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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남 Oct 19. 2023

[초단편소설] 겸손은 힘들어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안 겸손입니다."

'안'에 악센트를 주지 않으려고 애썼으나, 실패다. 아이들은 이미 웃고 있다.

나도 모르게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른다. 교실은 웃음 바다, 그 다음 말을 이을 타이밍을 놓친다.

바로 옆 교탁에 있던 선생님도 웃었다, 보진 못했지만, 아마도.


오늘은 중학생으로 첫 등교한 날이다. 초등학생때와는 다르게 보내야지, 보내야지, 했는데, 시작부터 앞이 캄캄하다.

초등학교 때도 내내 이름때문에 놀림을 받았다.

'안겸손한 녀석''겸손이 그렇게 힘드니? 좀 겸손해져봐' 라든지, 몹시 심심한 날은 단체로 놀릴 때도 있었다.

'우리 반에서 제일 뻔뻔한 녀석이 누군지 알아?'

누군가 얘기하면, 일제히

'안겸손이지!'

30여명이 일제히, 안겸손이지, 라고 말할 때의 화음은 조화 그 자체였다. 평소에는 따로 놀던 녀석들이, 심지어 그 순간에 레슬링하고 있던 녀석들마저

화음을 내며 말할 때는, 더 이상 그  만하라고, 말하기 조차 민망했다.


이게 다 이름 때문이다. 초등학교 6년을 망친 이름, 안 겸손.

  그리고 이제, 중학생이 된 첫 날부터 내 앞을 가로막는다.

자기 소개가 끝나고, 선생님이 잠깐 나간 사이, 뒤에 앉은 녀석이 등을 쿡쿡 찔러대며, 말을 건다.

"너 이름 진짜 웃긴다. 겸손할라면, 끝까지 겸손하지. 왜 안 겸손한거야."

"진짜 이름 맞냐? 이름 누가 지은거야! 진짜 웃긴다"

"하하하. 호호호. 하하. 호호. 하. 호"


'휴...'


누가 지었겠나. 아버지가 지으셨지...

그래,  그러니까, 이게 다 아버지 때문이다.

아버지가 이름을 이렇게 짓지만 않았어도 지금 이 수모를 당하고 있지는 않을거다.


아버지는 한 마디로, 마을에서 가장, 아니, 옆 마을, 옆마을의 옆 마을까지 다 합쳐서 가장, 겸손한 사람이다.

지금도 40대치고는 젊어보이고, 키도 늘씬하니 크다. 그렇다고 마른 편이냐면, 듬직해 보인다. 마을 앞에 있는 500년 된 오동나무를 보고 있자면, 꼭 아버지를 보고 있는 것만 같다.

젊었을 적에는 그 정도가 더 대단해서 대단한 미남으로 옆 마을, 옆마을의 옆 마을 처녀들까지 온통 아버지 얘기 뿐이었다고 한다. 아버지가 한 번 장에 마실을 나가면, 아버지 보겠다고 모여드는 통에,

장사꾼들은 신이 나고, 그 처녀들 따라다니던 총각들은 성이 나고, 장에 팔려 나온 황소들은 뿔이 났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게다가 힘이 좋아서 옆 마을, 옆 마을의 옆 마을 장정들까지 다 모여서 씨름을 겨루어도 우리 아버지를 이기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1등 씨름꾼에게만 주는 황소를 아버지는 너댓번 받았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잘 생기고 훤칠한데다가 힘까지 좋은데, 겸손이야말로 삶의 가장 큰 미덕으로 믿고 사는 뚝심 있는 남자.

그게 우리 아버지였다.

얼마나 겸손했냐면, 좋다고 쫓아다닌 그 온동네 마을 처녀들을 다 내버려두고, 바로 옆 집 사는 우리 어무이와 결혼했으니, 말 다했다, 뭐.

그렇다고 우리 어머니가 못 생겼다는 뜻은 아니다. 대갓집 규수들도 많고, 배부른 집안 처자들도 많았는데, 초가집에서 겨우 살이하는 어머니와 결혼했으니, 대단하달까, 대담하달까 싶어서 하는 말이다.

힘 세다고 주변에서 아무리 칭찬해도, 잘 생겼다고 주변에서 아무리 치켜 세워도, 아버지는 그 큰 키를 굽히며, 아니라고, 자신은 별 대단한 사람은 아니라고, 두 손을 젓고, 또 저었다.

가끔은 머쓱한듯, 뒤통수를 쓱쓱 긁어대기도 했다.


그 아버지의 단 하나뿐인 아들, 그게 나다. 자신이 겸손하게 살았기 때문에, 이만큼 건강하게, 부끄럽지 않게 살 수 있었다고. 겸손해서 황소도 한 마리 있고, 아내도 있는거라며, 우리 아들도 겸손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겸손이라는 이름을 지었다.

좋은 아버지고, 좋은 의도다. 다만, 안 씨 아버지는 안 씨 아들에게 겸손이라는 이름을 붙였을 때, 어떤 일이 빚어질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아쉽고, 서운하고, 나쁘다, 진짜.


이름이 이렇다 보니, 뒷 자석에 앉은 덜 떨어진 두 놈 자식이 계속 펜으로 찔러대며, 시덥잖은 말을 해도 꾹꾹 눌러참는다.

겸손은 인내의 다른 이름이라고 아버지가 늘상 말씀하셨다. 지금, 안 겸손은 자신의 또 다른 이름, 안 인내를 생각한다. 참을 인을 새기고, 또 새긴다.

인내가 효과가 있었는지, 놀려대다 지쳤는지, 더 이상 펜으로 눌러대던 두 녀석을 제외하고, 오늘 나를 괴롭힌 녀석은 없었다.

하지만, 아직도 학교 나올 날은 많이 남았다. 그 많은 날 동안 '안 겸손'이라는 이름과는 한시도 떨어질 수 없다. 비극은 원래 쉽게 끝나지 않는 법이다.


잘 읽었어요. 발음이 좋네.

아니에요. 감사합니다.

역시 겸손이는 참 손하구나.


영어 시간. 그저 읽으라고 해서 읽었을 뿐인데, 칭찬을 하길래, 감사의 뜻을 표현한 것 뿐인데, 남들도 아마 비슷한 말을 했을텐데,

결국 이름갖고 노는걸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도덕 시간.

사람은 항상 겸손한 자세로 살아야해요. 그렇지? 겸손아.


종이 따르릉 울리고, 아이들은 꺄르르 웃어댄다.



학교에 다닌지 어느덧 몇 주가 흘렀다. 흐르는 동안 아이들은 서로 많이 친해졌고, 친해지면서, 격이 없어졌고, 격이 없어져서, 막 대하기 시작했다.

막 대하기 시작한 상승 효과로, 안 겸손의 운명은 겸손할 수 없는 레파토리로 흘러갔다. 겸손의 또 다른 이름 인내로 버텼지만, 가끔은 너무 화가 나서 얼굴이 울구락푸르락해졌다.

그러다 뒤에서 펜으로 찔러대며, 서로 친해진 녀석들과 싸웠다.

등 뒤에 점점이 박힌 펜 자국을 보고서 어머니가 전 날 어머니가 이게 뭐냐며 물으셨고, 그래서 신경이 쓰여 참을 수 없었다. 

쿡. 쿡쿡. 쿡쿡쿡쿡쿡쿡쿡쿡.

쉬는 시간 종이 울리자마자, 아무 말도 않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일어났다. 그리고 낄낄대고 있는 두 놈에게 말했다.

하지마.


벼엉신. 겸손하게 살아 임마. 꼽냐. 깝치지 말고 앉아 씨빨.


욕을 한다. 나는 조용히 녀석들의 책상을 잡는다. 그리고 뒷쪽으로 밀기 시작한다.

녀석들의 의자와 뒤쪽의 책상이 부딪혀 그 뒤의 책상을 밀고 그 뒤의 책상을 밀고, 밀려간다. 

만약, '그들'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초등학교 때와 별 다를게 없는 기승전결이 되었을 것이다.


이름하야, 그들은 소문으로만 듣던 '거리의 시인들'

언제부터 그들이 학교 후문 골목에 자리를 텄는지는 모른다. 언제부턴가, 후문쪽은 조심하라는 말이 돌았고, 곧 거리의 시인들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는 말이 돌았고,

그러다 몇몇 아이들이 거리의 시인들에게 얻어터져서 돌아왔다.


그러다보니, 아이들은 웬만해서는 후문으로 지나다니지 않으려 하였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지나가야 하는 아이들이 있었다.

철수, 영희, 순희, 민수, 영수를 비롯한 우리 마을 아이들. 옆 마을 아이들과 옆 마을의 옆 마을에 사는 아이들은 정문에서 버스를 타면, 집에 갈 수 있었지만,

우리 마을은 후문 쪽을 지나가야만 했다.

그래서 하루가 멀다하고, 희생자가 나올 수 밖에 없었다. 거리의 시인들의 소문은 점점 더 커지고, 그들은 하나의 학교 괴담이 되었다.

거리의 시인들의 '거'만 나와도, 부르르 거품을 무는 아이까지 있을 지경이었다.


다행히 나는 그 날까지는 안 걸렸으나, 영영 걸리지 않고, 넘어갈 수는 없었던지, 그들과 맞닥뜨리게 되었다.


야야야야, 너 이리와봐!

돈 있냐?


없어요.


너 까불래?

맞을래?


싫어요.


이미 앞에는 무릎끓고 손을 든 아이들이 대여섯명 일렬로 벽을 보고 서 있었다.

무슨 이십팔년 교무주임도 아니고, 정의봉 휘둘러댄 것도 아닌데, 나란히 벽을 보고 얌전히 앉아있는 아이들.

그 중에는 내 뒤에서 늘 찔러대던 나의 팬 아니고, 펜돌이 두 놈 있었다.

야, 너네 뭐해?


 겸손한 아이들. 이 세상이 참 겸손하지가 않다. 하지만 오늘 이 세상이 참 겸손하지 않았다. 거리의 시인들의 횡포. 모두 겸손하게 두 손 모으고.

괴롭힌 당하는 아이들이 눈 앞에 있는데, 지나쳐가고,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다.

너 이름이 뭐냐

안 겸손입니다.

대드는 줄 알았나보다. 다짜고짜 손을 쳐든다.

머리통이 먼저 날아간다. 거리의 시인들의 턱을 향해 날아간 나의 돌머리는 턱을 정확히 15도 비켜맞았다.

턱을 맞은 거리의 시인들은 뇌의 신경 조절 능력이 떨어져서, 하체 조절 능력을 잃고 주저 앉아버린다.

그리고 그 옆에 있던 거리의 시인 2에게도 또 한 번 점프를 뛰어 머리를 날린다.

겸손하게 주먹이 아니고, 머리를 날렸으나, 이번에는 머리가 정확히 콧대를 맞아, 코피를 터트린다.

거리의 시인들은 빙을 뜯다 말고, 주저 앉아, 엉엉 운다.


나는 영웅이 되었고, 아이들은 더 이상 놀려대지 않았다. 소문은 학교안에서 머물지 않고, 담장을 넘어, 우리 마을에 있던 아버지 귀에까지 들어갔다.


오동나무 밑에서 기다리고 앉아있던 아버지가, 대뜸 묻는다.

너 완전 장난 아니었다며. 못된 녀석들 혼내줬다며, 거지의 시인들인가 거시기 시인들인가 뭔가.

에이, 아무 것도 아니야.


이제서야 왜 아버지가 그토록 겸손하며 살았는지 알 것 같다.

겸손은 기분 좋다. 비실비실 웃음이 새나갈 것만 같다. 온몸이 간질간질 거린다.

스스로의 자랑스러움을 애써 감추며, 온 몸에서 비져나가는 것을 끌어안을 때의 그 간질거림은 황홀하기까지 하다.

이 기분 때문이었을까.


아버지가 우리 마을 뿐만 아니라, 옆 마을, 옆 마을의 옆마을까지 소문이 자자한 씨름꾼에, 미남인데도, 한사코, 자신은 별거 아니라고, 아니라고,

손은 저은 의미를 조금은 알 것만 같다.

어쩌면 젓고 저었던 그 손짓은 춤사위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덩실덩실 손을 저었던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나도 모르게, 아버지 앞에서 아버지를 따라, 덩실 덩실 손을 내저으며, 별 거 아니라고, 두번이고, 세번이고 말하고 만다.

비실비실 터져나올 것 같은 웃음을 간신히 참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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