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는 소설책을 왜 훔쳤을까?
"누군가 내 책을 사주는 게 베스트!
하지만 아무도 사지 않는다면..."
“손님, 죄송한데, 잠시 저 좀 볼 수 있을까요?”
한가로운 오후의 서울 시내 대형 서점. 평일이어서 한산하다. 거기엔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이야기가 있다. 바닥에 철퍼덕 앉아 미간을 찌푸리며 골몰하는, 넥타이 양복 차림 중년 아저씨부터, 유모차를 끌고 온 주부까지. 가만히 앉아서 책을 읽는 사람도 있고, 백화점 아이쇼핑하듯, 장르를 가리지 않고, 소설 구역에서 사회 구역으로, 취미 실용 구역으로 서점의 모든 구역을 밟겠다는 듯이 빠르게 지나다니는 사람도 있었다.
서점에서 일한다고 하면, 한가하겠거니,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나름 여러 고충이 있는 일이다. 잘못 꽂혀 있는 책을 다시 제자리에 꽂아야 하고, 새로 입고된 책을 수레에 싣고 다니면서 자리를 찾아줘야 한다. 그리고 손님들의 질문에 응대해야 하고. 컴퓨터도 다룰 줄 알아야 한다. 전용 시스템에 들어가서, 재고를 입력해야 하고, 맞는지 확인해야 한다. 하루 종일 책과 가까이 있지만, 정작 읽을 시간은 없다.
평일이라고 일은 많다. 다만, 서점 풍경만은 한가로워서, 목장의 소가 중앙을 가로지르며 느릿느릿 걸어가다 넘어진다고 해도, 아, 소가 넘어가는구나, 하고 하품이 나올 것만 같은 풍경.
그렇기에 너무나 잘 보였다. 검은색 뿔테 안경을 쓴 아저씨가 아까부터 소설 코너 a1열 쪽에서 서성이고, 두리번거리는 모습이. 그 모습이 하도 수상해서 눈여겨보고 있었다. 역시나 다를까, 집고 있던 책을 갖고, 수그리더니, 백팩 안에 넣는다.
잡았다, 요놈.
뻔히 도둑질한 현행범이라도 요절을 낼 순 없다. 우리 서점에는 5대 원칙이 있기 때문이다.
모든 고객에게 친절하고, 초등학생에게도 반드시 존댓말을 쓸 것.
책을 한 곳에서 오래 서서 읽는 것을 절대 말리지 말 것.
책을 이것저것 빼보기만 하고 사지 않더라도 눈총 주지 말 것.
책을 앉아서 노트에서 베끼더라도 그냥 둘 것.
책을 훔쳐 가더라도 도둑 취급하며 절대 망신 주지 말고, 남의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데려가 좋은 말로 타이를 것.
저 다섯 번째 원칙이 있으니. 완곡히 돌려서 잠시 볼 수 있냐고 물은 것이다.
마흔 살은 훨씬 넘어 보였다. 하얗게 샌 머리가 재처럼 쌓였다. 다 타고 남은 담뱃재 같은. 수염은 안 깎은 지 한참 돼 보였다. 산적처럼 턱이며, 코 밑이며, 볼이며 할 것 없이 잔뜩 성이 난 까만 털들이 뻗어 있었다. 털들 사이에도 하얗게 샌 털들이 섞여 있었다. 완전히 늙지는 않은, 그렇다고 젊지도 않은, 중년의 사내.
“무슨 일입니까? 어딜 따라오라는 말이에요?”
사내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스스로 동요를 최대한 자제하려고 하는 듯했지만,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본인은 잘 모르겠지만, 얼굴도 빨개졌다. 많이 당황한 모양이다.
“저쪽으로 가서 말씀드릴게요. 다 봤습니다. 여기는 사람도 많으니. 잠시만 시간 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처음에는 미소를 띠며 대했지만, 단호하게 얘기했다. 여기서는 강경한 어조로 얘기해야 한다. 그래야 별말 없이, 따라올 테니까.
그냥 보내줄 순 없었다. 책값이 얼마라고, 난리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가만히 내버려 둘 순 없었다. 지적 재산권을 해치는 일이다. 작가는 밤낮없이 갖은 머리를 써서 한 권의 책을 써낼 텐데, 그 노력과 시간을, 만원이 조금 넘는 돈에 볼 수 있는 것만 해도 저렴하다고 생각하는데, 그 돈이 아까워 책을 훔치다니.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다. 특히 소설책을 훔쳤다면 더더욱.
왜냐하면 나는 서점 직원이자, 소설가 지망생이니까.
언젠가 나도 소설을 써서 책으로 나오면 이 큰 서점 어느 한 구석에도 꽂힐 테니까. 서점 직원이 쓴 소설. 사람들은 주목할 테고, 이 주의 베스트셀러, 더 나아가 이 달의 베스트, 올해의 베스트까지.
분명 그런 날이 올 것이다, 비록 최근 몇 년은 일하느라, 정작 생각만 하고, 쓰지는 못하고 있지만. 쓰기만 하면 분명 그리 될 것이다.
소설가 헤르만 헤세도 서점 직원이었다. 나도 서점 직원이다. 그러니까 나도 언젠가 헤르만 헤세처럼 훌륭한 소설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책이 이렇게나 가까워도 한 줄 읽지 못하지만. 일하다 집에 가면 뻗어서 한 줄 쓰기도 힘들지만.
중년 사내는 어깨를 늘어뜨리고, 주눅 든 듯, 고개를 푹 숙이고, 따라왔다. 직원용 비상구 쪽으로 가서 사내를 돌아보았다.
“제가 무슨 말씀하실지 아시죠?”
“네. 죄송합니다.”
“나이도 있으신 분이, 뭐 하시는 거예요. 책 도둑도 도둑질입니다.”
사내는 백팩에서 책을 꺼냈다.
“여기 있습니다.”
책을 돌려받으며, 상태 확인을 위해 휘리릭 넘겨봤다. 넘기다가 작가 프로필을 발견했는데, 작가는 검정 뿔테를 쓰고 있었다. 산적처럼 수염이 뻗어 있었다. 이 사내처럼.
책에 있는 사진과 비교하며 어리둥절하자, 사내는 그제야 고개를 들며 말했다.
“내가 이 책의 작가입니다."
뭐라 말해야 할지 몰라, 어항에서 끄집어낸 금붕어처럼 입만 뻐끔거렸다. 사내가 말을 이었다.
“책이 안 팔려서요. 너무 책을 안 팔려서 차라리 훔쳤습니다. 이거 한 권 팔리면, 천오백 원입니다. 한 권 훔치면 천오백 원씩 버는 셈이죠. 아르바이트한다는 생각으로... 죄송합니다.”
사내는 허리를 숙이고, 한참이나 머물렀다.
차라리 아르바이트를 하시는 게 낫겠어요. 이거 훔쳐서 언제 돈 벌어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오지랖이라는 생각에 입을 다물었다.
“책은 가져갈게요. 제 일은 책을 관리하는 일이니까요. 따로 신고하거나 하지는 않을 거예요. 앞으론 이러지 마세요.”
사내, 아니 소설가는 연거푸 고맙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다시 원래 자리에 꽂아 넣기 전에 책을 조회했다. 지난 한 달간 이 책은 한 권도 팔리지 않았다. 처음 입고된 그대로였다. 중년 소설가의 모습이 내 미래의 모습과 겹쳐지는 듯해 씁쓸했다. 나중에 소설을 썼는데, 한 권도 팔리지 않으면 어떡하지, 저 아저씨처럼 훔치기라도 해야 하나.
바코드 기를 들어 책을 찍고, 카드 결제기에 체크카드를 넣었다. 컴퓨터 화면에 판매량이 '0'에서 '1'로 바뀌었다. 드디어 한 권 팔렸다. 인세 1500원이 추가되었다. 기쁠까. 아저씨는 나에게 허리 숙여 인사할지도 모르겠다. 허리 숙여 인사하는 아저씨의 얼굴을 떠올리며, 아마도 읽지 않을 책을 가방에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