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을 때만, 살아 있으니까, 나의 죽음을 생각할 수 있다
내가 죽었다.
장례식장이 조용하다. 사람이 많지 않다. 빈소에 영정 사진이 걸려 있다. 웃음기 가득한 얼굴이다. 그 앞에 상복을 입은 아내가 있다. 검정색 삼베 저고리를 입고 있다. 머리에 흰색 핀을 꽂고 있다. 입을 꾹 다물고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눈가에 눈물 자국이 보인다. 눈두덩이 퉁퉁 부었다. 많이 슬펐을까?
여동생은 조문객을 맞이하고, 어머니는 때로 가슴을 세게 친다. 끅끅 차마 토해내지 못한 가시같은 울음을 토해내려는 듯. 사람다운 말보다는 짐승 같은 목울림 소리. 말로는 차마 심정을 표현할 수 없을테니.
왜 죽었을까?
모른다. 중요하지 않다. 죽어버린 사람에게 죽음의 이유는 중요하지 않다. 사인을 알고 싶은 건 살아있는 자들이다. “왜 죽은거야?” “어쩌다 죽었대?” 오가는 사람들의 말 속에 그 이유가 들어있을 듯한데, 듣지 않는다. 궁금하지 않다.
아는 얼굴들이 지나 간다. 나를 잘 알던, 좋아하던, 친하게 지내던 친구, 가족, 친척. 얼굴도 기억 안 나는 낯선 사람도 있다. 오랫동안 연락이 끊겼던 친구도 보인다. 결혼식장에는 안 왔었는데, 장례식장에는 와주었다. 반갑다, 친구야.
누구는 친절한 사람이었다고, 누구는 편한 사람이었다고, 누구는 무뚝뚝했다고, 이기적인 구석이 있었다고, 혹은 유쾌한 사람이었다고, 소심한 사람이었다고,
말한다. 모두 맞다. 그 모두가 다 나다.
향이 피어오른다. 흰 국화꽃이 놓인다.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 절하는 사람들, 절을 하지 않는 사람들.
아내가 맞절을 하거나 고개를 숙인다. 위로가 오고 간다. 남은 자들은 이야기를 한다. 떠난 자에 대해, 나에 대해. 향을 피우고, 애도하고, 위로하고,.
장례식은 하나의 의식이다. 산 자들의 의식. 자리를 채우는 것은 늘 산 자들이다.
소주 잔을 채운다. 산 자들은 각자 잔을 비운다. 술기운인가. 기억이 흐릿하다. 술을 먹은 건 산 자들인데, 안개 속을 헤메듯 희미하다. 나는 누구였을까? 어떤 사람이었을까? 산 자들은 죽은 자에게 답하지 않는다.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나눈다. 다시 채우고, 다시 비우며, 안주 삼아 떠든다. 좋은 사람이었어. 보고 싶을 거야. 훈훈한 이야기들이 오가는 중에, 한 친구는 술에 취해 큰 소리로 말한다.
그 자식 진짜 웃겼는데. 과민성 대장 증후군이라, 갑자기 화장실 찾는다고, 고속도로에서 갓길 멈춰서 가드레일 넘어서 수풀로 뛰어 내려갔잖아. 소리랑 냄새가 어찌나 크고 지독한지. 크크. 아직도 구린내가 나는 거 같아. 재채기 소리는 또 얼마나 컸게. 깜짝 깜짝 놀랐다니까. 덕분에 졸다가 깬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야. 맞아, 맞아. 마이너스의 손이었잖아. 건들기만 하면, 멀쩡하던 컴퓨터가 고장났다니까.
그래도 애가 참 착하고 맑았어. 덕분에 많이 웃었다.
말은 흩어진다. 의미도 흩어진다. 사람들이 떠난다. 국화 꽃이 시든다. 영정 사진이 내려진다. 화장터로 옮겨진 관은 태워진다. 연기가 피어 오른다. 기억이 조금씩 더 흐려진다. 따뜻한 온기를 느끼며, 스르르 잠이 들듯 나의 존재가 흐려진다.
눈이 내린다. 흩날린다. 눈송이는 모두 다르다. 똑같아 보이는 눈송이들의 결정체를 보면, 똑같은 것은 없다. 바닥에 닿아 녹으면 똑같이 물이 된다. 나는 눈송이였다. 모두의 삶이 각자에게 특별하듯, 나의 삶도 특별했다. 그러나 죽으면 똑같다, 녹은 물처럼.
남은 사람들은 살아간다. 나는 없다. 그러나 어떤 말, 어떤 기억, 어떤 감정은 남는다.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 조금씩 희미해질 뿐.
나는 살아 있는 자들 속에 남아 있다. 그러나 나는 없다.
내가 죽었다,
고 생각했는데, 아직 살아 있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아직은 시간이 있다. 기회가 있다.
죽고 나서야 알았다. 내가 얼마나 특별한 사람인지. 나로 살아있다는 그 자체만으로 충분히 특별하다는 사실을. 더 특별해지려고 애쓰지 않을 것이다. 이미 충분한 내 삶을 누릴 것이다.
산 자로 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