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반전

눈길에도 온도가 있다

by 담쟁이캘리


눈은 '마음의 창'이라는 말이 있다.

그것은 아마도 소리로 발화되지 않아도 고스란히 전해지는 말이 있다는 뜻 이리라. 소리로 발화되지 않는 말들은 음가 없이 온몸의 감각으로 읽히기 때문에 말보다 더 큰 울림을 동반한다. 그 울림이 마음에 감동을 주는 긍정의 신호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정반대의 것일 때는 그야말로 지옥이다. 내가 겪은 지옥은 지독하게 고요해서 더욱 날 선 고통이었다. 어느 시인이 말하길 어떤 말은 죽지 않고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살아남는다고 했는데, 나에게는 말보다 시선이 고통일 때가 있었다. 차라리 철없고 어린 나이를 핑계 삼아 무시할 수 있는 것이 나았다. 이게 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리숙함 때문이라며 흘려버리려면 쓰레기통에 처박아버릴 말이 있어야 했다. 그런데 차가운 시선에는 소리커녕 한기만 돌아, 겨우살이 중인 삶 전체를 꽁꽁 얼리는 듯했다. 힐끗 훔쳐보는 눈길 끝에 스민 섣부른 동정과 위아래로 훑으며 자신이 우위에 있음에 으스대며 할퀴듯 흘기는 시선에 내 삶 곳곳을 함부로 난도질당했다.

대항하듯 같은 시선으로 반응해도 나를 보는 그들의 날 선 시선은 쉬이 그치지 않았다. 내 눈으로 내가 보고 싶은 대로 보겠다는데 무엇이 문제냐는 태도에 백기를 드는 쪽은 언제나 나였다. 봐도 못 본 척, 느껴도 아무것도 모르는 척 뻔뻔해지는 것이 그나마 갖가지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길이었다. 말보다 무서운 눈초리에 나의 일상이 함부로 베일 때마다 삶이 점점 불행으로 기우는 듯했다. 칠삭둥이 미숙아로 태어나 뇌성마비를 앓으며 기형적으로 한쪽으로 기우는 형국이 삶 전체로 번져 사는 것 자체가 점점 불행으로 기우는듯했다.



말보다 더한 고통을 주고도 자기들은 아무 말하지 않았다며 시치미 떼고 앉아 점잖을 떠는 모습을 볼 때면 헛구역질이 나기도 했다. 어릴 적 무턱대고 동경하던 어른이 이런 모습이라면 기꺼이 철들지 않는 어린아이로 남겠노라고 다짐하던 때도 있었다.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지 않았으므로 본인은 떳떳하다는 그 위선적인 모습을 본 뒤로 나의 시선은 줄곧 아래를 향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과는 시선을 맞추는 것이 불필요하다고 느꼈고 혹시 모를 내 무의식적인 시선이 다른 어떤 이의 삶을 함부로 베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호불호는 확실해도 나 역시 서툰 사람이므로 시선을 아래로 두는 것으로 나는 남의 삶을 함부로 흘기는 사람이 아니라며 선을 그었다.

그러다 보니 요즘은 길을 걸어도 누가 나를 어찌 보는지 구태여 살필 일이 없다. 대놓고 나의 걸음을 관람하거나, 일부러 앞서 걸으며 힐끗힐끗 돌아보는 사람을 만나지 않으면 사람들의 시선은 관심 밖이다. 어릴 때에는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나의 몸을 과녁 삼아 쏘는 화살 같아서 만신창이가 되었다면. 어른이 된 지금은 그 자리에 굳은살이 배겨 웬만해서는 여느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걸을 수 있는 씩씩한 마음이 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말보다 깊은 생채기를 남기는 것은 시선이었다. 내 단단해진 마음과는 별개로 비언어적인 것으로부터 오는 상처는 애를 써도 쉽사리 버려지지 않았다. 첫째는 나를 바라보던 시선에 담긴 선명한 표정 때문이었고, 둘째는 섣부른 동정으로 내 삶 전체를 딱한 것으로 후려치는 무례함 때문이었다.



통성명을 하고 대화를 나누기도 전에, 그들은 이미 나를 그들보다 낮은 자리에 앉혀둔 듯했다. 보이는 것만 보고 자기 마음대로 지레짐작한 결론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에 고스란히 담겼다. 길면 몇 분, 짧으면 찰나의 순간에 나는 그들에게 불쌍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영문도 모르는 채로 남루해진 삶의 매무새를 다시 고쳐 입는 일은 생각보다 지루하고 고된 일이었다. 그러한 연유로 말을 함부로 하는 사람보다 멋대로 보는 시선이 더 싫었다. 눈으로 마주하는 상대의 '마음의 창' 속에서 당연히 불쌍한 모습을 하고 있는 내가 싫었다. 그래서 길 가다 누군가의 시선을 받을 때면 팔 할이 거추장스럽게 느껴졌다. 아무 말하지 않는 그들에게 '저는 불쌍한 사람이 아니에요.' 라거나 '저는 괜찮아요'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얼른 그 자리를 벗어나는 것뿐이었으나, 그렇다고 뛸 수도 없어 결국은 무시가 상책이었다.

말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것이 아니라, 시선도 한 눈으로 보고 한 눈으로 흘릴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물론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듯이, 별안간 괜찮던 마음이 고꾸라져 엉덩방아를 찧을 때도 있었다. 속단하는 눈길로 함부로 가엾이 여기는 그들에게 지치기도 했다. 그래서 여전히 나의 몸을 훑는 사람들의 눈길이 불친절하고 무례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얼마 전, 이름 모를 누군가의 눈길이 나를 위로했다.



코엑스 근처에서 삼성역 7번 출구로 향하는 길이었는데, 삼성역 사거리는 초역세권이라 오가는 차가 많아서 그런지 신호등이 유난히 짧았다. 한 번 빠른 걸음으로 걸으려고 시도하다 멈추고 다음 신호를 기다렸다. 얼마쯤 지났을까. 또다시 초록 신호등이 켜졌고 다시 걸음을 재촉해 걸었다. 분명 빠른 걸음을 걸었는데도 금세 신호가 깜박이기 시작했고 괜스레 마음이 조급해졌다. 그때 갑자기 앞서 걷던 한 여자가 고개를 돌려 내 걸음을 힐끗힐끗 살피기 시작했다. 여태껏 이름 모를 이들의 시선이 그러했듯 이 역시 똑같은 부류일 것이라 생각해 걸음을 더욱 재촉했다. 그런데 여자가 나를 돌아보며 살피는 주기가 점점 짧아지더니, 결국에는 앞서 가던 걸음을 늦추고 나와 보폭을 맞춰 걷는 것이 아닌가.

그녀는 눈길로 내 걸음의 속도를 살피고 있었다. 깜박이던 초록 신호등이 빨간색으로 바뀌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나와 같은 보폭으로 건널목을 건넜다. 그리고 나의 안전 횡단을 확인하고는 옅은 미소를 띠었다. 이제껏 날 선 시선으로 나를 베려고 하던 사람들과 달리, 그녀는 나를 진심으로 배려하고 있었다. 아무 말하지 않고 내 안전을 확인한 뒤에야 웃는 그녀에게 '고맙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녀 덕분에 살면서 처음으로 내 걸음을 살피는 어떤 이의 시선에 온기가 있을 수 있음을 알았다. 그녀와 나눈 대화라고는 고맙다는 말이 전부였다. 말없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살핀 눈길로 그녀가 내게 하려던 말을 이해했고, 소리 없이 전해진 배려와 입가에 띤 미소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사물이 거울에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

찰나였지만 그 건널목을 건너는 일 분 남짓한 시간 동안 세상 그 어떤 말보다 온기 가득한 마음을 나눴다. 나의 걸음을 살피고 힐끗거리는 시선들은 줄곧 아픔이었는데, 며칠 전 길에서 만난 그녀 덕분에 마냥 아프게만 느끼던 일의 형세가 뒤바뀌기도 하는 때가 있음을, 같은 눈길이라도 예외가 있음을 알았다.

인사를 나누며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마주한 그녀의 '마음의 창'이 아름다워서 나의 지난 시간들까지 더불어 위로받았다. 세상 가장 무서운 것은 말보다 시선이라는 나의 생각을 단숨에 깨준 그녀가 고맙다. 비록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가물가물하지만 나를 살피던 그 시선과 미소만은 선명해, 그녀의 시선은 내게 아주 오래도록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반전으로 기억될 듯하다.



내 삶을 함부로 흘기지 않고
무언의 눈길로
따스히 배려해주어 고맙습니다.









談담쟁이캘리

: 이야기하는 글쟁이입니다.

무심코 지나치는 찰나,
별 것 아닌 일상이 별 것이 되는 순간을
에세이와 시로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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