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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쟁이캘리 Feb 10. 2021

지금은 재미있는 게 글쓰기밖에 없어서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쓰는 이유


  대학을 갓 졸업했을 무렵, 나의 꿈은 시나리오 작가였다. 교수님들이 입버릇처럼 말하던 '글은 엉덩이로 쓰는 것'이라는 말을 부적처럼 새겨 가며 끼니를 챙기는 것도 잊은 채 하루  열 시간씩 글을 썼다. 작가는 배고픈 직업이라 행여 꿈을 이룬다 해도 굶고 살 수 있으니 사무직 면접이라도 보라던 엄마, 아빠의 만류에 딱 일 년 간의 유예 기간을 벌었다. '아직은 내가 죽을 만큼 해 본 경험이 없으니 남은 시간 동안 죽을 만큼 해 보고  후에 직장인이 되겠다'는 말로 시간을 다.

일 년의 시간 동안 시나리오를 쓰다가 실패하더라도 스물네다섯 즈음일 테니 되돌리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렇게 아무도 반기지 않는 글쓰기를 하겠다고 미친 듯이 썼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내 눈에는 온 천지가 글감 투성이었다. 드라마를 볼 때도 영화, 뉴스 그리고 예능을 볼 때도 게스트가 무심코 던진 말 하나하나가 고스란히 내 핸드폰 메모장에 적혔다. 그것도 처음에는 수첩을 들고 다니며 손글씨로 적었는데, 스치듯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 펜을 꺼내 적으려는 찰나에 잊히고 마는 습성 때문에 핸드폰에 적는 게 버릇이 됐다. 심지어 잠자리에 다가도, 갑자기 떠오른 아이디어를 핸드폰에 모두 받아 적을 때까지 잊을까 봐 몇 번씩 습관처럼 되뇌었다.


  그렇게 쓴 시나리오를 무려 열세 번의 퇴고 끝에 전공 교수님께 보냈다. 지금 그때의 글을 읽어 보면 사회생활도 제대로 해 보지 못한 풋내기의 글에 불과하지만, 당시에는 그 누구보다 절실하고 간절했던 마음이 고스란히 담긴 '시간의 결과물'이었다. 그래서 의 피드백이 유난히 중요했다. 당시에는 스마트폰을 쓰기 전이라, 교수님이 언제 내 메시지를 확인하고 답을 줄지 가늠할 수 없었다. 초조한 마음으로 방 한가운데 서서 벌서듯이 답장을 기다렸다.


내 방 한쪽 벽에는 전지 한 장이 붙어 있었다. 위에는 백 개의 포스트잇을 다닥다닥 붙여 씬별로 기승전결 흐름이 잘 이어지는지, 어디 튀거나 어색한 부분은 없는지 몇 번이고 훑었다. 그때는 온종일 시나리오만 생각했다. 엉덩이로 쓰는 것뿐만 아니라 머릿속은 온통 시나리오로 가득했다. 





'지금 이슬이가 제일 열심히 하고 있어. 그래도 좀 더 열심히 해야 해. 선생님은 아침 9시부터 카페에 와서 밤 8시까지 앉아서 시나리오만 썼다. 이렇게 할 자신이 없으면 못 하는 게 이 일이야. 조금만 더 열심히 하자. 그래서 꼭 성공하자.'


오랜 기다림 끝에 장문의 메시지가 왔다. 그 자리에서 소리 내 몇 번이고 읽었다. 그러다 메모지에 그대로 받아 적어 내 방 벽에 붙여 두었다. 그 후로도 '엉덩이'로 쓰는 글은 계속되었다. 친오빠에게 '네 글 진짜 재밌다. 앉은자리에서 순식간에 다 읽었어.'라는 칭찬도 들었지만, 주어진 일 년의 유예기간 동안 그 어떤 것도 이루지 못한 채 취직을 준비해야 했다.


  제일 열심히 하는 것은 나였지만 정작 선택을 다른 사람이 받았다. 그녀는 국어국문학을 전공했는데 졸업반이라 학점이 부족해 수강인원의 여유가 있는 '드라마 창작' 수업을 듣게 된 학생이었다. 실습수업은 처음이라 수강 취소를 하려 했으나, 본연의 게으른 성격 탓에 시기를 놓쳐 듣는 것이라고 했다. 말로는 어쩔 수 없다고 했지만, 그녀가 내놓는 아이디어들은 아주 번뜩이는 것이었다.

"오죽하면 내가 소고기까지 사 먹이면서 써 보라고 했잖아. 아이디어가 정말 남달라."

우연히 교수님을 통해 그녀의 소식을 들었는데, 듣자마자 배가 아플 정도였다. 글은 엉덩이로 쓰는 것이라더니. 1%의 영감과 99%의 노력이라더니. 그 1%의 어떤 것이 나머지 99%를 뒤집어버릴 정도의 반전이라고 말하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다. 더구나 정말 게으른 탓에 열심히 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도 내놓는 아이디어들이 좋아서 작가가 아니라도, 다른 어떤 일이든 맡길 듯했다.

순식간에 땀 흘려 노력했던 시간이 물거품이 된  같았다. 결국 나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 꿈을 뒤로하고 직장인이 되었다.





"무작정 열심히 하던 것이 미덕이던 시대는 지났어. 이제는 열심히만 하면 안 돼. 잘해야 돼."

얼마 전, 회사에서 2020년 수립해 두었던 KPI 지표에 대한 결과 점수를 작성했다. 한 해 동안 얼마나 잘했는지 수치화해서 점수를 기록하는 것인데, 총 7점 만점에 최하 커트라인이 55~65점으로 1점, 10점 단위로 점수를 매겨 115~125점이 7점이 만점이었다. 중에서 몇 가지 항목은 백 프로 목표 달성했지만, 정작 점수는 5점에 불과했다.

  말도 안 돼, 목표를 달성해도 점이 아니라니.

허탈한 마음이 들 때 즈음, 시나리오 작가를 지망하던 그 시절이 떠올랐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정작 좋은 점수는 다른 사람이 받았을 때. 나는 말로만 격려를, 특출 난 누군가는 소고기까지 먹으며 격려받았던 그때가 떠올랐다. '세상은 무엇으로든 줄 세우는구나'라는 생각에, 목표를 달성하고도 허탈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그 후 얼마 뒤 주말, 우연히 인디페이스에 가서 <오늘, 우리 2>라는 단편 영화를 봤다. 총 네 편의 서로 다른 단편을 묶은 영화인데,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나처럼 평범했다. 성별을 바꾸고 상황만 바꾸면 내가 주인공이 되어도 손색없을 것 같은 보통의 삶을 무대로 하고 있었다.

오히려 하나도 특별하지 않고 평범해서 보는 내내 마음에 위로가 되었다. 캄캄하던 영화관에 불이 켜지고 GV를 위해 무대 위에 배우와 감독들이 자기 의자를 가지고 나와 앉을 때까지. 평범한 삶을 연기한 배우들마저도 친근한 표정을 하고 앉아, 관객들의 질문을 주고받는 모습에 위안이 되었다. 관객들과의 대화가 끝나갈 무렵, 마지막으로 어떤 관객이 한 단편 영화의 감독을 지목해 물었다.




"감독님은 나이가 스물넷으로 아주 젊으시던데, 어떤 감독이 되고 싶으세요?"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몰랐는데 스물넷이라니. 문득 나의 옛 시절이 떠올라서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어차피 마스크에 가려 볼 수 있는 것이라고는 반쯤 노출된 눈매가 전부인데도,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며 대답을 기다렸다.

"아직 그런 것까지는 생각 안 해봤어요. 지금은 그냥 재미있는 게 영화밖에 없는 것 같아요. 제가 재미있을 때까지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재미가 없어지면, 아마 또 다른 일을 하겠죠?"


  지금은 재미있는 게 영화밖에 없다라…. 

돌이켜 보니 나도 그럴 때가 있었다. 그가 하는 말에 크게 공감했다. 그 말을 몇 번이고 되뇌다가 핸드폰 메모장에 적었다. 그리고 그 말을 적다가 깨달았다. 나 역시 재미있는 게 영화밖에 없던 시절이 있었으나, 내게는 그 재미있는 일을 끝까지 밀어붙일 용기는 없었다. 재미가 없어지면 미련 없이 또 다른 일을 찾을 거라던 그의 말을 곱씹다가, 내가 너무 복잡한 마음이었음을 았다.
  




세상이 세운 줄대로 어떻게든, 그 줄에 맞춰 서겠다고 엉거주춤했던 내 마음이 문제였다.

구부정한 몸으로 비집고 들어가 억지로 줄을 설 것이 아니라 '나의 즐거움'에 방점을 찍어야 했다. 모두 한 번뿐인 인생. 저마다 각자의 방식대로 삶을 사는 중인데, 누가 남의 인생에 점수를 매길 수 있나. 설사 다른 누구와 비교하고 세워 점수를 매긴다고 한들, 그것은 그들의 기준인 것을. 왜 나의 하나뿐인 삶을 누군가가 세워 둔 기준치에 맞는지 아닌지 눈치를 보며 즐거운 일로부터 떠나 왔을까.


  부모님과 약속한 일 년의 유예기간을 두고 '무엇이라도 되어야 했던 시기'를 놓쳤을 때. 회사에 취직하면서부터 글쓰기를 멀리했고, 그 시간에 익숙해지면서 스스로를 어디에도 줄 세울 수 없는 존재로 여겼다. 내 글을 부끄럽게 여겼고 어느 순간부터는 절필을 선언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불과 몇 년 전 책모임에서 만난 주변인들의 계속된 권유에 못 이겨 나간 글쓰기 모임에서 취미 삼아 시작한 글로, 다시 쓰기의 연을 이어가고 있다.  

돌이켜 보니 복잡하게 생각할 것 하나 없다. 역시 그의 대답처럼 지금은 재미있는 게 글쓰기밖에 없었다. 나도 그와 같이 재미가 다할 때까지 이 자리를 지키면 그만이었다. '열심히만 하면 안 되고 잘해야 살아남는 세상'에 사는 것은 그도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 일을 계속하고 있고, 나는 그 이유로 쓰기의 연을 끊었었다. 과연 누군가가 매기는 점수가 중요할까. 결국 나를 데리고 평생 살 사람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이거늘. 내가 즐겁고 재미있는 일을 하는데 점수가 중요할까? 일순간 복잡했던 머릿속이 명료해졌다. 


글은 '엉덩이'나 '머리'로 쓰는 게 전부가 아니었다. 마음이 가는 대로 내 마음이 즐거운대로 가볍게 써야, 그래야 읽는 사람도 부담 없이 가벼이 드나들 수 있는 일이었다.      


  나 역시 지금은 글쓰기가 가장 즐겁다.


가만 생각해 보니 마음 가는 대로 하는 것은 스스로에게 솔직해지는 일이었고, 자신에게 솔직해진다는 것나의 '마음을 챙기는 일'이었다.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끊임없이 자신의 호불호와 취향을 말하는 마음의 소리를 묵살하지 않고, 귀 기울이며 내가 나 자신으로부터 소외되지 않도록 챙기고 다독이는 일이었다.

   
비단 개인의 취미뿐만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면서 마주하게 되는 다양한 순간 속에서도. 자기 스스로에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며 줄 세울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예민하고도 다정하게 물을 수 있는 마음의 주인이 되어야 했다. 그 주인으로서의 역할을 소홀히 하지 않아야, '무엇이 되든 혹은 그렇지 않든' 결과와 상관없이 여전히 건강한 내가 될 수 있는 것이었다.









장래희망

/ 담쟁이캘리




너는 장래희망이 뭐니



모든 어린이에게 묻는 안부 같은 질문에
제법 진지하게 하늘을 날고 싶다고 했다



이곳저곳 마음껏 가고 싶은 곳
경계 없이 자유롭게 날아가기를
맑은 두 눈 반짝이며 금방이라도 날개를 펴고
비행할 것처럼 날갯죽지가 간지러웠다



너는 뭐가 되고 싶었니



모든 어른에게 묻는 철 지난 안부 같은 물음에
제법 슬픈 얼굴로 하늘을 날고 싶었다고 했다



이리저리 어디든 발길 닿는 곳
마음껏 원 없이 자유롭게 다니고 싶었노라고



티 없이 맑은 두 눈은 빛을 잃어 갔고
날갯죽지 안으로 감춰두었던 날개를 펴고
힘껏 날아올랐건만 내 머리 위로 경계가 졌다



두 발로 너무 오래 걸어 선 자리 위로 천장이 생겼고
날갯죽지를 펴고 나는 일은 비행(非行)이 되었다








談담쟁이캘리

: 이야기하는 글쟁이입니다. 

무심코 지나치는 찰나,
별 것 아닌 일상이 별 것이 되는 순간을
에세이와 시로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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