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담쟁이캘리 Sep 12. 2020

'기억' 상실의 시대

편의를 사는 값으로 '향수'를 지불했다.




열렸습니다.



열쇠로 현관문을 열던 마지막 기억이 언제였더라. 공동현관부터 현관까지 비밀번호만 누르면 친절하게 문을 열어주는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 집은 재작년 완공된 신축빌라로 전 세대가 도어록(door lock)을 쓰고 있다. 아마 요즘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가는 사람들은 거의 없을지도 모르겠다. 처음 도어록(door lock)이 나왔을 때는 고작 비밀번호로 문을 여닫는다는 사실에, 보안이 신경 쓰여 끝까지 열쇠를 고집했었다. 그것도 벌써 옛날이야기이지만….



열쇠가 없이도 현관문을 열 수 있게 된 지 어언 십 년이 지났다. 마당 화분 밑이나 우유 배달함 속에도 열쇠는 없었다. 도어록(door lock)이 그 자리를 채웠고, 우리 집 비밀번호를 기억하는 그 녀석에게 '알맞은 숫자'만 눌러주면 순순히 잠긴 문을 열었다. 덕분에 집을 나설 때마다 챙기던 소지품 하나가 줄었고 주머니가 가벼워졌다. 툭하면 열쇠를 잃어버려 여러 개 복사해 가족끼리 나눠야 할 수고도 덜었다.







어디 그뿐일까. 닫힌 문을 여는 것도, 친구에게 전화하는 일도, 밥 먹고 카드로 결제하는 일도 몇 자리 숫자를 '기억'하는 기계 하나로 다 된다. 이제 더는 엄마의 목소리로 아침잠을 깨지 않아도 된다. 핸드폰이 나의 기상 기상을 기억하고 알아서 깨워주기 때문이다. 동전을 짤랑거리며 두둑한 지갑을 들고 다닐 필요도 없어졌다. 심지어는 그 돈이 담긴 카드마저도 카드번호와 비밀번호 '숫자'만 있으면, 핸드폰 하나로 결제가 가능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참 많은 것들이 쉬워졌다. 몸은 편해졌는데 문득, '변하지 않을 줄 알았던' 그 일상의 풍경들이 아른거린다. 열쇠를 집에 두고 왔다는 핑계로 집 앞에 가방을 던져놓고 친구들과 놀던 기억, 한쪽 볼이 뜨거워질 정도로 밤새 통화하다 통화료 폭탄 맞았던 기억, 짤랑거리는 동전을 양손에 쥐고 홀짝 놀이를 하던 기억, 한 자 한 자 문자메시지를 고심해 적으며 90byte를 넘길까 봐 띄어쓰기도 마다하고 꾹꾹 눌러 담던 그때가 그리워지는 순간이 있다.






편의점의 관심은 내가 아니라 물이다, 휴지다, 면도날이다. 그리하여 나는 편의점에 간다. 많게는 하루에 몇 번, 적게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나는 편의점에 간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 사이, 내겐 반드시 무언가 필요해진다.

- 김애란, <나는 편의점에 간다> 중에서 발췌.



처음 편의점이 생겼을 때만 해도 동네슈퍼만의 정감이나 물건을 사며 나누는 사소한 안부인사가 사라진다는 생각에, 별안간 땅따먹기에서 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떻게 가게에 들어가서 내가 필요한 물건만 사서 나오지'라는 생각에 '편의점'이라는 말마저 차갑게 느껴졌다. 아파트에는 단 한 번도 살아본 적 없고, 지금 사는 빌라를 제외하고는 늘 주택가에 살면서 동네슈퍼가 없어질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으니 더욱 그랬다. 한데, 지금은 온 세상이 편의점이 된 것 같은 기분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스마트폰을 통해 내 편의를 해결한다.

 


분명 세상 사는 게 참 편해졌고 크게 힘 들이지 않고도 얻을 수 있는 것이 많아졌. 이제 더는 발신번호 모르는 전화를 받지 않아도 되고, 공중전화 앞에서 줄 서서 기다리지 않아도 연락할 수 있고, 전화번호부에 손글씨를 채워가며 연락처를 지 않아도 된다. 외우지 않아도 스마트폰이 다 기억한다. 스스로 기억하고 있어야 하는 수고는 덜었다. 그런데 왜 수고스럽던 그 옛날이 그리워지는 걸까. 세상 살기가 쉬워지면서 몸은 편해졌는데, 함께 나눌 기억은 자꾸만 지워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열쇠를 깜박하고 두고와 발을 동동 구르고, 손이 기억하는 번호를 누르며 친구와 수다를 떨던 밤, 엄마 몰래 외할머니가 주머니에 질러 넣어준 꼬깃한 쌈짓돈을 깜박해 세탁기에 돌려버렸던 기억, 엄마의 잔소리를 자장가 삼아 꼭 '5분만' 늑장 부리던 날들까지 별스럽게도 그 모든 시간들이 문득 그립다.







잃어버린 열쇠를 핑계로 문 앞에 책가방을 던져놓고 친구네 집에 가서 놀던 것도, 무선전화기를 방에 가져와 비밀 이야기를 나누다 그대로 잠들었던 그 밤도, 지폐 한 장 건네며 받는 거스름돈을 핑계로 서로의 안부를 묻던 것도, 왜 빨리 깨우지 않았느냐며 철없는 투정을 부리는데도 그 말 온전히 들어가며 되려 미안해하던 엄마의 표정까지….



그때는 이 모든 게 수고스럽기는 했어도, 그 수고 끝의 관심은 '사람'이었고 '나'였다. 열쇠를 깜박해 밖에서 떠돌고 있을 나에 대한 걱정이었고, 무선전화기 배터리가 닳을 때까지 수다를 떨고 싶은 나에 대한 관심이었다. 꼬깃한 쌈짓돈이지만 이것으로 한 끼라도 내 배를 불리고 싶은 마음이었고, 아침잠이 많은 나를 채근하면서도 못 이기는 척 꼭 '5분만이라도' 늑장 부리는 모습을 눈감아 주고 싶은 따스함이었다.



어릴 적 엄마의 무릎을 베고 누우면 '나 때는 말이야'로 시작하는 외할머니와의 추억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지금은 꼰대나 한다는 '라떼 이야기'가 누군가에게는 그 시절의 따스했던 추억을 잊지 않기 위해 수없이 반복하는 '암송'일지도 모르겠다. 나 대신 모든 것을 기억하는 기계에게, 추억을 곱씹을 때마다 온몸으로 떠오르는 그 날의 노래나, 냄새, 향기만큼은 잊지 않고 선명하게 기억하고 싶은 마음의 반증일지도 모를 일이므로.  






물음

/  담쟁이캘리




몇 날 며칠

끝 모르고 쏟아붓는 장마에

양말까지 젖어 두 발 꽁꽁 얼어붙은 날


 

엄마가 끓여준 잔치국수 한 그릇

국물 한 술 뜨기도 전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마음에도 우기(雨記)가 있나

비를 머금은 구름처럼

그치지 않는 울음을 울다



왜 우느냐는 물음에

그냥, 너무 따뜻해서 라고 말했다







談담쟁이캘리

: 이야기하는 글쟁이입니다.

무심코 지나치는 찰나,
별 것 아닌 일상이 별 것이 되는 순간을
에세이와 시로 기록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참다못해 먼저 끝내자고 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