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에서 배우는 삶의 팁
요새 달리기가 뜸했다. 일주일 정도 달리지 않았다.
바쁘기도 했고, 몸이 무겁다는 핑계도 있었다. 사실은 귀찮았다는 말이 더 솔직할 것 같다. 나가자고 마음먹는 것, 운동화 끈을 묶는 것, 집을 나서고, 발을 앞으로 내딛는 그 시작이 다 귀찮았다. 꾸준히 달리는 습관을 만들었다고 생각했는데, 멈추는 건 참 쉽다.
다시 달리는 것은 어렵지만, 늘 그렇듯 나는 다시 달릴 것이다. 왜냐하면 달리는 게 좋기 때문이다.
특히, 걷기에서 달리기로 바뀌는 순간이 좋다. 걷기에서 달리기로 바뀌는 순간, 0에서 1로 넘어가는 그 짧은 공백은 가장 높은 벽이지만, 동시에 가장 놀랍고 짜릿한 순간이다. 걸음이 뛰기로 바뀌는 순간, 세계가 달라진다. 풍경이 달라진다. 속도 때문만이 아니다. 내 몸속 리듬도 같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호흡은 가빠지고 심장은 쿵쿵 뛰기 시작한다. 그 리듬이 외부 세계와 맞물리면서, 마치 다른 차원으로 이동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달리기가 주는 보상은 기록이나 칼로리 소모 같은 숫자가 아니다. 가장 큰 보상은 멈춰 있던 세계에서 움직이는 세계로 넘어가는 짧은 전환의 감각. 그 순간의 감각 때문에 나는 달리기를 완전히 놓지 못한다. (비록 일주일 동안 쉬었지만, 그 감각의 매력이 있기 때문에 다시 달릴 수밖에 없다. )
또 달리기는 경쟁이 아니라서 좋다.
마라톤 대회를 나가면 1%의 수상을 노리는 선수급을 제외하면, 나머지 99%는 완주를 목표로 달린다. 누군가는 3시간, 누구는 6시간 만에 들어온다. 하지만 순위와 관계없다. 결승선을 통과하는 순간은 똑같이 소중하다. 끝까지 달렸다는 사실, 그것만이 중요하다.
인생도 그런 것 같다. 어떤 이는 빠른 속도로, 어떤 이는 천천히 자기만의 시간을 살아간다. 속도가 빠르다고, 느리다고 누가 상을 주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꾸준히 자신의 페이스대로 살아가는 것.
처음 꾸준히 달리자고 마음먹은 데에는 하루키의 영향이 크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전업작가로 살기로 결심했을 때부터 꾸준히 달렸다. 책상 앞에 앉아 오랜 시간 버티려면 체력이 필요하다는 게 그 이유였다. 집중이 흐트러지지 않게 잡아두려면 체력이 뒷받침돼야 하고, 그 체력을 길러주는 방법이 달리기라는 것이다. 나는 하루키처럼 소설가로 살고 있는 건 아니지만, 그의 말을 곱씹다 보면 이해가 간다. 버티는 힘은 결국 몸에서 나온다.
버티는 힘. 삶을 버티기 위해서도 체력이 필요하다.
살다 보면 자꾸 멈추고 싶을 때가 온다. 다른 사람의 속도가 눈에 밟히고, 나는 왜 이 정도밖에 못하나 싶은 순간, 그만둘까 싶은 순간도 많다. 그럴 때일수록 버텨야 한다. 지금은 의미 없어 보이는 단조로운 일상의 반복을 버티는 것. 달리기에서 왼발과 오른발의 반복되는 교차, 들숨과 날숨의 반복을 계속하는 것처럼. 버텨낸다는 것은 단조로운 반복을 이어가는 힘이니까. 속도는 중요하지 않다. 앞에 누가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계속 달리고 있다는 자체가 중요하다. 계속 살아가는 자체가 중요하다. 잘 버티고 있으면 잘 살고 있는 것이다.
달리기를 하다 보면 인생을 살아가는 팁 몇 가지를 자연스럽게 배운다. 속도를 욕심내지 말 것. 호흡을 잊지 말 것. 힘들 땐 비워낼 것. 남과 비교하지 말고, 내 몸과 발걸음에 집중할 것.
그리고 작은 순간에도 감사할 것. 왜냐하면 그 작은 순간들이 모여서 전체를 이루니까. 달리기는 두 발이 공중에 뜨는 아주 짧은 순간, 땅에서 벗어나는 0.2초 남짓, 그 순간이 이어져 전체의 달리기를 완성한다. 인생도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대단한 도약이 아니라, 짧고 작은 순간들이 이어져 긴 여정을 이룬다.
나는 아직 멀리 달리지 못한다. 몇 킬로미터를 뛰다 보면 숨이 차고, 종종 발걸음을 늦추기도 한다. 하지만 그때마다 다시 다짐한다. 오늘은 천천히 가자. 호흡을 놓치지 말자. 내 속도대로 가자. 그리고 살아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자.
달리기는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그저 몸으로 알려준다. 경쟁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완주가 목적이 아니라 달리는 행위 자체에 의미가 있다고. 인생도 다르지 않다고. 살아가는 것만으로 이미 충분하다고.
오늘은 러닝화를 꺼내 신고, 한강으로 향해야겠다. 귀찮다는 생각은 잠시 넣어두고, 달리는 하루키를 떠올리며, 골전도 이어폰으로 비틀즈의 페니레인을 들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