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떠나요 화캉스

화장실은 나의 안식처

by 순남

- 안녕하세요. 선생님.

- 요새 다시 많이 불안합니다. 견딜 수가 없어요. 뛰쳐나가고 싶어요.

- 저런, 많이 불안하시군요. 그럴 때마다, 신경정신과에 갈 수도 없고. 이렇게 하는 건 어

때요? 화장실에 가는 거예요?

- 화장실이요?

- 네. 화장실로 떠나세요. 화가 날 땐, 화캉스. 화장실로 지금 당장 떠나세요!

- 아, 화캉스!

- 네, 전 국민의 신경안정제, 이 세상에서 가장 편한 공간, 화장실로 떠나요!


머릿속에서 맞다 게보린 CF처럼 영상이 펼쳐지고, 급하게 화장실로 향한다.

떠나요, 둘이서, 바캉스는 못 떠나요.

떠나려면, 화장실로, 화캉스 떠나요


hq720.jpg?sqp=-oaymwEhCK4FEIIDSFryq4qpAxMIARUAAAAAGAElAADIQj0AgKJD&rs=AOn4CLBbTFsEJ6iH71cND-JerlsS-uzahg 나를 찾지 마세요 잠시 잊어주세요


사라지고 싶을 때가 있다.

누가 봐도 해낼 수 없는 일이 주어졌는데, 어떻게든 해내야 한다는 중압감이 느껴질 때가 있다. 숨고 싶다. 도망가고 싶다. 그렇다고 진짜로 잠수를 타거나 무단결근을 할 수는 없다. 사장님 미워요, 하고 뛰쳐나가 버린다? 이건 좀 끌리는 방법이지만, 마흔이 다 되어서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울지 않아를 외치는 캔디가 되고 싶진 없다. 아무리 칭얼대도 받아주는 테리우스는 나타나지 않을 테니까.

왜냐하면 나는 소녀 캔디가 아니라, 중년 순남이니까.


동료 직원들이 비난할 거라는 생각 혹은 비난하고 있다는 착각이 들 때가 있다. 악역을 맡은 프로레슬러가 경기장에 입장하듯. 동료 직원들의 비난이 쏟아진다.

우우우~ 풀다 만 휴지뭉치, 먹다 만 깡통, 던져도 아깝지 않은 온갖 잡동사니가 날라 간다.


- 넌 왜 이렇게 무능력해! 사라져! 없어져 버려!


물론, 실제로 그런 일은 없다. 아무도 입술과 혀를 움직여 소리 내어 말하지 않는다.

다만, 내 안의 내가 말한다. 마트에서 장사하는 아저씨처럼 쉬지 않고 말한다.


- 골라요 골라. 아무거나 골라. 혐오해요 혐오해. 무능력을 혐오해.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골라요. 골라. 내 인생은 망했어요. 이제 그만. 골라요. 골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골라요. 골라. 이대로 살래요. 죽을래요. 골라요. 골라. 그것이 문제예요. 골라요. 골라.


스스로 만들어낸 목소리가 재생산된다.

혐오와 허무 불안을 재생산하고 증폭시킨다. 그대로 가만두면, 점점 더 불어난다. 제곱의 제곱의 제곱처럼. 끝을 모르고 불어나니까, 끊어줘야 한다.


보통 사람이라면 이럴 때 있지 않나.(나만 그럴까. 나만 이렇게 예민한 걸까.)

신경이 예민하게 곤두 서 다른 사람의 마음속 목소리가 들리는 듯한 착각이 들 때,

도저히 사무실에 가만히 앉아 있기 힘든 순간,

.

.

.

그럴 때, 추천합니다.

떠나자, 화장실로!


이런 분들에게 강력 추천!

먼 곳으로 휴가를 갈 수 없는 분.

자리에 꼼짝없이 앉아서 구속당한 것처럼 일하고 있으신 분.

앉아있는 게 너무나 괴로워서 미치고 팔짝 뛸 거 같은 분.

그럼에도 어떻게든 오늘을 살아가야 하는 분.


지금 당장 떠나요. 화장실 바캉스는 별도의 비용이 들지 않습니다.

대한민국 화장실은 대부분 무료니까요.

특히 회사에서 화장실 가는데, 비용을 받는 곳은 없으니까요.


화장실 한 칸에 앉아,

오직 나만 있는 공간,


가끔은 화장실 낙서가 있지만,

신은 죽었다. - 니체 -

니체 너 죽었다. - 신 -

니네 둘 다 죽었다 - 청소 아줌마-


그곳에는 없어요.

할 줄 아는 건 없으면서, 하고 싶은 것만 많은, 지긋지긋한 상사도,

왜 이렇게 당당한지, 아는 것만 많은 부하 직원도,


거기 앉아 있으면 아무도 몰라요.

사무실 바로 가까이 있지만, 세상과 완전히 격리된 공간.


그곳에서 완전한 안전함을 누려요.

똥을 누든, 안 누든,

들어가서 심호흡 육십 육 번을 하고 나오면,

장도 튼튼, 마음도 튼튼

리프레쉬를 누려요.


여름 바캉스를 가는 게 재충전을 위해서인 것처럼,

일상에서 잠깐의 재충전을 위해 화캉스!

.

.

.

나는 오늘도 화장실로 향한다. 완전히 비우고 나면,

장도, 마음도,

가뿐해져서 룰루랄라.

무거운가? 무서운가?

그렇다면 떠나라, 화장실로!

떠나자, 화캉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