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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남 Sep 04. 2023

[초단편소설] 자기 혐오에서 탈출하기

나는 내가 정말 싫다. 이 세상에 있는 그 어떤 것보다도 싫다. 꿈틀 꿈틀 지렁이. 낼름 낼름 구렁이. 장화만 보면 달려들어 헥헥대는 누렁이보다도 훨씬 더 많이 싫다.

어째서 이 세계에 존재하게 한 걸까. 왜 태어났을까. 어쩌면 신도 모르고 있을지 모른다. 어쩌면 신의 계획에도 없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어쩌면 실수다.


신이 버튼을 잘못 눌러서 존재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머리를 싸매고 고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저지른 신으로서의 과오에 노심초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 세상에서 나를 싫어하는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다.

어렸을 때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맞고나서는 울면서 항상 말을 했다.


- 너만 아니었으면, 너만 태어나지 않았으면. 너를 낳지말았어야 하는데.


그리고,

어머니가 맞아서 공중에 붕 떠서 현관문까지 날아간 날.

오렌지 색 옷을 입은 119 아저씨들이 온 날.

119 아저씨들이 전화해서 순경 아저씨들을 부른 날.

순경 아저씨가 아버지의 손에 수갑을 채운 날.

수갑이 채워지면서 나와 아버지의 눈이 마주친 날.

아버지는 말했다.


- 썩을 놈. 지 애미나 니 새끼나. 눈에 띄지마. 나 갔다오기 전에 니 애미랑 같이 죽어버려.


나간 아버지는 삼일 만에 돌아와서는 소주 세병을 마시고, 고꾸라져 잠이 들 때까지 밟았다, 나를.

지렁이처럼 꿈틀대지도, 구렁이처럼 낼름대지도, 누렁이처럼 헥헥대지도 못하고, 죽은듯이 옆으로 움츠리고 누워 밟혔다, 나는.

아팠지만, 엄마, 엄마 하고 울면서 부르고 싶었지만, 울지도, 부르지도 않았다. 불러 버리면 간신히 부-웅 날아간 어머니가 다시 돌아와서 맞을까봐, 맞고 아파하면서 말할까봐. 너를 낳지 말았어야 하는데. 그럴까봐.

다행히, 참았기 때문일까. 어머니는 돌아오지 않았다. 맞아서 아파도 차라리 그 편이 나았다.


- 내가 나쁜거니까. 다 나 때문이니까.


학교에서도 모두 나를 싫어했다. 못 생겨서. 옷이 더러워서. 웃지도 울지도 않아서.

아무도 놀아주지 않았고, 그들의 부모들은 하나같이 말했다, 다 들리도록.


- 쟤랑 놀지마.


그치만, 꾸역꾸역 살았다. 숨쉬는 것조차 조심스러웠지만, 살았다, 어떻게든.

조심스레 살았는데 어찌 알았는지, 주민등록증이 나왔다. 주민등록증이 나왔으니까, 이제 어른이 되었다, 고 생각했다. 어른이 되었으니까, 돈을 벌어야 했다. 아버지는 근처 사는 심부름센터에 소개시켜주었다. 일을 했고, 돈을 벌었다. 벌어온 돈은 아버지가 가졌다. 돈을 가져간 날은 때리지 않았다. 행복했다. 조용히 잠들 수 있다는 사실, 행복했다.


그러다, 아버지 죽었다. 혼자 되었다.

장례식에 아무도 오지 않았다. 아버지 불에 태우고, 집에 왔다.

집에 아무도 없었다. 이제 나만 남았다. 조용했다. 가끔 바퀴 벌레 기어갔지만, 시끄럽지 않았다.

더 이상 때리는 사람 없었다. 언제까지나 이 침묵 속에서 살고 싶다 생각했다. 먹지 않았다. 먹을 것 사러 나가지 않았다. 나가면, 누군가 애써 가진 이 평화를 방해할지 모르니까, 애써 찾은 이 죽음같은 평화 사라질지도 모르니까.


잠을 자고, 잠이 들었다가, 꿈에 아버지가 나왔고, 아버지가 때렸고, 아파서 꿈에서 깨어났다. 하지만 꿈이었고, 다시 잠들었고, 또 다시 아버지가 나왔다.꿈을 꾸고 싶지 않았다. 잠을 자다가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살아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세상이 나를 싫어하니까,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고 했다던가, 그러니까, 삶에서 내가 떠나는게 맞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문이 열렸다. 부-웅 하고 날아가버린 어머니가 눈물을 흘렸다. 울면서 미안하다 하며 나를 안았다.

눈꺼풀을 들어 어머니를 바라보고 있는 것도 힘들다. 안을 힘도 없었다.

그래도 어머니의 흐느끼는 소리만은 뚜렷하게 들렸다.


- 불쌍한 것. 불쌍한 것.

불쌍하구나. 나 불쌍한거구나.


- 가여운 것. 가여운 것.

가엾구나. 나 가여운거구나.


- 엄...마.

눈물이 흐른다. 엄마를 보고싶어서도 아니고, 품이 따뜻해서도 아니다. 이제 겨우 하고 싶었던 말. 참아온 말.

엄마를 말할 수 있어서, 눈물을 흘릴 수 있어서. 그리고 내가 너무 불쌍해서. 불쌍한데 그 말을 누군가가 꺼내줘서.

 이제서야, 생각할 수 있다


- 내가 이세상에서 제일 불쌍하다. 정말 불쌍하다.


꽉 안았다. 어머니의 품이 아니라, 어머니 등 뒤로 깍지낀 내 왼손을  오른손으로 잡아주고 싶어서, 

나를 꼭 안아주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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