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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꺼이 부서지는 용기

산산이 깨져 새로워지는 것들

by 담쟁이캘리


내 나이 여섯 되던 해, 처음 땅에 두 발을 딛고 걸으면서 이 세상의 주인공은 나라고 확신했다. 칠삭둥이 미숙아에 뇌성마비 진단을 받고 휠체어 없이 움직일 수 없었던 것이 과거가 되었을 때. 드디어 기괴한 마법에서 벗어나 남은 삶 모두 행복을 향해 흐르리라 믿었다. 엄마가 읽어주던 동화 속 대부분의 공주가 그랬듯 곧 지나갈 바람 같은 잠시 겪는 성장통으로 여겼다. 그렇게 믿는 마음의 세기는 무엇과도 비길 수 없을 만큼 강력했지만, 세상 일이라는 게 비길 수 없다고 해서 모두 이기는 것은 아니었다.



땅에 두 발을 딛고 걷는 일은 나한테나 기적이지 남들에게는 당연한 일상이었다. 제 힘으로 걸을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만 같을 뿐 그 외 모든 것이 달랐다. 나는 절름발이였고 달릴 때마다 발이 땅에 끌려 모래바람을 일으켰다. 비 오는 날에는 축축이 젖은 지면에 왼발이 미끄러져 중심을 잃어 연신 기우뚱거렸다. 하릴없이 첨벙첨벙 걸을 때마다 나란히 걷던 친구들 옷을 적셨다. 함께 걷고 싶어 서두를수록 걸음이 엉켜 물의 파장만 키워 빈축을 샀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양만 같고, 움직일 때마다 어딘가 고장 난 듯 이상하고 별난 모습에 곁에 있던 친구들을 하나둘씩 잃었다.



'자기와 다르게 태어난 것이 잘못'인양 자기와 똑같지 않은 모습을 놀림거리로 삼았고 함께 다니기 귀찮고 불편하다는 이유로 자주 외로워졌다. 등 돌려 멀어진 아이들은 대립된 진영에 선 나를 함락시키는 것이 임무인 듯했다. 태어나기 전 자기 모습을 고를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건만. 타고난 모양을 두고 서슴없이 손가락질 해댔다. 여섯 살 인생에 '기적의 아이'라는 칭호를 얻고 모두의 축하 속에 병원생활을 졸업하고도 삶은 여전히 마법에 걸린 듯 괴이했다.



걷지 못할 거라던 진단을 뒤엎고 걷게 되었으니 앓은 줄도 모를 만큼 완전히 나아서 뛰놀게 될 줄 알았는데 기적은 딱 거기서 그쳤다. 오매불망 기다려도 백마 탄 왕자는 나타나지 않았고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는 결말도 없었다. 이것은 동화가 아니라 현실이라는 것을 반증하듯 삶은 자꾸 불행으로 기울었다. 이전 판이 깨지고 처지가 달라졌는데도 하루씩 몸집을 불리는 고통을 감내하며 무언가 '깨진다'는 것은 무조건 불길한 징조로 받아들였다. 생애 첫 주인공으로 타이틀 롤을 맡아 동화 같은 기적이 일어난 거라고 믿었던 삶에서 한 순간에 엑스트라 단역으로 전락한 기분이었고, 산산이 부서진 모든 것들은 상흔을 남기는 것이 숙명이라고 이해했다. 적어도 그 일을 겪기 전까지는….





쨍그랑, 산산조각 난 것들의 외마디 비명 같던 그 소리가 별안간 경쾌한 시작음으로 들렸던 날. 그날은 대수롭지 않은 보통날이었다. 평소처럼 적당히 권태롭던 어느 날 저녁, 아끼는 벗과 반주를 곁들이던 중 왁자지껄한 웃음 사이로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소란했던 주변 소음은 잦아들고 고요해졌다. 그 침묵을 틈 타 불길한 마음이 깃드는 찰나, 일행 중 하나가 던진 한 마디에 곧바로 브레이크가 잡혔다.



"판이 새로워지려나 보다."



그는 어두운 낯빛 하나 없이 즐거운 얼굴을 하고 말했다. 흥미로운 일이라도 만난 듯이 싱긋 웃으며 빈 잔을 채우고는 건배 제의를 했다. 그 모습에 압도되어 불길한 길로 들어서던 마음이 걸음을 멈췄다. 순식간에 급선회한 마음이 당혹스러웠지만 그의 아무 동요 없는 평온한 얼굴을 보며 이내 평정을 찾았다. 당연하게 불행을 예감하던 이전과 다르게, 어릴 적 엄마가 읽어주던 동화처럼 결국 어떻게든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는 이야기로 마무리될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에게 있어 무언가 깨진다는 것은 이전 틀을 깨고 새로워지는 계기 같았다.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다는 사실에 되려 재미를 느끼는 듯했고 표정에 은근한 기대가 서려 있었다. 혹여 예상치 못한 결과를 마주한다 하더라도 개의치 않을 태도였다. 그는 오로지 오늘 이곳에서 ‘판이 깨졌다’는 것과 그것으로 무엇이든 변하게 될 사실에만 집중했다.




그러고 보니 설사 눈에 뜨이는 변화가 없더라도 깨지는 소리로 무언가 깨졌다는 것을 인지했으니 이미 마음은 변한 셈이었다. 무언가 깨졌다는 사실만으로 불행을 예감해오던 나와는 정반대였다. 하물며 숱한 드라마나 영화에서조차 불길한 징조를 나타내는 것이 부지기수인데, 그 클리셰를 깨고 바로 긍정의 회로를 돌리는 태도에 적잖이 놀랐다. 어쩜 이렇게 일말의 흐트러짐도 없을 수 있는지 그의 자세를 묵상하다가 간과하고 있었던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무언가 깨지는 일과
나의 불행 사이에는 아무 연관이 없다.



깨달음과 동시에 내면에 균열이 일었다. 어쩌면 여섯 살 인생에 경험한 감격스러운 기적이 그친 것은 내 탓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처음 땅에 두 발을 디딘 순간 행복을 느낀 것도 힐끗힐끗 흘기는 시선에 주눅이 들어 걷는 일조차 버겁다 느낀 것도 모두 나였다. 물론 그렇게 느낄 수밖에 없었던 외부 요인이 있었지만 그 때문에 지옥을 살아야 했던 것은 내 마음이었다. 이제는 십수 년도 더 지난 일을 마음이 되새김질하고 있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는 동안 경험한 갖가지 불행은 마음 밖에서 일어났지만 스스로 재생산하고 확산시키면서 마음속에 공포를 키운 듯했다. 모처럼 찾아온 기적의 씨앗을 두고 물을 주고 햇볕을 쬐이는 일조차 제대로 해주지 못했으니 기적이 자기 몸집을 더 불리지 못하고 그쯤에서 그친 것은 내 마음의 크기가 잘은 탓이었다.




시선이 가는 방향대로 마음이 길을 낸 것이나 다름없었다. 줄곧 불행에 초점을 두었으니 사는 내내 괴이한 마법에 걸린 사람인양 행동했던 것은 당연해 보였다. 마음이 지옥인데 어떻게 좋은 감정이 샘솟을 수 있으랴. 이것을 깨닫고 나니 '판이 깨진다'는 말이 새롭게 다가왔고 지난 과거 속 그릇된 행동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판이 깨졌을 때 앞으로의 미래가 변할 때까지 목놓아 기다릴 것이 아니라, 자기 힘으로 알을 깨고 부화하는 생명처럼 스스로를 둘러싼 세계를 깨뜨리고 나오기 위해 쟁취해야 할 일이었다.



여섯 살 인생에 앉은자리를 털고 일어나 걷는 기적을 경험하고도 남들과 똑같이 걷지 못하는 절름발이였기 때문에 주인공 자리에서 밀려난 것이 아니었다. 나 자신을 지키는 법을 몰라서 제 발로 타이틀 롤에서 내려왔을 뿐. 그 어디에도 내 생애 주인공 자리를 뺏은 이는 없었다. 실상은 아무것도 빼앗기지 않았고 모두 내 손에 있었다.




살다 보면 귀중한 것을 도둑 맞고도 깨닫지 못하고 지나칠 때가 있다. 도둑맞은 것이 눈에 띄지 않는 무형의 것이거나, 그것이 내부의 소행일 때는 더 그렇다. 특히 앞서 이야기한 마음의 경우, 눈에 보이지는 않아도 각자가 자기 마음의 주인이지만, 소유권을 분명히 주장하고 자력으로 설 수 있는 힘을 기르지 않으면 아무에게 문을 열어주기 쉽다. 마음 문턱을 세워두고 누구도 함부로 드나들 수 없게 지키지 않으면 나처럼 자기 마음이 쑥대밭이 된 줄도 모르고 지옥을 산다.


마음은 사람과 달라서 정해진 생애주기가 따로 없다. 어느 날을 계기로 겨우 키운 키가 줄기도 하고 땅딸막하던 마음이 우연한 사건을 계기로 몸집을 불려 어마어마하게 성장하기도 한다. 그 말은 마음 성장판은 평생 닫히지 않으니 언제든 기회가 있다는 뜻이자, 지금껏 키워둔 마음의 키가 아무리 커도 제대로 살피지 않으면 삶에 예고 없이 찾아오는 숱한 불행에 망가지기 쉬워 밭을 가꾸듯 꾸준히 관리해야 한다는 뜻이리라.




쨍그랑, 산산조각 난 것들이 외치는 그 외마디 비명 같은 소리에도 부침 없이 빈 잔을 채우고 자기 잔을 부딪치던 나의 벗처럼. 느닷없이 찾아올 불길한 징조에도 기꺼이 ‘위하여’라고 외칠 수 있기를. 그간 온전히 살피지 못해 여기저기 산재돼 있던 불행을 솎아내고 적당한 틈을 낸 마음에게 일렀다. 내 남은 삶 마음을 굳건히 지켜 좀먹지 않고 건강할 수 있도록 힘쓸 테니 앞으로 잘 부탁한다고. 꽤 오랜 시간 습관처럼 지옥을 살았을 마음일 텐데 그 모든 시간들을 뒤로하고, 그날 그 자리에서 브레이크를 잡고 판을 깨고 산산이 부서져 줘서 고맙다고.




기꺼이 부서진 덕분에
이제라도 새로워질 수 있게 되었다고








마음, 바깥에서

/ 담쟁이캘리




까치발을 들어도

보이지 않는 담 너머가 있고

겅중겅중 뛰어도

넘을 수 없는 벽이 있었다



온종일 발꿈치를 들어도

보이지 않는 어떤 곳이 있고

힘껏 뛰어올라도

넘을 수 없는 선이 있었다



볼 수 없어 넘고 싶었는지

뛸 수 없어 넘어서고 싶었던 건지

그 어느 쪽에도 들지 못해

내리 밖을 배회했다



아래로 두 발을 뻗어도

결코 닿지 않는 바닥이 있었고

힘껏 발길질해도

닿지 않는 곳이 있었다



알 수 없어 보고 싶었는지

질 수 없어 가보고 싶었던 건지

그 어느 쪽에도 들지 못해

내리 밖을 헤매었다



닿을 수 없는 선과 벽 사이

수개의 언어로 굽이치는 마음

모두 받아낼 단단한 둑을 쌓았다



파동에 일렁이는 자음과 모음

몽땅 엮은 글로 성글한 틈을 채웠다



저 너머의 밖보다

더 나은 안이 되기를



바깥으로 삐져나온 마음

갈무리할 때마다 마침표를 찍었다





닿을 수 없는 바깥은 당연히 행복할 거라고 상상하던 때가 있었다. 선과 벽 사이를 넘으면 현실의 담장도 쉬이 넘어설 수 있을 거라고 믿던 때가 있었다. 기를 쓰고 밖으로 향했다. 온종일 마음이 편히 쉬지 못하고 바깥으로 향했다. 내가 선 이곳보다 더 나은 밖이 있을 거라는, 줄곧 목이 마르고 허기지는 모자란 마음으로. 그 마음의 경계에서 글을 짓다가 알았다. 밖이 넘치게 행복한 것이 아니라, 온전히 안을 채운 적이 사실을. 안에서 편히 머무르며 바깥보다 더 나은 마음으로 산 적이 없다는 사실을.





談담쟁이캘리:

이야기하는 글쟁이입니다.


무심코 지나치는 찰나,

별 것 아닌 일상이 별 것이 되는 순간을

에세이와 시로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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