계간하는 아동청소년 분야의 문예지다. 내가 처음 받아본 것은 2024 가을호. 마침 운이 좋게 가을호의 특집이 ‘지금, 여기, 어린이’라는 주제로 구성되었다. 아동문학의 영원한 화두인 ‘어떤 어린이를 발견할 것인가’에서 시작해 오늘의 어린이를 만나보자는 목적으로 기획된 특집이다. 동시, 1학년, 장애, 사랑, 철든 어린이, 멋진 어린이, 로봇과 어린이라는 일곱 개 테마의 글이 특집을 채워주었다.


「구체적인 화자들」(김유진), '드라큘라 화자가 오히려 어린이 주체의 자리를 입체적으로 만들어 어린이를 둘러싼 인식을 넓힐 뿐 아니라 새로운 어린이 독자를 부르고 있는 것이다.'
「세상을 바꾸는 1학년」(박숙경) , '창조력은 과거의 답을 따르지 않고 어린이가 어른을 의심하거나 불편해서 참을 수 없을 때 태어난다.'


아, 정말이지 특집은 정말 마음에 쏙 들었다. 허허. 첫 글에서 동시 속 어린이 화자를 다룬 것이 특히 흥미로웠다. 특집 첫머리를 차지한 「구체적인 화자들」(김유진)은 동시의 장르적 특성을 들어 현재 동시에서 어린이가 어떻게 현현하고 있는지 진단하고 앞으로 동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한 글이다. 요약하자면 ‘화자’와 시 속 ‘세계’가 일치하는 보통의 시와 다르게 동시는 어른이 어린이의 목소리를 빌려서 세계를 구성하기 때문에, 어린이라는 주체를 발견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만약 이 문제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동시에서 어린이는 타자로만 남게 되고, 동시의 의미는 퇴색하고 말 것이다. 와 그렇구나. 동시의 지형을 조감하는 느낌. 덕분에 동시라는 장르를 조금 알게 되었다. 뒤이어 쓰인 「세상을 바꾸는 1학년」(박숙경)은 1학년 동화와 동화에서 비추어지는 어린이상에 관해 이야기하는 글이다. 어린이 화자의 창조력에 대한 고찰과 저자의 철학이 내게 큰 영감을 주었다. 여기에 조금 옮겨 써보겠다!


| 아동문학은 새로운 어린이상을 바란다. 그런데 이 어린이는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기성세대가 제공하는 문화 안에서 성장한다… 우리는 앞세대로부터 중요한 것을 배우기도 했지만 상당 부분은 쓸모가 없거나 심지어 해로운 것도 있었다. 16-17쪽


| 결국 아이들에게는 ‘무엇을’ 배우는 것보다 ‘어떻게’ 내 몸으로 습득하는가가 중요하다… 교실, 책상, 칠판 앞 교사… 같은 것이 어린이 학교생활의 주된 이미지라면 어린이는 기성세대가 정한 틀에 맞추어 적응해야 하는 대상 또는 목적어가 된다. 하지만 운동장, 쉬는 시간의 복도, 등굣길에서 피우는 딴청 같은 것을 어린이 학교생활의 중요한 이미지로 남는다면 아이들은 양 날개를 파닥거리며 비행을 습득하는 주어가 될 수 있다. 17쪽


| 창조력은 과거의 답을 따르지 않고 어린이가 어른을 의심하거나 불편해서 참을 수 없을 때 태어난다. 어른이 아이들을 쓸데없이 억압해서는 안 된다. 어린이를 위한다며 과한 보호와 서비스를 깔아 둔다면 실생활이건 아동문학이건 참 재미없는 노릇이다. 18쪽


「뭐 하고 놀아요?」(심진규), '고깔을 낀 손가락으로 인형 뽑기 놀이를 하는 모습'


계간지를 구독한 목적을 달성케 해준 기획은 『어린이와 세상』이었다. 『어린이와 세상』은 아동청소년문학이 독자와 만나는 현장을 조명한다. 아동청소년 책방 ‘책과아이들’의 이야기부터, 교실에 그림책 600여 권을 모은 초등학교 교사가 들려주는 이야기, 교실에서 놀잇감 없이 노는 아이들의 이야기까지. 특히 마지막 글인 「뭐 하고 놀아요?」(심진규)는 휴대폰 없이도 잘 노는 아이들의 모습을 그대로 담아서, 글을 읽는 내내 아이들이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만들어 내는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심심한 시간을 보내며 그동안 못 봤던 것을 보게 되었고, 쉬는 시간에는 친구와 수다를 떠는 새로운 즐거움을 찾았다. 옹기종기 모인 아이들이 전에 만들어 둔 종이 고깔을 손가락에 끼우고 인형 뽑는 놀이를 한다. 한 아이는 조종하고, 한 아이는 인형 뽑기 기계가 되어 인형을 들어 올리다 놓친다. 그게 재미있다고 깔깔대며 웃는다. 157쪽


| 오늘은 점심밥을 먹고 교실로 돌아오는데, 아이들이 내 뒤를 살금살금 따라오는 것을 느꼈다. 내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자 아이들이 제자리에 멈춘다. 내가 다시 걸으니 따라온다. 멈춰서 뒤를 돌아보니 다시 멈춘다. 자연스럽게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놀이가 된다. 내가 돌아보며 웃으니 아이들이 따라 웃는다. 짧은 순간이지만, 이 놀이가 아이들에게는 좋은 기억으로 남지 않을까? 159쪽


<창비어린이>를 구독한 것은 올해 내가 잘한 일 중 하나다. 덕분에 청소년문학을 읽는 길을 하나 터득한 기분이다. 내가 왜 청소년문학에 갑자기 관심을 가지게 됐는지 조금이나마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달까. ‘‘동심’이란 사심없는 마음’(「책이라는 촉수로」, 구설희)이라고 한다. 나는 과연 사심없는 마음에서 비롯하는 생명력을 찾으려고 부단히 애쓰는 것이다. 내 눈길은 동시를 실은 구획에서 다시 멈춰섰다. 다 읽고 나서 어딘가 천진난만해진 기분으로 동시를 읽으니 내가 동시 속 어린이가 된 것만 같다. 비로소 땅에 발을 딛은 기분!


마음 먹었어, 임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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