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담쟁이캘리 Feb 08. 2021

브런치 홈에 없는 것

시가 없는 풍경


  브런치 홈에는 시가 없다.


나는 장르를 편식하지 않고 모든 글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브런치에서 글을 읽다 보면 '에세이만 편식'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브런치 작가가 된 지 고작 6개월 남짓, 간혹 '나의 관심작가들이 사랑한 글'을 통해 시를 접한 것을 제외하면 지금껏 브런치 홈에서 시를 본 적 없다. 


아마도 시가 대중적이지 않고, 어렵다는 편견이 있기 때문일 거라고 짐작해보기도 했다. 그 이유로 내가 발행하는 시 매거진 '마음에도 띄어쓰기가 필요해'에도 끝머리에 해석을 돕거나 시와 어울리는 짤막한 글귀와 캘리그래피를 엮어서 글을 썼다.


처음에는 키워드를 '시'로 두었지만 조회수가 에세이를 쓸 때보다 현저하게 낮아 '일상'이라는 키워드를 붙여야 그나마 사람들에게 읽혔다. 그만큼 시를 찾는 사람이 적고 브런치도 시를 밀어주지 않는 듯했다. 그래서 에세이 매거진을 같이 연재했다. 내가 좋아하는 시의 매력을 조금이나마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데, 브런치는 에세이를 위주로 홍보해 주는 듯하다.


브런치 나우에도 시 카테고리가 없어서 '감성 에세이' 탭에서 더부살이 중이다. 아무리 새로고침 해 봐도 온통 에세이뿐이다. 마치 시는 에세이가 모인 집에 시가 얹혀사는 기분이다. 글에도 주류와 비주류가 있나. 이런 생각을 하다 문득 문예창작학 과에 다니던 대학시절이 떠올랐다. 우리 학교 교수진 모두 현역에서 활동 중인 작가들이었는데, 그중 딱 한 분만 시인이었다.





  시인은 여느 글 짓는 사람들과 호칭부터 다르다.

  

소설가, 동화작가, 비평가, 드라마 작가처럼 '-가(家)'로 불리지 않고 '-인(人)'의 호칭을 쓴다. 자연이나 삶에 대한 느낌이나 생각을 함축적이고 윤율적인 언어로 표현하는 것. 그것이 시인데 그 뒤에 '사람 인(人)'자를 붙여 시인이라 표현한다니. 삶 자체가 시라는 것 같기도 하고 시인은 직업이 아닌 삶으로 말하는 예술가라는 생각이 들어서 좋았다.

찰나의 예민한 시선을 담은 문학이랄까. 쓸만한 거리를 찾기 위해서는 늘 살아 있어야 했으므로 생명이 깃든 모든 것들을 소중하게 바라봤다. 그중에서도 그가 사랑했던 가장 사랑했던 것은 꽃이었다. 평소에는 잔잔한 호수 같은 성정이었지만, 꺾어버린 꽃이나 밑동이 잘려나간 꽃을 보면 '그 어떤 생(生)도 함부로 꺾거나 자르면 안 되는 일'이라며 불같이 화를 냈다. 그에게는 꽃도 사람 못지않게 숨이 붙은 존재였다. 그래서일까. 그는 시가 순수문학이라고 불리는 것을 좋아했다.


  당시 대학에서도 순수문학은 비주류처럼 읽혔다.

드라마나 시나리오를 전공하고 싶다는 학생은 정원을 웃돌만큼 많았지만, 시를 전공하고 싶어 하는 이들은 적었다. 순수문학은 배 고프다는 인식이 강했고, 좋아하는 글쓰기를 지속적으로 영위하기 위해서는 영상이 매개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이러한 기피현상 때문에, 학교 커리큘럼에도 시 수업은 '전공 선택'이 아닌 '전공 필수과목'이었다.


브런치에서도 시를 쉽게 볼 수 없는 풍경을 보니 글의 장르를 두고 주류와 비주류를 나누던 그때가 떠오른다. 설혹 문학에 주류와 비주류가 있다고 한들,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다고 말하는 브런치에서도 이런 풍경을 보려니 마음이 헛헛하다.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중략)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 정호승, <수선화에게> 중에서 일부 발췌



위 시는 내가 열네 살 무렵, 생애 처음 암송했던 작품이다. 시처럼 작품 전체를 암송할 수 있는 문학이 또 있을까. 짧은 운율적인 언어 속에 담긴 통찰이 좋다. 모두가 외로운 것은 당연하다고 하지 않고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라고 표현하는 시구가 좋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라고 말하는 시의 울림이 좋다.





  내가 발행한 글의 대부분은 시와 캘리그래피가 함께 실려있다.

한창 사춘기를 겪으며 고독 속에 내던져졌을 때, 시가 위로가 되었던 것처럼 다른 이에게도 내 글이 위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시가 어렵다는 편견을 깨고 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다.


  시는 비주류의 문학이 아닌 '발견의 즐거움'이다.


백 마디 말보다 한 마디 진심이 큰 힘이 될 때가 있다. 시는 말수 적은 친구가 던지는 묵직한 한 마디와 같다. 힘들게 검색하지 않고도 시를 읽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에세이만 편식하는 듯한 풍경 말고, 다양한 장르의 글이 브런치 홈을 채웠으면 좋겠다.

'글이 작품이 되는 공간'이라는 슬로건을 쓰는 브런치는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작가(作家)의 접미사는 '-가(家)'로 집을 뜻한다. 집 짓는 것이 작가의 일이라면 시인(詩人)을 꿈꾸는 다양한 사람들도 마음 편히 들어가 살 집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談담쟁이캘리

: 이야기하는 글쟁이입니다.

무심코 지나치는 찰나,
별 것 아닌 일상이 별 것이 되는 순간을
에세이와 시로 기록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행복을 저축하지 않기로 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