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에세이 <뭐가 될 줄 알고 > 수록 내용
매끈하고 고운 흙바닥을 보고 흥분해 본 적 있는가? 혹은 좋아해 본 적 있는가?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나는 그런 땅바닥을 좋아했다. 그때는 땅에 그림이나 선을 그리며 노는 놀이가 많았다. 바닥상태에 따라 놀이의 재미 또한 달라지기도 했다. 땅바닥이 필요한 놀이로는 땅따먹기, 오징어 놀이(넷플릭스 드라마‘오징어 게임’과는 다름), 사방치기, 비석 놀이 등이 있었다.
고운 흙으로 된 땅은 특히 ‘가게 놀이’에 안성맞춤이었다. 그런 장소를 발견하게 되면 무슨 보물이라도 발견한 것처럼 기뻤다. 가게 놀이는 돈이 빠질 수 없는 돈놀이? 라고 해도 될 것이다. 먼저 신문이나 빳빳한 종이를 접어 튼튼하게 지갑을 만들고, 다 쓴 공책이나 얇은 종이로 돈 모양으로 잘라서 지폐, 동전을 만든다. 그런 다음 본인이 하고 싶은 가게를 정하고 판매할 물건들을 바닥에 그리면 누구나 가게주인이 된다. 보통은 음식점, 과일가게, 빵 가게, 옷가게, 문방구 등이었다. 그 시절의 물건들은 지금보다 다양하지 못했기에 우리가 땅바닥에 그릴 수 있는 가게도 그리 많지 않았다. 무엇을 팔지가 결정되면 건물의 인테리어와 파는 물건을 자기 마음대로 그리면 된다. 이렇게 창업이 쉬울 수가!!
자신의 가게가 어느 정도 준비되고 나면 지갑을 들고 쇼핑을 나선다. 다른 가게를 빙~ 둘러본 후 맘에 드는 상품을 구매하는데, 땅바닥에 그려진 상품을 종이돈으로 지불하고 가져온다. 가져온다는 것은 그 가게 진열장의 상품을 손바닥으로 쓰윽~ 지우는 방식이다. 미처 준비하지 못한 상품도 손님이 요구하면 빛의 속도로 그려지기도 한다. 깨끗한 땅바닥이 디테일을 살릴 수 있는 최고의 캔버스가 되는 것이다. 지금도 그 가게들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요즘 아이들은 일제 강점기도 아니었는데 땅에 그림을 그리고 놀았냐고 의아해할지도 모른다. 아스팔트가 깔린 도시에서 자란 친구도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일 것 같다.
어렸을 적 내가 살던 곳에는 미술 학원이 없었다. 학원이라는 단어조차 들어보지 못했다. 요즘엔 미취학어린이부터 초등생 대부분이 다니는 곳이 미술 학원이다. 그런 곳이 있는 줄 알았다면 가고 싶다고 부모님을 졸랐을 것 같기도 하다. 미술 학원 문턱도 넘어보지 못했지만, 그림에 소질은 있었는지 학교에서 가끔 상도 받았고, 친구들에게 공주 그림도 꽤 그려줬던 기억이 있다. 그만큼 그림 그리며 노는 시간이 많았었다. 가위로 오리는 종이 인형도 직접 그리고 만들었다. 돌이켜보면 사기가 힘들어서였을 것이다. 종이 인형이 종이옷을 입을 수 있도록 어깨 위 볼록한 어깨걸이까지 만들어주는 것은 기본이다. 공주 드레스를 많이 그렸었다. 화려한 색깔과 봉긋 솟은 어깨와 소매, 맨날 파티만 하고 사는 인형이었다. 친구들이 부탁하면 서슴없이 그려주며 시골에서 그림 좀 그리는 아이로 살았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그림과 가까이 있고 싶어 특별활동을 미술부로 선택했다. 그 당시 미술부에는 나와 몇몇 학생을 제외하고는 미술대학에 진학할 학생들이 많았다. 어릴 때부터 꾸준히 배워서 잘 그리는 학생들이었다. 그 덕분에, 그림을 잘 그리지는 못했지만 보는 눈은 높아졌다. 고등학교 졸업 후로 별다른 미술 공부는 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그림에 대한 애정과 관심은 잃지 않으려 노력하며 살았다.
그림 실력이 발휘되기 시작한 것은 엄마가 되면서부터이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이때의 대부분 엄마는 그림 실력과는 상관없이 화가가 되기도 한다. 아이가 놀다가 갑작스레 물고기가 보고 싶다고 하면 물고기를, 공룡이 보고 싶다고 하면 공룡을 그려주었다. 그러면 이내 아이의 칭찬이 되돌아왔다. 아이의 눈에 그 어떤 그림이나 사진보다 엄마의 그림이 최고로 보였을 것이다.
아이는 엄지 척을 날려준다.
나는 아이의 칭찬을 받고 싶어서 더 잘 그리려 노력했다.
당연히 사진보다 못 그린 것이 팩트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나만의 시간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 귀한 시간에 예쁜 글씨 POP를 배우고, 수채화, 데생, 캘리그래피를 틈틈이 배우러 다녔다. 지금까지는 배울 기회가 없어서 가슴 한구석에 묻어만 두었던 로망이 다시 깨어나는 시기였다.
비록 유명 화가의 작품은 가질 수 없지만 내가 그린 그림은 맘껏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40호(100.0cm X 80.3cm)이상 크기의 작품을 거실 벽에 걸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꼭 잘 그린 유화 작품으로 한정 짓는 것은 아니다. 연필 스케치만 해도 좋고, 종이를 뜯어 붙이는 콜라주가 될 수도 있고, 크레파스로 가볍게 쓱쓱 그려 마치 유치원생 수준의 그림이어도 상관없겠다. 완벽한 것만이 잘 그린 그림으로 해석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려는 것이다. 다른 누군가가 아닌 내가 만족할 수 있는 작품이라면 그것만으로 족하다.
나는 나의 그림 실력을 가장 과소평가하는 주체이다. 성격 탓도 있겠지만 실제로 부족한 점이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는 내가 나를 격려해주려고 한다. 잘 그리고 싶다는 욕심만 가지고선 좋은 그림을 완성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잘 그려야 한다는 부담도 마찬가지이다. 해결책으로 새롭게 시도해 보는 것들이 있다.
‘이다<2da>’작가(화가,일러스트레이터)의 자연 관찰일기에서 힌트를 얻어서 시작하게 된 작은 그림 (3X4cm, 그날그날의 단상)과 간단하게 끄적거리는 그림을 ‘부끄러움 타파프로젝트’라는 해시태그로 인스타그램에 게시하는 일이다.
(인스타그램:@soonny_drawing)
작은 그림이지만 매일 쉬지 않고 그리려는 나만의 의지이며 장치이다. 그래야 훗날 우리 집 거실벽에 걸릴 40호 그림의 화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를 보기 위해 많은 인파 속에서 앵글을 맞추며 셀카를 연신 찍어본 적이 있다.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내 그림을 많은 이가 좋아해 주길 욕심내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팔리는 화가이기 이전에 그림에 대한 갈증을 조금이나마 해결하고 싶은 욕심 없는 화가 지망생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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