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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남 Aug 28. 2023

[초단편소설] 희망고문




까똑.

까똑까똑.


 요새는 이 재미로 산다. 카톡이라는 것이 이토록 재미난 것인 줄 왜 그전에는 몰랐던 걸까. 누구와 메시지를 주고받는 게 전에는 이토록 즐겁고, 가슴 벅찬 일인 줄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녀 덕분에 아무것도 아닌 것이 너무나 즐거워졌다. 그녀가 보낸 몇 글자 말들 때문에, 지금의 인생은 너무나 즐겁다.


 차도 없고, 집도 없다. 남들보다 특출 난 능력이 있어서 돈을 벌지도 못했다. 소심한 성격 탓에 지금에 와선 친구 하나 없다. 가족도 없다. 하나뿐인 부모님과 여동생은 모두 죽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세상에 혼자 남겨져 있다. 외롭고 쓸쓸한 날들의 연속. 회사라고는 하지만, 야간에 서버를 관리하는 일이기 때문에, 언제나 혼자 하는 일이다. 낮에는 사람들이 있었을, 그 자리도, 남아있었을, 온기도, 밤에는 없다.


정상적으로 서버가 돌아가는지 지켜보면 되는 일. 내가 아니라도 누군가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던 어느 날, 모르는 누군가로부터 카톡이 왔다. 회사가 아닌 데서 카톡이 오는 건 처음.

누구지.


까똑까똑. 쉴 새 없이 쏟아내는 말들.


밥은 먹었어?

오빠 생각나서

오빠 별일 없구?

난 잘 지내는데, 오늘 홍대 갔는데, 오빠 생각나서.


여자의 까똑은 계속되었다. 너무 빨리 말해서 껴들 틈이 없다.


왜 아무 말이 없어? 보고 있지?


저기... 잘못 연락하신 거 같은데...


가 시작이었다. 이후, 우리는 카톡을 주고받았다. 여자도 외로운 사람인 것 같았고, 나도 외로운 사람이니까.

어쩌면, 나에게도 드디어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 생겼다는 기대감이 생겼다. 설렘이 가득했다.

그러나 세상에는 허용되는 일이 있고, 허용되는 일이 허용되는 사람이 있다.

나에게는 허용되지 않는 일이었고, 나는 허용되지 않는 사람이었다.

만나자고 하려고 했는데,


오빠 나 남친 생겼어. 축하해 줘!


 그래,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단순한 말 상대일 뿐이니까. 나는 그럴 자격이 없는 사람이니까. 축하한다고 했고, 그래도 한 번 보고 싶었다.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다. 그러나 번번이 여자는 일이 생겼다고 했다. 그 일이 무슨 일인지까지는 말하지 않았다. 나도 더 묻지 않았다. 왜냐하면, 더 물었다가, 그녀가 더 이상 연락하지 않으면 어쩌지, 싶었으니까.


오빠, 이제 연락 안 하는 게 좋겠어. 오빠가 보낸 카톡 때문에, 남자 친구랑 싸웠어. 안녕.


정말?


이냐고 급히 썼다. 그러나 여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1이 사라지지 않았다. 영원히 1이 사라지지 않을 것만 같다. 아마도. 다시는 연락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연락처를 진작 물어볼 걸, 연락처를 묻지도 못했다.

매일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며, 다시 까똑이 울리길 기대했으나, 더 이상 울리지 않았다. 정말이라고 쓴 마지막 말에, 뭐라고 쓸까, 뭐라도 쓰면 알아줄까, 망설이고, 망설였다.


그녀와 주고받은 카톡을 매일매일 읽었다.

그리고 정말이냐고 쓴 마지막 말 밑에, 드디어 두 글자를 남겼다.


절망.


그녀가 대답하지 않으니까. 내가 대답했다.

정말이라고 묻고, 절망이라고 대답했다.


다시 아무것도 없는 생활이 계속되었지만, 전과는 달랐다. 아예 누구의 자리도 없던 때는 그저 견디면, 됐는데, 아주 잠시 그녀가 있었던 빈자리 때문에, 그 빈자리가 점점 커져서, 더 이상 견디기 힘들어졌다.


의미가 없다. 더 이상 살아갈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고, 서버실 천장에 벨트를 매었다. 목을 갖다 대었다.

이제 밑에 있는 의자를 차버리면, 내 몸은 공중에 대롱대롱 매달리겠지.


겨우 여자 때문에, 얼굴 한 번 못 본 여자 때문에, 죽는다니, 나도 참 어지간히 웃기는 놈이구나,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분명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할 테지만, 그런 것이야 어쨌든 더 이상 견디기가 너무 힘들다. 이제 그만, 이 생을 끝내고, 가족 곁으로 가고 싶다. 그곳에서는 더 이상 외롭지 않을지도 모르니까.


심호흡을 하고, 발로 의자를 차버리려는데,


울렸다, 핸드폰.

들렸다. 까똑.


까똑이다. 까똑소리가 들렸다. 그녀한테 연락이 왔을지도 모른다.

얼른 가서 확인하려고, 목을 빼려다, 그만, 균형을 잃고 의자를 차버린다.


벨트가 목을 조인다. 공중에 매달린다. 사방에 닿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벨트에 손을 넣으려고 했지만, 넣지 못했다. 숨이 막힌다. 목이 졸린다.


희미해져 가는 의식으로, 서버가 웅 하고 돌아가는 가운데,

들린다. 소리.


까똑. 까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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