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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쟁이캘리 Aug 25. 2020

참다못해 먼저 끝내자고 했다

내게 그런 핑계 대지 마, 입장 바꿔 생각을 해봐



비극은 솔직하지 못한 어떤 순간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정확히 어떤 날이라고 명명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사실은 나는 괜찮지 않다는 것이었다. 아플 때 아프다고 말하는 용기는 사라진 듯했다. 울고 싶을 때 울지 못하고 삼키는 날들만 늘었다. 아무도 모르는 외로운 싸움이 시작된 셈이다.



결국 나만 참으면 끝나는 게임. 퇴근하면서 로그아웃하고 출근하면서 자동 로그인되는, 내게 주어진 코인이 바닥을 보일 때에야 비로소 끝나는 서바이벌 같은 날들의 연속이었다. 문제는 그 코인이 돈이 아닌 내가 나다울 수 있는 자존심이거나 심한 경우에는 자존감이라는 데 있었다.



이 끝없는 서바이벌 게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적절한 때마다 나를 위해 충전해줘야 는데, 그마저도 갉아먹는 피 말리는 생활의 연속일 경우에는 종일 바닥 치느라 가물고 메마른 마음 적셔줄 물도 찾기 어렵다는 사실이 가장 큰 문제였다.



"난 싫으면 싫다고 말하는 사람이야, 너한테 헤어지자고 말하지 않았잖아."
"나 자신이 가여워서 더는 못 하겠어요."
"넌 그래서 안 되는 거야. 지금 내 핑계를 대고 싶은 거야?"



사람이 일상을 살면서 착각하는 것들이 있다. 이를 테면, 말이 단순한 낱말들의 조합이라고 생각하는 것. 말에도 생각과 감정, 뉘앙스라는 게 있는데 '헤어지자' 그 말을 안 했다고 끝이 아닌 게 되나. '좋아'라고 말해도 억양이나 표정 등 비언어적 표현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것인데, 갖은 말들로 상처 줄 때는 언제고 건너편에 마주 앉은 그의 말에, 하려던 말들이 자취를 감췄다.



본래 말이란 주고받는 것이고 모든 언어에 소리가 실리는 이유는 '들으라고 하는' 것이므로, 간혹 지금처럼 귀가 있어도 들을 줄 모르는 사람에게는 백 번을 말해봐야 내 입만 아프다. 나는 모든 게 삼세 번이다. 아무리 힘든 일도 세 번까지 해보고 그래도 아니면 뒤돌아보지 않는다. 덕분에 오랜 고민이 습관이지만. 세 번의 대화 시도 끝에 그는 자기 세계에 갇혀 사는 벽창호라고 결론 내렸다.



말이 길어지는 게 싫어 널뛰는 마음을 가만 두니, 언젠가부터 나를 가마니로 보기 시작했다. 인성을 판가름 짓는 방법은 명확하다. 잘해주면 된다. 잘해주는 게 고마워 정이 되돌아오면 된 사람이고, 제 잘난 줄 알고 날뛰는 건 사람새끼다.



목 놓아 헤어지기만을 기다린 사람처럼 갖은 비수를 꽂을 때는 언제고. 그의 말이 참 가관이다. 끝까지 '끝'에 대한 책임은 지고 싶지 않다는 건가. 사람들은 종종 그런 말을 한다. 모든 관계에는 갑과 을이 존재한다고. 뭐 없는 말은 아니지만, 그게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 적 없었다.



날 때부터 우위를 겨뤄야 하는 정글보다, 더 징글징글하고 무서운 게 사람이라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에 우위가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한데, 곁에서 본 그의 일상이 온통 밀림 같았다. 어느 날은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찾아 헤매는 하이에나 같았고 또 어떤 날은 서열다툼에 눈먼 사자 같았다.



내 비록 지나 온 평생이 꽃밭은 아니었지만 이따금 내리는 비에도, 망가짐 없이 꿋꿋하게 나만의 들꽃을 피우던 삶이었다. 그 마음밭이 사막으로 변해가는 걸 보면서 이따금 헷갈릴 때도 있었다. 실은 내 마음이 본래 사막이었던 것은 아닌가. 결국 전부 다 내 문제인 건가. 그래서 이런 악몽 같은 날들이 지속되는 것일까. 모든 화살이 내게로 향하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스스로 관계에 대해 가늠할 때 가장 비참해지는 순간은, '나만 손 놓으면 모든 게 끝나는 관계'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다. 복잡하던 머릿속이 명료해지고, 서로 엉켜있던 마음들이 제 스스로 결심한 듯 일렬로 줄을 설 때. 밀렸던 업무를 끝내듯 머릿속으로 해야 할 일들이 번호표를 달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인생은 'B'irth와 'D'eath 사이의 'C'hoice라더니, 정말 눈 뜨는 순간부터 감을 때까지 선택의 연속이다. 행여나 순간의 선택이 뼈저린 후회를 남길까 봐 미루고 또 미뤄온 선택을 했다. 이 지긋지긋한 관계를 끝내기로.




"네, 당신이랑은 더 이상 일 못 하겠어요.
그만둘래요."



일이든 연애든 특정 시점에서 잃을 각오를 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나만 손 놓으면 끝나는 것을 깨닫는 일은 너무나 마음 아픈 일이다. 느슨해진 관계의 끈을 다시 꽉 묶어 상대를 붙잡으려는 생각에 절박한 심정으로 하루를 보내지만 상대방은 이별의 아픔을 대비하려는 것처럼 헤어짐의 결정을 이미 나에게 맡긴 상태이기 때문이다.







핑계

/ 담쟁이캘리




이상하지
과녁도 없는데
자꾸 화살을 쏘아 대네


마치 신궁이라도 되는 냥
수없이 활을 겨누는데
과녁을 옮겨도
자꾸 내 쪽을 향하네


비겁하게 또
나를 과녁 삼아 핑계 대고 싶은가
아무리 넘쳐나는 나쁜 말들도
자꾸 반복하면 마를 만도 할 텐데


마를 날 없이 매일 넘치는 걸 보니
화도 살찌듯 증량할 때가 있나
화 체중계가 있다면
매일이 과체중이겠네


부지런히 몸 만들고 뛰어도
혹여 내장비만 소리 들으면 기억해
그건 넘치는 화 때문이야


더는 내 핑계 대지 마






談담쟁이캘리

: 이야기하는 글쟁이입니다.

무심코 지나치는 찰나,
별 것 아닌 일상이 별 것이 되는 순간을
에세이와 시로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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