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더 똠양꿍

십 년 전 우리 어머니가 먹었던 그 똠양꿍 이야기

by 순남

십여 년 전 우리는 태국 치앙마이에 갔다. 그때 어머니는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했다. 홀로 여동생과 내 뒷바라지하느라, 해외는 물론 국내 여행도 해본 적이 없었다. 덩치가 산만한 코끼리 등에도 올라타고, 하늘에 닿을 듯 솟아오른 황금빛 탑이 있는 사원에도 갔다. 같이 패키지여행 오신 분들은 하루 종일 돌아다녀서 힘들어하고, 이국의 낯선 음식들 때문에 제대로 먹지를 못했는데, 어머니는 현지인처럼 유난히 잘 드셨다.


활기가 넘치고, 잘 웃고, 잘 먹었다. 알에서 깨 처음 세상을 접한 병아리처럼 호기심에 가득 찼다. 청각 장애가 있어 한국인과도 소통이 어려운 어머니는 태국인들이 말을 하면, 그들의 말을 알아듣는 것처럼, 웃으며 나름대로 화답하셨다. 심지어 코끼리나 원숭이 말도 알아듣는 듯, 코끼리야, 원숭이야, 내가 왔단다, 하고 노래 부르듯, 말을 걸었다. 그때 어머니는 그 어느 때보다 살아 있었다.


요새 어머니가 자주 말씀하신다. "치앙마이에서 먹었던 똠..머시기 한 번 더 먹고 싶다. “

"아 똠양꿍. 그래요, 꼭 다시 먹어요." 웃으며 답을 하지만 속은 조금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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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그때 우리는 젊었고, 자유로웠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목디스크 수술을 받았고, 일흔에 가깝다. 나는 더 이상 가벼운 배낭 하나로 떠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가볍다고 하기에 철없이 불어난 몸은 너무 무겁고, 또 이제는 다른 가족이 생겨 내 마음대로 쉽게 움직일 수 없다. 동생은 경제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은 그렇기 때문에 여행 준비를 시작했다. 어머니의 여권을 새로 만들었다. 비행기표를 알아보고, 숙소 예약 사이트에서 검색하기 시작했다. 여행은 그런 것이니까. 언젠가는 출발선에 선다. 일단 준비를 시작하는 거다. 마치 오래 미뤄둔 약속을 지키듯이.


어머니는 목디스크 수술 때문에 퇴직하였고, 동생도 요양 중. 게다가 나도 회사 사정이 어려워져 그만둘 처지. 평소라면 불행하다고 생각할 만 하지만, 달리 보면, 오히려 이번이 기회라는 생각도 들었다. 여행을 가는 데 제일 어려운 게 스케줄 맞추는 건데, 일부러 어렵게 스케줄을 조정하지 않아도 된다. 왜냐하면, 어머니도, 나도, 여동생도 백수니까. 돈이 없는 대신, 우리에겐 시간이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힘든 상황이 가장 쉬운 길을 열어주었다.


치앙마이의 어느 밤을 나는 떠올린다. 어느 저녁, 패키지여행 중간에 자유 시간이 주어졌고, 우리만의 시간을 보냈다. 태국은 동남아라서 추울 거란 생각은 전혀 하질 못했다. 반팔티만 입고 갔는데, 치앙마이는 저녁엔 좁쌀 같은 닭살이 돋을 만큼 쌀쌀했다. 추위에 떨다 우리 가족은 작은 노천 식당에 들어갔고, 뜨거운 똠얌꿍을 먹었다. 국물은 매웠고, 혀는 얼얼했다. 익숙하지 않은 이국의 맛이었다. 하지만 추웠으니까, 그 따뜻함 때문에, 후루룩 마실 수 있었다. 어머니가 먹고 싶다던 그 맛, 나도 떠오른다. 그날 꼭 다시 모시고 오겠다던 약속을 떠올린다.


삶은 늘 같은 자리에 있지 않다. 어머니는 나이가 드셨고, 나는 더 무거워졌다.(백 킬로.. 소리 질러! 꺄아악) 그러나 음식의 기억은 묘하게 시간을 붙잡는다. 치앙마이의 이국적인 매운 국물, 새콤한 망고, 길거리에서 산 코코넛 주스. 그것들은 그대로 남아 있다. 시계를 되감아, 지나간 웃음을 되살리고, 약속을 다시 불러낸다.

다시 치앙마이로 간다고 해도 그 여행이 곧 과거로의 회귀는 아닐 것이다. 어머니는 예전처럼 빨리 걷지 못할 것이고, 동생은 여전히 회복 중일 것이다. 나도 더 이상 가뿐하게 움직이지 못할 것이다.(다시 소리 질러! 백 킬로 꺄아악) 하지만 괜찮다. 여행은 완벽할 필요가 없다. 중요한 건 우리가 같은 식탁에 앉는다는 사실이니까. 같은 음식을 나눠 먹으며 같은 추억을 만드는 거니까.


치앙마이의 작은 식탁 위에 다시 둘러앉는 상상을 해본다. 어머니가 국물을 떠서 동생의 그릇에 덜어주고, 나는 그 장면을 바라본다. 맵고 따뜻한 국물이 다시 우리를 묶어주고, 가족이라는 울타리 아래 지금의 힘든 시간도 다 녹여주는, 상상 혹은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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