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쓰는 소설
『나는 내가 싫어. 혐오해. 세상에서 사라졌으면 좋겠어.』
옛날에 동화책을 참 좋아하는 어린이가 있었다. 그 또래의 어린이들이 다 그렇겠지만, 특이했던 것은 특정 동화책을 무척이나 좋아했다는 사실이다. 동화책의 이름은 미운 오리 새끼 이야기.
어느 날, 하염없이 울고 있는 일곱 살 순남 어린이를 보고 깜짝 놀란, 선생님이 물었다. 소리 내어 울지 않고, 소리 죽여 온몸으로 우는 아이를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왜 울고 있니?”
“미운 오리가 너무 불쌍해요. 미운 오리는 자기가 얼마나 싫을까요. 그 생각을 하면 눈물을 멈출 수가 없어요. 꼭 나 같아요.”
어린이답지 않은 대답에 유치원 선생은 별말을 하지 못하고, 그저 품에 안아 달랬다.
그리고 어린이는 소년이 되고 청소년이 되었다. 자기혐오의 색은 짙어졌다. 그리고 짙어지면 짙어질수록 미운 오리를 생각했다. 자기를 포함해 사람들을 오리에 빗대어 생각했다. 왜냐하면 사람이라고 부르면, 차갑고 딱딱한 현실이 되어, 겨우 버티고 있는 한없이 약하고, 불안한 세계를 무너뜨릴 것 같아서.
순남은 자주 생각하곤 했다. 다른 오리들이 미워하는 미운 오리가 아니라, 자기를 혐오하는 미운 오리를 생각했다.
‘난 왜 이렇게 못 생겼을까.’
‘난 왜 이렇게 뚱뚱할까.’
‘난 왜 이렇게 말을 못 할까.’
‘난 왜 이렇게 마음의 모양이 이상할까.’
‘난 왜 다른 오리들처럼 아름답지 못할까.’
‘난 왜 다른 오리들처럼 될 수 없는 걸까.’
사실, 순남을 물리적으로 괴롭히는 오리는 없었다. 하지만 자신을 바라보는 오리들의 시선 속에서 경멸을 읽었다. 자기에게 말을 걸지 않는 오리들의 행동에서 무시를 읽었다. 홀로 존재하는 시간 속에서 아무리 찾아도 자신이 세상에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무의미하고 가치 없는 시간을 겨우 버티고 있다고 생각했다. 미운 오리는 무리에서 쫓겨나 힘들고 괴로운 겨울을 견뎌냈다. 그리고 어느 날 물에 비친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을 본다. 미운 오리처럼 자신도 무의미하고 가치 없는 이 시간을 견디고 버텨내면, 아름다운 나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소년기를 지나 청소년기로 접어든 순남은 생각했다.
『인도로 떠날 거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석양을 볼 수 있는 절벽에서, 난 사라질 거야.』
하지만,
스물이 넘고, 성인이 되고, 대학생이 되었지만, 순남은 자기혐오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선생님, 저는 저 자신이 너무 싫어요. 참기 어려워요. 어떡하죠.”
“그럴 수 있어요. 괜찮아요. 조금씩 좋은 방향으로 생각하는 연습을…”
그즈음에는 신경정신과에서 상담받았다. 선생님은 좋은 사람이었다. 미간을 찡그리며, 공감하며 내 얘기를 들어주었다. 두 손을 꽉 잡아주며, 괜찮아질 거라고 얘기해 주었다. 그리고 약을 먹으면 괜찮아질 거라고, 약을 지어 주었다. 하지만, 매번 같은 이야기, 같은 약이 반복되었다.
반복을 더 이상 견디기 힘들었다. 그래서 결심했다.
‘죽어야겠다.’
하지만 죽기 전에 딱 한 가지 하고 싶은 게 있었다. 인도에 가고 싶었다. 언젠가 보았던 사진 속 장소에 가서 죽고 싶었다. 그곳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석양을 볼 수 있는 절벽이라고 했다. 그곳이라면, 추한 나도 아름다운 마지막을 맞이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교를 휴학하고, 두 달 동안 공사장에서 일했다. 가장 빨리 원하는 여행 갈 돈을 마련할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인도로 갈 비행기표를 구입하고도 삼백만 원이 넘게 남았다. 충분했다. 인도 여기저기를 돌아보고, 그 절벽에서 죽기에 충분하고도 넘쳤다.
정신과 선생님은 좋은 생각이라고 했다. 더 넓은 세상에서 더 많은 사람을 보고 오면, 증상을 완화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거라고 했다. 어머니도 처음으로 뭔가 하고 싶다고 말하자 반색했다. 여행비도 보태주려고 했다. 하지만 죽으러 가는 여행에 어머니 도움을 받고 싶지 않았다. 왜냐하면, 어머니의 도움을 받아 떠나면, 결국 어머니는 나의 죽음을 지원해 준 셈이 되니까, 그러면 어머니의 마음이 너무 아플 것 같으니까.
처음 타는 비행기. 아홉 시간여의 지루한 시간을 보내고 도착하였다. 인도 뉴델리. 내리자마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검은 수염에 허연 이를 드러낸 인도 사람들이 팔을 잡고 끌었다. 뭐라고 영어로 말하는데 알아들을 수 없었다. 웃으면서, 그러나 강하게 끌었다. 이 사람도 저 사람도, 이러다가 나라는 인형이 찢어질지도 모르겠다. 작게 얘기해도 될 텐데, 청력을 시험하듯, 바로 옆에서 큰 소리로 떠들었다. 어차피 알아듣지도 못할 말을 서너 명이 동시에 말해서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한 숙소에 도착해 있었다. 인도치고는 비싼 금액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이상 따지고 생각할 여력이 없었다.
그리고 뉴델리의 어딘지도 모를 낡고 오래된, 이름만 호텔인 그곳에서 한 달을 보냈다. 밖으로 나가기만 하면 달려드는 사람들 때문에 밖으로 돌아다닐 용기가 나지 않아, 한 달 동안 침대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았다. 나의 인도 첫 여행지는 눅눅한 비 냄새가 나는 침대 이불 속이었다.
꿈을 많이 꾸었다. 꿈속에서 쫓기고, 도망 다니는 반복. 비슷한 사람들이 나왔고, 항상 똑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자신을 혐오하는 부모, 자신을 혐오하는 친구들, 자신을 혐오하는 세상, 부정하는 세상. 그리고 쓰레기 같은 나.
다행인 것은 인도치고는 비싼 숙소였지만, 돈에는 여유가 있었다. 딱히 돈을 쓰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커리와 난 탈리 같은, 우리나라로 치면 백반 정도의 먹거리만 간신히 먹고 있었기 때문에 돈이 떨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그곳에서 머물 수는 없었다. 뉴델리를 떠났다. 시끄러운 도시와 틈만 나면 정신을 홀리려는 하루살이, 파리 같은 사람들에게서 벗어나고 싶었다. 시끄러운 오리들이 너무 많았다. 다음 목적지로 다람살라로 정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거의 티베트 사람들이 거주하고, 현시대의 정신적 스승 달라이 라마도 살고 있는 곳이라고 들었다. 그래서 어느 사람들은 다람살라를 세상에서 마음이 가장 고요한 곳이라고 한다고 들었다.
『안녕 난. 백조다쉬. 성이 백이고 이름이 조다쉬야.』
다람살라는 듣던 대로 조용한 곳이었다. 그리고 티베트인들은 도시 생활의 편리함을 누리지 못하는 대신, 평온이라는 선물을 받은 것 같았다. 아이들도, 노인도, 젊은 사람들도 잇몸이 드러나게 웃었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한마디 하면, 저편에서 웃었다. 누런 이를 드러내고 깔깔 소리 내며 웃었다. 악의가 담겨있지 않은 맑은 웃음. 풍경 소리 같았다. 며칠 지내자, 뉴델리의 혼란스러움을 잊을 수 있었다. 나 같은 자기혐오 오리가 있기엔 성지나 다름없는 곳이라고 생각했지만, 조금은 자신을 부정하지 않고, 그저 살아가는 그들을 좀 더 보고 싶었다. 나와는 다른 삶을 보고 싶었다.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어쩌면 다른 차원에서 다람살라에서 태어났을 내가 겹쳐 보였다. 누런 이를 드러내고, 햇빛에 까맣게 탄 건강한 나. 자신을 혐오하지도 부정하지도 않는 나. 그러나 그것은 그 차원의 일일 뿐, 이 차원에서는 자기를 혐오하는 오리 새끼 한 마리가 있을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하였다.
다람살라는 작은 마을이라서 걸어 다니기에 충분하다. 마을을 걸어 다니며, 길거리에서 파는 꼬치나 떡 같은 간식거리를 먹었다. 그러다 식사 시간이 되면 밥을 먹고, 가끔은 절에 가서 마니륜을 돌리다 오곤 했다. 마니륜의 찰랑거리는 쇳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러다 그녀를 만났다. 그녀는 주황색 티베트 전통 의상을 입고 있었다. 나비가 팔랑거리듯, 긴 팔을 흔들며 다녔다. 호기심에 가득 찬 어린아이 같은 눈으로 돌아다니고 있었다. 처음엔 중국 사람인 줄 알았는데, 나를 발견한 그녀가 한국말로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한국 사람이죠? 한국 사람 오랜만에 보내요. 전 백조다쉬예요.”
이상한 이름이었다. 성이 백이고 이름이 조다쉬라니.
“루마니아 혼혈이라서 그래요. 조다쉬는 루마니아어로 신이 내린 이라는 뜻이래요”
그녀는 만나자마자, 말할 곳을 찾고 있었던 듯 재잘재잘 조곤조곤, 작은 입술을 오므려 이야기했다.
“그러면 조다 씨라고 부르면 되겠네요? 조다 씨?”
그녀의 여행도 나와 별다를 게 없었다. 동네 마실 나온 것처럼, 별거 없이 돌아다녔다. 인도 음료인 짜이를 한 잔 마시고, 입을 오물거리며, 팔을 팔랑팔랑 흔들며, 돌아다녔다. 가끔 신기한 듯, 지나가던 사람을 뚫어져라 쳐다보기도 했다. 사람들을 관찰하는 일. 그녀의 여행은 인간 관찰이 주 목적인 것처럼 보였다.
원래대로라면, 전혀 어울릴 일이 없는 사람이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나처럼 추하고 뚱뚱한 사람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내가 미운 오리라면, 그녀는 커다란 날개로 파란 창공을 우아하게 비행하는 순백의 백조였다.
아이처럼 호기심에 찬 커다란 눈, 엷은 분홍색 작은 입술, 가는 팔다리. 미인상이었기에 인도의 각다귀들과 다른 여행자들이 갖은 말과 폼을 재며 그녀의 곁을 맴돌았다. 왜애앵.
그런데 그녀는 나에게 관심을 보인다.
“몇 살이야? 앗, 나도! 동갑이네. 너도 함피 가는 거야? 잘 됐다. 혹시 동행 없으면 나랑 같이 다니지 않을래?”
네. 그래요. 대답하기가 무섭게 조다 씨가 손을 내밀었다. 악수했다. 여자와 악수하는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나는 그녀를 조다 씨라고 불렀다. 안녕하세요, 조다 씨. 잘 잤어요, 조다 씨. 오늘은 어디로 갈까요, 조다 씨.
동행을 하면서, 같이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나도 모르게 조다 씨를 좋아하게 되었다. 하지만 차마 고백할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아름다웠고, 나는 추했으니까. 그리고 어차피 나는 곧 죽을 운명이니까. 죽기로 결심했으니까.
『 여기서 석양을 볼 수 있어서 참 다행이야. 아름다워. 마치 지구가 아니라 다른 행성 같아.』
언젠가 인도에 대한 책을 읽었을 때, 세상에서 노을이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소개되었다. 함피라는 지역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지고 싶었다. 세상의 해가 가장 아름답게 지는 곳에서, 비록 자격이 모자랄지 모르지만, 거기에서 인생이 저물었으면 좋겠다 싶었다. 그러면 조금이라도 인생이 가치가 있게 될 것 같았다. 조금은 더 그럴듯한 인생이 될 것 같았다.
조다씨와 난 다람살라에서 여러 지역을 거쳐 함피에 도착했다. 그곳은 지구가 아닌 것만 같았다. 마치 다른 행성 같은 곳이었다. 그래서 그런 생각도 들었다. 지구에서는 나라는 오리가 살 자격이 없지만, 이곳은 다른 행성 같은 곳이니까, 나에게도 살 자격이 있지 않을까. 지구인으로서는 자격이 없지만, 이 행성에서는 어쩌면, 살 자격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깐’ 했다.
그곳에서 우리는 예정된 수순대로, 노을을 같이 보았다. 태양은 세상의 저편으로 사라지고, 금빛에 비친 이계의 바위들은 화성이나 달 같은 우주에서 볼법한 붉은 빛으로 바래졌다. 눈을 뗄 수 없었지만, 문득 옆을 보자, 조다씨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너무 아름답지 않아?”
“오늘 여기서 석양을 볼 수 있어서 참 다행이에요. 아름다워요. 마치 다른 별, 다른 생 같아요. 지구가 아니라 다른 별에서 태어난 것만 같아요.”
쑥스러워서 괜히 먼 산을 보며 말했다.
“맞아. 지금 생이 아니라, 이전 생 혹은 지금의 다음 인생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아주 잠깐이지만, 지금 인생이 아니라, 전생이나 후생에 있는 것만 같은.”
“너 말이야. 한 번도 묻지 않아서 좋았어. 그전에 어떤 일을 했느냐, 어디 사느냐, 연애를 했느냐 같은 시시콜콜한 얘기들. 사실은 아무 관심 없는데, 눈은 딴 데로 가 있는데, 그냥 하는 이야기. 혹은 다른 목적을 가지고 하는 이야기. 다른 인생의 사이즈를 함부로 재려고 하는 짓. 자기 인생의 사이즈도 모르면서. 그런 거 정말 극혐이야. 그런데 넌 그러지 않아서 좋았어. 고마워. 사실 혼자 다니기 무서워서 동행이 절실하긴 했거든. 아, 그리고 동갑인데 말을 놓지 않은 것도 고마웠어. 나만 말을 놓는 게 이상하긴 하지만. 헤헤.”
그녀가 웃었다. 웃는 일이 거의 없는 그녀였는데, 웃었다. 그녀의 미소는 아름다웠다. 외모보다 더. 웃지 않는 그녀는 단단해 보였다. 아름다움으로 꽉 차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것만 같은, 이미 다 완성되어 있어 함부로 다가갈 수 없는 것만 같은.
그런데 지금 그녀는 비로소 나와 똑같은 나이의 소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녀는 전생에 혹은 후생에 주황색 호랑나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미소가 어쩐지 봄빛 같아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녀는 자기 얘기를 했다. 여태까지 단 한 번도 사적인 얘기를 한 적이 없었다. 물론, 나도 그녀에게 사적인 얘기를 한 적이 없었다. 할 얘기도 없었고, 사적인 얘기를 한다는 것은 혐오스러운 나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이었으니까. 그것은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었으니까.
“왜 살아야 할까. 그런 생각을 많이 했어. 그런데 여기서 이렇게 석양을 보면서, 화성의 바위들 같은, 그리고 전혀 다른 차원의 시간 속에 있는 것만 같은 아름다움을 보니까, <역시 살아있길 잘했다>고 생각했어."
조다 씨는 과거의 이야기를 했다. 그녀는 심한 따돌림을 당했다. 물리적인 괴롭힘을 포함한 따돌림이었다. 몇 차례 학교도 옮겼지만, 옮길 때마다 어떻게 찾아오는지, 그녀를 괴롭히는 무리의 친구의, 친구의, 친구의, 친구들이 따라붙어, 괴롭히곤 했다.
“세 번, 혹은 두 번 반 정도. 두 번은 스스로, 그리고 한 번은 괴롭히는 이들에 의해 죽을 뻔했어.”
그녀는 더운 인도에서도 한 번도 반팔을 입지 않았다. 항상 손목까지 다 내려오는 긴팔을 입고 있었다. 소매를 걷어 팔에 난 상처를 보여주었다.
“그거 알아? 칼로 죽기 정말 힘든 거. 담당 의사가 그러더라고. 이건 일종의 신호래. 살려달라는 신호. 제발 몸에 난 상처를 보고, 구해주세요, 살려주세요, 하는.”
그녀는 결국 학교를 그만두고 검정고시를 보았다고 한다. 다년간 정신과 상담을 받았다고 한다. 해가 완전히 다 저물 때까지도 그녀의 말은 계속되었다. 그동안 못한 말들을 토해내듯. 나는 들었다. 그보다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가만히 있었다. 그녀의 말을 듣는 것 외에 다른 행동을 어떻게 해야 할지, 그 큰 상처를 어떻게 덮어줄지 생각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 자신도 버거웠으니까. 나 자신도 감당할 수 없었으니까.
“그러다 사진을 봤어. 맞아. 여기 노을 사진. 그 사진을 보는데, 이걸 직접 보고 싶다. 직접 보면 생길 거 같았어. <살아야 할 이유>”
그녀는 모를 것이다. 나 역시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을을 보기 위해 이곳을 찾아왔지만, 죽을 곳을 찾아왔다는 것을. 의미를 찾을 수가 없어서. 한편으로,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힘든 시절을 다 견뎠다는 것이 존경스러웠다. 그에 비해, 나는 하찮구나 싶었다. 원래도 하찮았는데, 더 하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도 괴롭히지 않았고, 큰 괴로움도 없었으면서도 살려고 하지 않는 나 새끼.
“고마워.”
“그냥 들어줘서. 넌 좋은 사람이야. 덕분에 즐거운 여행을 할 수 있었어.
“조다 씨. 여기요.”
차마 전하지 못한 마음을 담은 편지를 내밀었다. 잠잘 시간을 아껴 써두었던 편지. 언제 전해야 할지 몰라서 간직하고 있었는데, 지금이 아니면 전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런데, 앗, 바람이 불었고, 편지가 날아간다. 착!
“그렇겐 안되지.”
그녀가 낚아챈다. 그리고 핸드폰 불빛을 비춰 편지를 읽는다. 웃었다, 찡그렸다 알쏭달쏭 표정.
“알았어. 고마워. 역시 넌 좋은 사람이야. 그런데 이거, 답을 해야 하고 이런 건 아니지?
“네. 당연히, 아니죠. 고마워요. 얼른 내려가야겠어요. 해가 다 졌어요. 조심해서 내려가야겠어요.”
나는 내려왔다. 혼자 올라가서 뛰어내리려고 했는데, 혼자가 아니었다.
그리고 다음 날, 그녀는 떠났다. 가고 싶은 곳이 생각났다고.
나는 며칠 더 그곳에 머물렀다. 혼자서 그곳에 올라가 석양을 봤다. 해가 완전히 질 때까지. 조다 씨와 내가 본 자리는 여행자들이 많이 오지 않았다. 여행자들이 많이 모이는 곳은 그 사진에 찍힌 곳이었다. 가이드에도 그곳에서 보는 석양은 이 세상 것이 아니며,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석양을 볼 수 있다고 적혀 있었다. 그러나 나에게는 그곳이 아니라, 이곳이 가장 아름다운 석양을 볼 수 있는 곳이었다. 그녀와 함께 석양을 보았던 곳.
혼자서 며칠 더 올라갔지만, 나는 죽지 않았다. 그리고 이 글을 쓰고 있다. 그녀와 사랑에 빠지고 연애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집을 장만하여, 행복하게 살다 죽었습니다 같은 이야기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녀는 그 이후로도 계속해서 세계를 떠돌고 있고, 나는 집으로, 살아서 돌아왔다.
그 아름다운 석양을 보며, 그곳에서 떨어질 수는 없었다. 그녀가 없던 며칠 동안, 그동안 살면서 했던 생각보다 더 생각다운 생각을 했다. 그녀가 그랬다. 고맙다고, 좋은 사람이라고. 조다 씨는 떠나갔지만, 어쩐지 내 인생은 지구에서 다른 행성으로 전환된 것만 같았다.
우울증 약을 여전히 먹고 있지만, 여전히 스스로를 혐오할 때도 많지만, 그럼에도 가끔은 나도 괜찮은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도 그녀처럼 살아야 할 이유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이유를 찾기 위해서 좀 더 살아보자 생각했다.
자기를 혐오하는 순남 오리는 석양에 비친 자신을 똑바로 바라봤다. 생각보다 자신은 추하지 않았다. 그래서 백조다 씨처럼 나도 살아갈 이유를 더 찾아보기로 하였다. 자신을 덜 미워할 이유를 찾아보기로 하였다. 조금 더 좋아할 이유를 찾아보기로 하였다.
그녀와 함께 찍은 사진은 없다. 극도로 사진 찍는 것을 싫어했으니까. 다만 남은 사진은 그때 함께 봤던 함피의 노을. 보드에 걸린 사진을 볼 때마다 가물가물한 그 시간을 기억한다. 희미하지만, 그 속에서 살아갈 이유를 찾는다. 지는 해를 타고 팔랑팔랑 세계를 나는 한 마리 백조를 본다.
** EN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