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형 인간으로 그만 살고 싶은
명사로 살고 싶지 않다. 제일 앞에서 주어가 되어 주인공인 척하지만, 명사는 주인공이 아니다. 그 자리는 재미없는 자리, 멈춰야 하는 자리, 숨을 죽이고, 다른 사람들이 뭐 하나 지켜봐야 하는 자리, 뒤로 물러나 뒷방 늙은이가 되는 자리다.
명사는 주어 자리가 아니더라도 목적어나 보어 자리에 있을 수도 있지만, 그 자리를 차지하는 순간 분위기가 싸늘해진다. 한참 신나게 떠들고, 흥겨운 와중에 "네. 삼각형 내각의 합은 180도입니다."라거나 "간장 공장 공장장은 강 공장장이고, 된장 공장 공장장은 장 공장장이다."라고 말하는 것만 같다. 명사는 늘 흥을 깬다. 안물안궁이거늘, 안 물어봤는데, 제 멋대로 지껄이고 정해버리는 것이다. 소시오패스 같은 답정너.
만약 명사가 그 자리에 없었다면, 좀 더 논의의 여지가 생길 것이다. 어떤 식으로 변해갈지 흥미진진할 것이다. 명사가 등장하기 전에는 가령,
어머니는 OO를 타고 있다. 와, 뭘 타고 있을까?
상상의 나래가 끝도 없이 펼쳐질 수 있다, 한도 없는 블랙카드처럼.
말을 타고 있을 수도 있고, 비행기를 타고 있을 수도 있고, 어쩌면 람보르기니 에고이스타를,
정말 어쩌면 스타워즈의 데스 스타에 타고 있을 수도 있다.
동사는 상상이다. 명사가 나타나지 않는 한 그 문은 닫히지 않는다. 하루 종일도 이어질 수 있다. 수많은 가능성. 그러니까,
동사야말로 문장의 주인이다. 하나의 문장을 세상이라고 한다면, 나는 허울뿐인 명사이기보다 수많은 가능성, 무한의 우주를 그리는 동사가 되고 싶다.
펄떡펄떡 살아 숨 쉬는 동사.
살아 있다. 숨 쉰다. 듣는다. 본다. 맡는다. 느낀다. 움직인다. 걷는다. 뛴다. 달린다. 탄다. 받는다. 던진다. 좋아한다. 사랑한다.
나의 삶을 채우는 명사들.
OO 중학교, OO 고등학교, OO 대학교 출신. OO 전공, 서울, OO 회사, 직책 등등.
이력서에나 들어가면 좋을 재미없는 것들. 그 명사들은 나를 열심히 설명하고 있지만, 그 어떤 것도 내가 정확히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지 못한다. 그 명사들 속에서 정형화된 어떤 캐릭터를 떠올릴 수 있지만, 그것은 내가 아니다.
나는 오히려, 넘어졌지만, 일어났고, 웃고 있지만, 울기도 하고, 읽고, 쓰고, 달리면서 가끔 여행하는 사람이다,라고 말하는 편이 어떻게 넘어졌고 일어났는지 모르지만, 언제 웃고, 어디서 울었는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더 살아 있는 인간 같아서, 누군가가 나를 소개한다면, 나를 동사로 소개해 줬으면, 혹은 묘비명에.
동사는 언젠가 동사할 것이다.
봄이 오듯, 여름이 오듯, 가을이 오듯, 겨울이 반드시 올 것이고,
겨울이 오면, 살아 숨 쉬는 동사들도 얼어 죽어야 한다, 그때가 올 때까지는.
동사가 동사(冬死)할 때까지는,
노량진 수산시장 5kg 광어처럼 온몸으로 펄떡펄떡, 지느러미를 흔들어대면서 '동사'로서 살고 싶다.
OO회사 OO팀 팀장이 아니라,
읽고 쓰고 달리는 내가 되고 싶다.
명사형 인간이 아니라, 동사형 인간으로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