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겹지 못해서 그녀가 부러웠다

감정이라는 것이 그리 간단치가 않다

by 담쟁이캘리



“방송작가 경력이 꽤 있는데, 왜 그만뒀어요?”
“지겨워서요.”

누군가의 지겹다는 말에 부러움을 느낀 것은 처음이었다.



‘좋겠다. 지겨울 만큼 써 봐서….’



작가를 꿈꿨으나 그 무엇도 되지 못해 패잔병 같았던 스물여섯 여름, 면접장에서 하필 방송작가 이력이 있는 면접 상대를 만났다. 경쟁 면접은 주눅 들면 끝장나는 심리싸움 이건만 그녀의 대답에, 제대로 붙어보기도 전에 졌다. 지겹다는 말 외에도 다른 말들을 덧붙였지만 뒷말은 들리지 않았다. 글쓰기가 지겨워 회사원이 되려는 그녀와 글쓰기가 좋지만 회사원이 될 수밖에 없는 나를 한 곳에 나란히 세운 얄궂은 운명에 참담한 마음이 들었다.

내 꿈은 회사원이 아니었다. 작가는 배고픈 직업이라며 사무직 면접이라도 보라고 닦달하던 부모님으로부터 딱 일 년의 유예기간을 얻었다. 매일 열 시간씩 시나리오를 썼고 그렇게 고친 원고만 13고에 달할 정도로 정말 열심히 썼다. 그러나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한 결과로, 결국 면접장에 앉아야 했던 날이었다. 떨어질 때 떨어지더라도 '참 아까운 인재를 놓쳤다'는 말을 듣고 싶었다. 비록 꿈이 회사원은 아니지만 부모님과의 약속을 지키겠다고 만반의 준비를 해 갔던 면접이었는데…. 무방비 상태로 있던 마음이 기습을 당했다. 뜻밖의 기습에 마음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이후 면접관의 질문에 답할 때마다 자꾸 말을 절었다. 그 모양이 꼭 내 마음을 대변하는 듯했다.





엄마는 내가 칠삭둥이 미숙아로 태어나 잔병치레도 잦고 뇌성마비까지 앓아, 몸 쓰지 않고도 밥벌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일찍이 일기 쓰기를 교육시켰다고 했다. 처음 내가 작가가 되고 싶다고 했을 때, 자기 탓에 그 꿈을 꾸게 된 것 같다고 했지만 글쓰기가 도피처는 아니었다. 물론 글 쓸 때만큼은 현실의 ‘나’를 지울 수 있었다. 겉모습이 어떤지, 단점이나 약점은 무엇인지 구태여 말할 필요도 없었다. 애써 설명하거나 변명하는 일없이 나를 나로서 보일 수 있다는 것 역시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작가를 꿈꾸는 데 있어서 나의 아킬레스건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글 쓸 때만큼은 배고픈 줄도, 주변에서 어떤 소리가 나는지도 모르고 완벽하게 ‘몰입’할 수 있었다. 이어폰을 끼고 음악의 볼륨을 높이는 일처럼 오롯이 글에 빠질 수 있는 그 시간이 좋았다. 할 수만 있다면, 나도 지겹도록 글을 쓰고 싶었다. 대부분의 반 아이들이 가정환경 조사지에 적어 내는 어른들의 직업인 ‘회사원’만은 되지 않겠노라 다짐했었다. 어려서 가능했던 철없는 생각이었지만, 그래도 그때는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되면 훌륭한 무언가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낭만이 있었다. 덜 벌어도 좋으니 가슴이 뛰는 일을 하겠다며 오랜 고민 끝에 꾸기 시작한 꿈이었다.





나에게 글쓰기는 한 번도 싫증난 적 없는 일이었다. 다른 누군가에게 자랑스럽게 지겹다고 말할 만큼 해보지도 못해서 그녀가 못내 부러웠다. 부러움의 감정은 좋은 것을 가졌을 때나 느끼는 것인 줄만 알았는데, 감정이라는 것이 그리 간단치가 않다. 그 대상이 무엇이든 갖지 못한 것으로 굶주린 마음이 들 때 불쑥 소리를 낸다. 마치 배꼽시계처럼 본능에 가까운 마음이라 도통 대비가 어려웠다. 짐짓 아닌 척할 수가 없어서 시원하게 면접을 망쳤다.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 여러 번의 고배 끝에 회사원이 되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결국 꿈을 이루고 그 분야의 베테랑이 되어 멋지게만 끝나던데, 현실은 지극히 현실이다. 이제는 낭만이 얼마나 무모한 것인지 안다. 꿈이 밥 먹여주지 않는 것과 회사는 자아실현을 하는 곳이 아니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덜 벌어도 좋으니 가슴이 뛰는 일을 하고 싶다던 생각은 몽당연필처럼 작아졌고, 자기 밥벌이를 하며 앞가림을 해야 할 나이가 되었다. 그래서 지금은 스스로의 절충안을 찾아서 본 캐릭터(이하 본캐)는 회사원, 부 캐릭터(이하 부캐)는 글 쓰는 사람으로 인생을 사는 중이다.






이전에는 캐릭터라는 말 대신 '잉여' 혹은 '잉여인간'이라는 말을 썼다. 무엇을 하든지 간에 메인이 아니면 '나머지'라는 말로 모두 뭉뚱그려 칭했다. 그래서일까. 메인에서 멀어지면 이름을 잃었고 있으나 마나 한 사람처럼 읽혔다. 그런데 지금은 '멀티 페르소나'라는 말로 각자의 다양한 캐릭터를 인정하는 분위기다. 회사원이어도 작가일 수 있는 변화의 흐름이 참 반갑다. 예나 지금이나 나에게 글 쓰는 일은 즐거움이라 틈만 나면 글을 쓴다. 그리고 먼 훗날, 나의 꿈이 '부캐'를 넘어 '본캐'가 될 날을 그려본다.

꽤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도 가끔 그녀의 말이 떠오를 때가 있다. 지겹도록 글을 쓴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대체 그게 어떤 감정인지 궁금해도 물어볼 수도 없다. 별 수 없다. 글 쓰는 일이 지겨워질 때까지 써 보는 수밖에…. 아직도 글쓰기를 지겹도록 해 보지 못해서일까. 문득, 그때를 떠올리면 나는 여전히 그녀가 부럽다.










談담쟁이캘리

: 이야기하는 글쟁이입니다.


무심코 지나치는 찰나,

별 것 아닌 일상이 별 것이 되는 순간을

에세이와 시로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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