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순남 Sep 08. 2023

[초단편소설] 무서운 꿈

인간이 살아야 하는 이유


꿈을 꾸었습니다.

꿈속에서,

 나는 사방이 캄캄한 곳에 있습니다.

앞에 뭐가 있는지 보이지 않습니다.

우주처럼 끝도 없이 어두운 것인지, 사방이 막혀 캄캄한 것인지 구분할 수 없습니다.

심지어, 손도 보이지 않습니다. 손으로 눈 주변을 만집니다. 만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보이는 것이 어둠뿐이기에.

손으로 몸을 만졌다는 사실 자체가 사실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멀리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목소리는 부르고 있었습니다.

부르고 있는 것은 아마도 나의 이름이었습니다.

'아마도'라고 한 이유는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리다 사라진 탓입니다.

목소리가 누구의 것인지 떠올리기도 전에 목소리는 사라졌습니다.

침묵 속에서 목소리를 다시 떠올려보려 해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톤이 높았는지, 낮았는지, 여자였는지, 남자였는지.

그리고 목소리가 부르고 있던 나의 이름이 무엇이었는지.

목소리가 완전히 사라졌을 때, 나의 이름도 사라집니다.


용기를 내서,

아, 아, 안녕하세요, 마이크 테스트를 하듯, 목소리를 내려고 합니다.

그러나 머리에서 생각한 말들은 소리로 울려 나오지 않습니다.

 공기를 모아, 성대로, 성대의 떨림을 소리로, 소리의 윤곽을 혀와 입술로 내려고 하였습니다만,

안녕하세요,라는 말은 들리지 않습니다.

귀가 따가울 정도의 침묵이 주변을 둘러쌉니다.

어둠과 침묵은 서로의 모습을 드러내지도, 말을 주고받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호흡이 잘 맞는 공범입니다.

그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밧줄이나 재갈도 쓰지 않습니다. 욕을 하거나 때리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그렇기에, 차라리 밧줄로 묶어달라고, 재갈을 물려달라고, 욕을 하거나 때려달라고 부탁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견딜 수 없기 때문입니다.

완전한 침묵과 어둠을 견딜 수 있는 인간은 없기 때문입니다.

아니, 적어도 나는 그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겁이 납니다. 겁이 나지만, 비명을 지를 수 없습니다. 떨 수도 없습니다.

떤다고 생각하지만, 떨고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비명을 지른다고 생각하지만 알 수 없습니다.

들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본다는 것이 무엇인지, 듣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점차 느낄 수 없습니다.

느낀다는 것이 무엇인지 희미해집니다.

몸이 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점차 나라는 사람이 있는지, 있었는지조차 의심스러워집니다.

왜냐하면, 아무도 나를 부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나를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 수 없습니다.

어쩌면 찰나, 혹은 영원일지도 모릅니다.

찰나이든 영원이든 다를 게 없습니다. 눈 깜 박할 정도의 순간이든, 우주의 시작에서부터 시작되는 무한 같은 시간이든,

의미를 잃습니다.

아니, 애초에 시간이 존재하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페이드아웃된 화면에 스탑버튼을 누른 채로, 나갔습니다.

나가고,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 누가 누구이든, 화면은 그대로 남습니다.

텅 빈 극장. 멈춰버린 영화. 극장을 나가버린 사람들은 멸망합니다. 세계가 끝났지만, 영화는 계속, 또 계속 멈춰있습니다. 마치, 그런 영화가 된 것 같습니다.


꿈에서,

깨었을 때, 꿈이어서 다행이라고 안도의 한숨을 쉽니다. 영원 같았던 순간, 순간 같았던 영원에서 벗어났다는 생각에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잠에서 깨려고 세수를 하러 갑니다. 얼굴에 물을 묻힙니다. 거울을 봅니다. 거울에 내가 보입니다. 또 한 번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물기를 닦고 화장실에서 나옵니다. 그리고 화장실의 불을 끄고, 문을 닫습니다.

문이 닫히는 쿵 소리에, 깨닫습니다.

화장실 저편에는 어둠이 있고 침묵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의 세계입니다. 다시 문을 열고 화장실 바깥의 세계와 이어주지 않으면 멈춰있습니다. 마치,

멸망한 세계에 남아있는 극장, 그 극장의 영화, 그 영화에 페이드아웃된 장면, 그 장면에 스탑버튼이 눌러진 것처럼.


나는 겁이 납니다. 문득.

주저앉습니다. 털썩.

꿈에서 느꼈을 아득함이 가까워지는 것만 같기 때문입니다.

1분 후, 서둘러 일어나 옷을 챙겨 입고 바깥으로 나갑니다. 문이 닫힌 이후의 집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삶이 끝나버린 이후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무섭고, 무서우니까 살아갑니다. 어떻게든 살아갑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초단편소설] 자기 혐오에서 탈출하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